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태기 극복? 장기 연애 커플들의 권태기 극복법

김미나 2025. 5. 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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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투심 패스트볼' 같던 연애에 별안간 느린 '체인지업'이 날아왔다면, 그건 바로 '권태기'라는 이름의 변화구일 것. 당황하지 않고 안타를 '빵' 쳐내는 효과적인 방법을 장기 연애 커플들에게서 찾았다.
「 야구가 실패의 스포츠라고 누가 그랬나
3년의 연애, 집 밖 데이트보다 집 안 데이트가 익숙해져갈 무렵이었다. 데이트에 계획이란 걸 세운 게 언제였는지마저 희미해졌을 때 권태기가 찾아왔음을 느꼈다. 함께 세 번의 사계절을 지나왔지만 권태기가 왔다는 말을 상대방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도통 알 수 없었다. 결국 나는 이 사실을 숨긴 채 방법을 강구해보기로 결심했다. ‘우리가 한창 뜨거웠을 때 뭘 가장 자주 했지?’ ‘야구 직관!’ 하지만 우리의 공통 관심사였던 야구는 지난해부터 KBO가 폭발적인 인기를 끈 탓에 함께 직관을 가는 것이 쉽지 않아졌다. 그래도 둘 사이의 권태기를 이겨낼 돌파구가 필요했다. ‘스크린 야구’는 마주 보고 대결하는 구도인 배드민턴보다 스킨십을 유도하기 좋고, 배워야만 할 수 있는 스크린 골프에 비해 진입장벽이 낮다는 생각이 문득 머리를 스쳤다. 게다가 레벨 조절이 가능해 초심자라고 해도 금세 감을 찾을 수 있어 도전하는 데 부담도 없었다. 그렇게 우린 스크린 야구장에 갔다. 타석에 들어선 남자 친구는 마치 야구 선수 같았다. 힘이 잔뜩 들어간 전완근이며, 경직된 뒷덜미가 섹시해 보였다. 그의 타석이 끝나자마자 못 참고 달려가 안겼을 정도였으니. 나를 괴롭혔던 권태로운 감정에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했다. 우린 본격적으로 타격 폼 교정을 가장한 스킨십 진도를 뺐고(공공장소에서 용인될 수 있는 수준으로!), 타격감을 찾은 나는 기어코 좌중간 2루타를 당겨 치며 승기를 잡았다. 그 짜릿한 손맛에 스크린 야구장 데이트는 내게 사막 속 오아시스 같은 존재가 됐다. 너무 자주 가면 이마저도 익숙해질 테니 최후의 보루처럼 아껴둘 참이다. by 김미나(〈코스모폴리탄〉 피처 에디터)
「 추억 속 바로 그 장소에서
좋았던 시절의 사진들을 재탕하며 추억에 젖는 것만으로 권태기 극복이 안 되던 때가 있었다. 우리의 대화는 줄었고, 당연히 만남 횟수도 섹스 횟수도 자연스럽게 줄었다. 나만 그런 건 아니었다. 2년 사귄 내 여자 친구 역시 갈수록 뜨뜻미지근해지는 걸 느꼈다. 안 쓰던 편지를 써보기도 했고, 그녀가 좋아하는 꽃을 한 아름 사다 주기도 했지만 답답한 나날은 지속됐다. 나는 이 관계를 끝내든, 멱살을 잡고 끌어올리든 둘 중 하나는 해야 했다. 솔직히 후자에 좀 더 끌렸다. 기억을 더듬어 2년 전, 서로에 대한 설렘이 가장 극에 달하던 때를 떠올렸다. 야장 포장마차들이 늘어선 종로의 한 골목길에서 우린 썸을 끝내고 연애를 시작했다. 같이 걸을 때조차 대화 한마디 없는 지금의 우리. 나는 우연을 가장해, 종로를 걷다 미리 생각해둔 포장마차의 야외 테이블에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았다. 그녀에게 내 작전이 통하길 바랐고, 다행히 적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속마음을 털어놓기 시작한 우리. 대화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후에 그녀는 먼저 다가와줘서 고맙다는 말을 털어놨다. 어쩌면 권태기를 극복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각 잡고 기획한 이벤트도, 화려한 선물도 아닌 그저 진심을 전하는 말 한마디, 깊은 대화일지도 모르겠다. by HYC(사진가)
「 밤의 도쿄에서 혼자, 그 후
“설렘은 연애의 초입뿐”이라는 말에 반쯤 동의한다. 2년간 열애한 우리에게 설렘이라는 감정은 침대 위에서 꼭 필요했지만, 서로가 애써 부정하는 감정이기도 했으니까. 함께 잠자리에 드는 순간은 많았지만 신기하게도 섹스만큼은 시간이 지날수록, 그녀의 취향을 알아갈수록 요원해지는 것이었다. 이 감정을 조금 로맨틱하게 표현하자면, 굳이 섹스가 아니더라도 나와 이 친구의 마음은 깊숙이, 끈끈히 이어져 있다고 믿어왔다. 그때의 내게는 속궁합이니 그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았다. 고백하건대, 관계의 문제는 나에게 있었다. 20대 후반 한창 오만했던 나는, 이기적이게도 여자 친구가 끌리지 않는 이유를 그녀의 자취방에서 찾았다. 눅눅하고 퀴퀴한 향이 나는 빨랫감, 환기가 되지 않아 맴도는 주방의 껄끄러운 냄새. 남자는 환경의 동물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여자 친구의 자취방은 분명 익숙한 장소였지만 잠재된 호르몬을 이끌어내기엔 부족했다. 그리고 그 호르몬을 애석하게도 엄한 데서 이끌어내고 말았다. 도쿄 출장 중 재즈 펍에서 우연히 만난 그녀는 내 이상형처럼 키가 크지도 않았고, 목이 가는 편도 아니었다. 하지만 마른 몸에 딱 붙는 슬랙스 팬츠와 흰색 블라우스, 무심하게 묶은 포니테일은 그 밤의 호기심을 이끌어내기 충분했다. 더욱이 말을 걸고 싶었던 이유는 목덜미의 향이 유혹적이었기 때문이다. 은은하게 살에 젖어 맴도는 포근한 파우더리 향. 그녀는 톰포드 화이트 스웨이드 향수를 애용한다고 말했다. 다행히 우리에게 영화 속 밀회처럼 위험스러운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밤의 향은 호르몬 깊숙이 각인됐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공항 면세점에서 나는 톰포드 향수 매장에 들렀다. 구매 제품은 당연히 화이트 스웨이드. 욕먹을 만한 행동인 건 알지만, 내가 가장 익숙한 그녀에게 선물하는 최후의 보루였다. 그 향을 뿌리면 조금이라도 우린 설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방어전을 구축하는 장소도 새롭게 정했다. 자취방이 아닌 집 근처 고급스러운 호텔로. 신기한 점은 내가 기억하던 그녀의 몸 그대로인데도, 새로운 자극을 찾아냈다는 것이다. 그녀의 가장 깊숙한 지점이 뜨겁게 젖어드는 순간이었다. 그렇다. 그날 밤 우리는 서로가 찾지 못했던 호르몬을 기어코 이끌어냈다. 물론 뜬금없이 향수를 선물한 이유는 그녀에게 지금도 비밀이지만, 관계를 위한 취향을 정립했다는 데는 그녀도 이견이 없지 않을까? 때로는 외부 자극으로부터 찾은 낯선 향기가 익숙한 사랑에 불을 지펴낼 수 있다는 점을 깨닫곤 한다. 발칙하지만 강렬한 도화선이 되는 것처럼. by 박찬(〈맨 노블레스〉 피처 에디터)
「 새로운 환경이 만드는 애틋함
5년 사귄 그와 이별을 결심한 순간이 있었다. 대학교 CC로 시작해 남자 친구는 신입사원, 나는 취준생이었을 때다. 급격히 바빠진 남자 친구와 ‘취준’으로 예민함이 극에 달한 나는 만나면 부딪히기 일쑤였고, 그럴 바엔 아예 만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드는 지경까지 간 상태였다. 좀처럼 스케줄이 맞지 않던 우리는 권태기라는 큰 산을 넘기 위한 일종의 프로젝트처럼 짧은 해외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우리가 향한 곳은 일본 삿포로. 시린 날씨 탓이었을까, 우리의 관계 역시 좀처럼 달아오르지 못했다. 그렇게 권태기에 대한 뾰족한 해답을 찾지 못한 채 둘의 여행은 끝이 났다. 출국 일정이 달라 남자 친구를 하루 일찍 한국으로 돌려보내고, 나는 낯선 타지에 홀로 남았다. 오랜만에 하게 된 혼자만의 여행에 설렘이 앞섰다. 그러나 그 시간도 잠시, 남자 친구의 빈자리가 처음으로 느껴진 것이다. 어떤 결핍 때문에 외로운 감정이 사무쳤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다. 나는 그렇게 돌아오는 공항에서 홀로 벤치에 앉아 한참을 울었다. 남자 친구가 그리웠고, 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를 데리러 나온 남자 친구의 얼굴을 본 순간, 권태의 감정은 사라지고 사랑만 남았다. 가끔은 잠깐의 ‘생’이별이 잠들었던 애틋함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는 걸 깨달았고, 우린 어느덧 8년 차 커플이 됐다. by 박소연(디자이너)
「 낯선 연인놀이
애인과의 잠자리가 어느새 지루해졌다. 딱히 우리 사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관계의 권태라기보다 섹스의 권태에 가까웠다. 일주일에 두세 번이던 횟수가 점차 2주를 넘어가더니, 한 달 동안 안 하는 날들이 아무렇지 않게 이어졌다. 이렇게 우리도 섹스리스 커플이 돼가는 걸까? 착잡해졌다. 생각해보니 매번 반복되는 패턴이 문제였다. 주말 밤, 익숙한 침대, 루틴처럼 이어지는 행위…. 그날도 어김없이 같은 패턴으로 다가오는 애인에게 말했다. “우리, 오늘은 처음 만난 사람처럼 해볼까?” 애인은 흥미로워하며 동의했다. 우리는 바에서 처음 본 낯선 사람처럼 행동했다. 직업도, 나이도, 성격도 새롭게 설정했다. “이름이 뭐예요?” 낮게 깐 목소리로 건네는 애인의 첫 인사에 멈춰 있던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그에게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말투와 목소리였다. 그날의 대화는 평소와는 완전히 달랐고, 우리는 부여받은 새로운 역할에 완벽하게 몰입했다. 오랜만에 관계의 긴장감이 감돌았고 끊이지 않는 전희가 이어졌다. 롤플레잉이 이렇게나 강력한 것이었다니! 마치 연애 초반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상대의 말과 행동을 예측할 수 없어 마냥 떨리고 설레던 순간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알게 됐고, 익숙함은 설렘을 잠식시켰다. 롤플레잉은 서로의 익숙함을 깨트리는 작지만 강력한 도구였다. 회사 동료로 만나기, 헬스장에서 우연히 부딪히기, 출장 중 호텔에서 조우하기 등 따로 준비할 것도 없이 그저 새롭게 부여받은 역할에 몰입하는 것만으로 관계에 활력이 생기는 걸 느꼈다. 이 사람에게 이런 면도 있었나? 익숙한 연인에게서 새로운 매력을 발견하게 되는 건 덤이었다. 매번 일상처럼 자리 잡은 섹스가 권태롭게 느껴진다면, 오늘 하루만큼은 다른 내가 되어보자. 이 짜릿한 둘만의 유희는 오직 신뢰가 있는 연인 사이에서만 가능한 일탈이니까. by 이봄(콘텐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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