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뽈터뷰] 이태석 ① '이을용 아들' 이태석에게 '차범근 아들' 차두리가 남긴 말

김희준 기자 2025. 5.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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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석(포항스틸러스). 서형권 기자

[풋볼리스트=포항] 김희준 기자= 유명 선수의 아들이란 건 양날의 검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관심을 끌 수 있지만, 그 관심이 독이 돼 돌아올 때도 있다. 유명 선수의 아들인 만큼 기본적인 실력을 갖추고 환경도 남부럽지 않게 조성돼있지만, 조금이라도 부진하면 남들보다 더 많은 질타를 받는다. 유명 선수의 아들이란 타이틀은 햇볕인 동시에 그늘이다.


이태석은 이을용의 아들이다. 이을용은 국내 축구 역사에서 손꼽는 왼발 테크니션으로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일원이었다. 당시 축구를 잘 모르는 사람도 이을용이 2002 월드컵 3·4위전에서 넣은 멋진 프리킥 골은 알고 있었다. 게다가 이태석은 2000년대 중반 큰 인기를 끌었던 '날아라! 슛돌이'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강인만큼은 아니었어도 이태석은 이을용의 아들이자 실력자로 이목을 끌었다.


이태석이 지난해 11월 국가대표로 데뷔했을 때 따라붙었던 수식어 역시 '이을용의 아들'이었다. 故 김찬기-김석원 부자, 차범근-차두리 부자에 이어 역대 세 번째 부자 국가대표로 이름을 남겼기 때문이었다. 이후에도 이태석이 인터뷰를 진행하면 언제나 이을용에 대한 질문이 따라붙었다.


이태석(포항스틸러스). 서형권 기자

▲ 어릴 적 배운 영어로 린가드와 친구가 되다


지난달 29일, 국가대표 풀백이자 포항스틸러스 핵심으로 주가를 높이던 이태석을 '풋볼리스트'가 만났다. 본격적인 인터뷰를 하기 전 사인을 요청했는데, 이태석은 자신의 이름을 영어로 슥슥 적었다. 왜 영어로 사인을 하게 됐냐고 묻자 이태석은 중학교 시절 멋진 사인을 갖고 싶어 이리저리 연구하다가 영어로 쓰는 게 가장 나아 선택했다며 웃었다.


이태석에게 영어는 낯설지 않다. 2024년 FC서울에서 한국 생활을 막 시작한 린가드와 친해진 것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해서다. K리그에 오는 외국인 선수에게 언어는 빠른 적응을 막는 장벽이 될 수 있는데 린가드가 비교적 빠르게 K리그에 녹아든 건 이태석을 비롯해 영어를 잘하는 선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태석은 포항에 온 뒤로도 린가드와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린가드가 처음 왔을 때 적응이나 여러 면을 돕고자 린가드에게 먼저 다가갔어요. 빅클럽에서, 빅리그에서 뛰다가 온 선수여서 여러 가지 궁금한 점도 있었죠. 처음에는 그걸 물어보려고 친해졌는데 사람으로서도 너무 좋은 친구여서 지금까지도 교류하고 있어요."


"빅클럽에서 온 선수라고 우리와 크게 다른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더라고요. 다만 자라온 환경이나 문화에 있어서는 다른 점이 있어서 그런 부분을 많이 이야기했던 것 같아요. 정신적인 문제도 항상 얘기해왔어요. 저도 그렇고, 린가드도 그렇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재밌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이태석은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외국 생활을 한 적이 있다. 또한 스스로 영어에 대한 중요성을 생각하고 공부를 꾸준히 하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 영어 사인이 나온 건 단순히 멋을 추구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영어가 생활에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영어는 자신이 있어요. 영어로 소통하는 데 큰 문제가 없어서요. 영어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했고, 잠깐 외국 생활을 하다가 온 것도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아버지의 영향도 있었고, 공부 아닌 공부처럼 떨어져 있는 시간도 있었기 때문에 짧은 시간에 많이 배워서 지금도 영어를 잘 쓰는 것 같습니다."


이을용. 서형권 기자

▲ '국가대표 2세' 자연스럽게 축구의 길을 걸은 이태석


이태석은 영어 외에도 많은 부분에서 아버지 이을용에게 크고 작은 영향을 받았다. 축구선수로서도 마찬가지다. 이태석은 이을용을 보고 자라며, 이을용의 축구교실에서 배우며 축구선수에 대한 꿈을 키웠다. 탄탄대로만 걸어온 듯 보인다.


이태석도 자라오면서 축구선수에 대한 꿈이 크게 흔들린 적은 없음을 인정했다. "축구를 빨리 접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어서 축구를 가장 먼저 시작하게 된 것도 맞고요. 어릴 때는 이것저것 해보고 싶은 게 많았는데 제가 제일 잘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던 게 축구였어요"라며 축구선수의 길을 걷는 데 망설임은 많이 없었다고 전했다.


이태석은 축구를 통해 성격도 활달하게 바뀌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원래는 남들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기 어려워했는데 축구를 하면서 사교적인 성격으로 변화했다. 린가드와 친해진 것도 이러한 성격이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축구를 시작하면서 제 성격도 많이 바뀌었고, 사람으로서도 많은 걸 배웠어요. 성격은 활달한 쪽으로 바뀐 것 같아요. 원래는 소심했고 남들에게 잘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었는데 축구를 시작하면서 많이 활발해지기도 했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방법도 알았죠. 축구를 하면서 사람으로서 많이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차두리 당시 FC서울 유스 강화실장.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 "너는 너고, 아빠는 아빠다" 스승이자 선배 차두리가 남긴 조언


이태석은 지난여름 포항에 오기 전까지 줄곧 서울 선수로 뛰었다. 서울 산하 유소년 팀인 오산중과 오산고를 거쳐 2021년 1군 데뷔에도 성공했다. 정통 풀백으로는 물론 인버티드 풀백으로도 좋은 활약을 펼치며 차세대 풀백 유망주로 자리매김했다.


아버지처럼 레프트백으로 뛰며 첫 시즌부터 준수한 경기력을 보였기 때문에 서울 팬들의 기대를 받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어릴 적 받았던 기대감처럼 이태석에게는 동기부여가 되는 동시에 부담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이을용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어렸을 때는 부담이었던 것 같아요. 항상 그 부담이 제게 정말 많은 압박을 줬어요. 지금도 부담스러운 부분이 분명 있어요. 어쨌든 그렇게도 대중적으로 평가를 받는 거잖아요."


그래도 이태석은 조금씩 그 부담감을 이겨나갔다. 이태석과 같이 국가대표 2세의 아들로 힘든 시간을 보냈던 차두리의 조언이 많은 힘이 됐다. 차두리는 선수 초창기 차범근의 아들이라는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는데, 유럽 생활을 이어가며 풀백으로 기량이 만개해 나중에는 차두리 그 자체로 인정받았다. 차두리는 오산고에서 이태석을 가르치며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태석을 아끼며 여러 조언을 남겼다. 이태석도 차두리의 말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체화했다.


"차두리 감독님은 제게 '너는 너고, 아빠는 아빠'라고 말씀하셨어요. 저와 아빠가 플레이 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제가 가진 능력들을 그라운드 안에서 펼쳐야 하고, 그런 부담감들을 즐기라고 얘기를 많이 해주셨어요. 저도 거기에 공감을 많이 했고, 그걸 받아들여서 생각하고 행동하다 보니까 그게 큰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지금은 조금씩 제 실력을 보여드리고 인정을 받고 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부담을 갖기보다는 그 부담감까지 즐기려고 해요. 이을용의 아들이라는 수식어가 어떻게 보면 동기부여가 되고 더 발전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줘요. 지금은 그 말이 동기부여고 저한테 힘이 되지 않나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진= 풋볼리스트, 한국프로축구연맹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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