틀어진 공간에 작품 2점뿐, 그래도 놓치면 후회할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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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미 기자]
5월의 싱그러운 첫날, 우리 부부는 내리는 빗속을 헤치고 서울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박물관에 가본 기억이 언제인지도 가물거린다는 남편의 말에 나도 떠올려 보니 생각나는 게 거의 없었다. 마침 노동절이기도 하니, 바로 행동에 옮겨 박물관을 찾아간 것이다.
사실 박물관은 설명 속 전문 용어가 쉽게 이해되지 않고 일상과 단절된 느낌이어서 내게는 '지루하다, 어렵다'는 인식이 강했던 게 사실이었다. 그러다 보니 자주 찾지 않게 돼 마지막으로 갔던 게 언제인지 기억도 까마득했다.
그러나 남편과 오랜만에 찾아간 박물관은 거의 180도 달라진 모습이었다. 멀찍이서 구경만 하던 이전과는 달리 직접 관객들이 만질 수 있는 복제품들이 널려있었고, 사용자가 입력하면 바로 출력되는 디지털 체험 공간도 다양했다.
그래서인지 젊은 연인들 모습이 제법 눈에 띄었고, 2030으로 보이는 나 홀로 방문객도 간혹 보였다. 다들 전시에 집중하는 모습이었다.
2층에 들어서자 충격 받았다, 왜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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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3층 공예실 전시품*왼쪽 <청자 투각 칠보무늬 향로> 음각·양각·투각·상감·상형 등 모든 장식기법을 동원한 고려청자*오른쪽 위 <청자 귀룡무늬 주자> 연꽃 위에 거북이가 앉아 있는 모양의 주전자. 등에 '왕王'자를 하나하나 새겨 넣음. 얼굴은 용의 형상. 고려청자*오른쪽 아래 <청자 상감 구름·학무늬 베개> 고려 문인 이규보의 시에 청자 베개는 이상세계로 들어가기 위한 매개체로 묘사. |
| ⓒ 오순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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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프랑스 비디오 아티스트 장-줄리앙 푸스의 흑백 영상 |
| ⓒ 국립중앙박물관 |
마음도 몸도 차분해지는 시간이다. 터널 같은 어둠에 익숙해질 때쯤, 비로소 복도 끝 '사유의 방'에 들어설 수 있다. 적은 양의 흰 물감을 뿌린 듯한 밝기가 눈에 편하게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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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의 방' 전체 모습. 반가사유상 두 점만 전시. 미세하게 경사진 바닥, 기울어진 황토벽, 2만여 개의 금속봉 조명으로 구성된 전시실. |
| ⓒ 국립중앙박물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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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왼쪽 반가사유상 - 국보 제78호, 화려한 보관 씀, 6C 후반 백제로 추정, 날카로운 콧대와 뚜렷한 눈매, 화려한 장신구, 정제된 옷주름)(오른쪽 반가사유상 - 국보 제83호, 단아한 보관 씀, 7C 전반 신라로 추정, 단순하고 절제된 양식.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반신, 간결한 장신구, 반면 무릎 아래 옷주름은 입체적이고 역동적) |
| ⓒ 국립중앙박물관 |
곰곰이 생각하다 나도 천천히 공간을 걸었다. 걷다가 문득 멈추어서 하염없이 바라봤다. 멈춤과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오랜 시간을 그곳에 머물렀다.
'그대도 번민 속에 있음을 안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사유의 길에선 그대도 평안에 이를 수 있다'는, 이런 나직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 같았다. 마음에 왜인지 안도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기울어진 바닥에 틀어진 천장, 이게 다 의도된 건축이라니
멈추어 바라본 두 점의 반가사유상은 닮은 듯 달랐다. 하나는 가늘고 부드럽고 신적인 20대 청년(왼쪽)인 반면, 다른 하나는 우직하고 단단하고 인간적인 천진난만 10대(오른쪽) 같았다. 자세히 바라볼 때마다 미묘한 차이를 느끼며 그 사유의 깊이에 가까이 가는 듯했다.
알듯 말듯 서로 다른 미소를 바라보며 그 너머 깊은 사유를 짐작해 보았다. 차기 부처로서 미래 세상에 내려와 어떻게 중생을 구원할지 고민하고 답하고를 반복하지 않았을까? 그런 번민의 끝이 미소 아닐까. 고민의 끝이 미소라는 건, 아마도 현명하고 지혜로운 결론에 도달한 때문일 터이다.
'내 사유는 어디쯤 닿은 걸까? 나도 언젠가 온당한 미소를 띨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질문하며 느린 시간을 돌고 돌았다. 천천히 돌다 제자리로 왔을 때 마주한 미소는, 마치 내게 이전보다 가벼운 마음이 되었느냐고 묻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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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의 방 설계의도를 설명하는 영상('사유의 방' 건축가가 말하는 요즘 힙하다는 반가사유상 관람법, 비디오머그, SBS 2021년 12월 23일) |
| ⓒ SBS |
한편, SBS 뉴스에 따르면 이 반가사유상은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하는 작품일 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전시하고 싶다고 요청하는 한국 문화재 중 1위로 꼽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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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유의 방 설계의도를 설명하는 영상 중 초기 사유의방 기획 구상그림 ('사유의 방' 건축가가 말하는 요즘 힙하다는 반가사유상 관람법, 비디오머그, SBS 2021년 12월 23일) |
| ⓒ SBS |
이 사유의 방은, 박물관 상설 전시여서 언제든 볼 수는 있지만, 누구의 방해도 없이 오롯이 마주한 사유상 앞에서 내면이 회복되길 원한다면 비교적 관람객이 적은 수요일 밤이 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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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중앙박물관 1층 전시. 경천사 10층 석탑.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석탑 중 하나. 고려 충목왕 때 원나라 영향을 받은 양식. 한국적 이미지와 달리 화려한 장식이 특징. |
| ⓒ 오순미 |
우리 부부는 박물관을 나왔다. 그런데 1층 간이 야외무대에서 사유상처럼 분장한 '퍼포먼스 아티스트'와 마주쳤고, 그의 깜박이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쳐 함께 웃었다.
입장 시엔 없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것이니, 어린이와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휴일이라 박물관 측에서 일회성으로 준비한 공연 같았다. 마지막까지 재미를 준 박물관과 어쩐지 더 친숙해진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에 찾은 박물관, 치밀하게 설계되고 의도된 방에서 사유 속으로 깊이 들어가는 체험은 내게는 무척 신비로웠다. 이 체험이 언젠가 당신의 몫으로도 피어나길 바란다(국립중앙박물관 '사유의 방' 전시설명 바로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개인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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