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대신 영화과 진학, 엄마의 한숨을 영화에 담았죠"

이선필 2025. 5. 10. 2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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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th JIFF] 영화 <숨비소리> 이은정 감독

[이선필 기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주인공 금명(아이유)은 제주를 떠나 서울로 뿌리를 옮겼지만 이 영화 속 주인공 해진(이선빈)은 반대로 고향 제주로 돌아가 해녀라는 새로운 꿈을 펼친다. 상반된 선택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다름 아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치열하게 찾고자 했고, 끝내 찾았다는 것.

영화 <숨비소리> 속 해진은 감독의 경험이 녹진하게 담겨 있는 캐릭터였다. 연출부 경력 10여년 간 감독 데뷔를 꿈꾸며 액션 장르 시나리오를 써오던 이은정 감독(42)은 돌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제주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마침 제주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중물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해진이 고향에 돌아오는 과정, 그리고 외할머니 강자(김자영)와 엄마 옥란(서영희)과 함께 살면서 묘하게 위로받고 갈등하는 과정 자체가 <숨비소리>의 줄기다. 해당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상영 일정을 마친 이후인 7일 오전 서울 합정동 인근에서 이은정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해녀 문화에 위로 받아"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이은정 감독의 모습이다.
ⓒ 원더필름
제주도 이야기로 장편 연출 데뷔를 알린 이은정 감독은 주변인들에게 제주 사람이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등장인물 대부분이 제주도 방언을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고, 해녀 집단의 문화도 제법 구체적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 사실 이은정 감독은 경기도 의정부 출신이다. 다만, 영화일을 하며 힘들 때마다 제주를 찾았고 그때마다 심적 위로를 받아온 기억만큼은 분명하게 품고 있었던 것.

"그전까지 여러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제주는 서른 살이 돼서야 처음 가봤다. 이 좋은 곳을 두고 어딜 그렇게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종종 찾았다. 올레길을 걷다가 해녀분들이 물질하는 걸 보게 됐는데 이 강인한 여성들은 누굴까? 근데 막상 잠수복을 벗으면 꼬부랑 할머니들이시 않나. 그게 제겐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2016년인가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지.

제가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글이 잘 안 써지던 와중에 처음부터 다시 출발했다. 그때가 2020년 무렵이었다. 나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로 데뷔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나온 결과물이 <숨비소리>다. 처음엔 막연하게 엄마와 딸 이야기로 생각하다 제주 해녀 문화를 접목시킨 것이다. 제가 또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에 사셨는데 유독 절 예뻐해 주셨고, 그 경험이 시나리오에 담겨 있다. 너무 제 이야기를 담아낸 것 같아 좀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전주영화제에서 관객분들과 만나며 그 생각은 다 사라졌다(웃음)."

<숨비소리>를 지탱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이다. 하나는 강자, 옥란, 해진으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각기 다른 가치관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기대주였던 해진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그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다. 이은정 감독은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각이나 생각이 다르다. 해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세대의 세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중학생 때부터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근데 엄마가 원하는 학교가 있어 그땐 그곳으로 진학했는데 대학 땐 내가 원하는 걸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냈었다. 잊지 않고 영화과에 가겠다고 했지. 엄마는 교대를 원하셨던 것 같다. 한숨을 푹 쉬시면서도 가라고 하시더라. 그게 영화 속 옥란의 느낌이기도 했다.

과연 성공이란 게 젊은 세대에겐 뭘까.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해야 할 시기지 않을까. 타인이 세운 기준에 따라 해진도 맞춰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거지. 그건 해진이 아닌 옥란의 꿈이었던 셈이다. 해진이 유일하게 숨 쉬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제주였고, 자연에 가장 가깝게 사는 해녀가 되는 게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바로 성공을 위한 선택 아닐까. 꼭 서울이 아니어도, 공무원이 안돼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감독 진심에 감응한 사람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 원더필름
전주영화제 초청으로 난생 처음 감독으로서 관객과 만나며 이은정 감독은 "영화로 위안을 전하려다 오히려 위안을 받았다"고 고백하며, 내심 <숨비소리>에 기꺼이 힘을 보탠 배우들과 스태프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그의 첫 연출작엔 한국 대중영화에서 주요 스태프로 일해온 베테랑들이 대거 함께 했다. 제작자가 다름 아닌 <말모이> <택시운전사> <아가씨> 등의 프로듀서였던 윤서영 대표였고, <수리남> <어쩔 수가 없다>의 프로듀서를 맡아온 오현암 프로듀서가 이번 영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고. 촬영 또한 류승완 감독, 최동훈 감독과 협업해 온 조정희 촬영감독이 합류했다.

그런 이유로 <숨비소리>는 수중 촬영부터 주요 감정신들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담겨 있었다. 제작비를 물으니 약 4억 원이란다. "정말로 그 베테랑들이 받는 개런티에서 절반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인데 거의 재능기부처럼 참여해주셨다"고 이은정 감독은 강조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제주를 다루는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가장 최근 <폭싹 속았수다>가 있었고, 그전에 <웰컴투 삼달리>, <우리들의 블루스> 등이 나왔다. 제가 그 무렵 출산하고 1년을 쉬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이 좀 길어졌는데 자칫 제가 쓰는 이야기가 진부해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상업영화로 가기에 소재가 너무 비주류적이지 않냐고도 하셨는데, <폭싹>이 성공하는 걸 보면서 다시금 자신감을 찾기도 했다."

해진 역을 표현한 배우 이선빈도 감독에겐 매우 중요했다. 나름 길다면 긴 영화일 경력에 여러 배우들을 눈여겨봤지만 이선빈의 작품들을 보며 내면이 단단하고 뿌리가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구해진 또한 단단함과 반짝거림이 있는 인물인데 이선빈 배우가 1순위였다"며 이은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드린 지 3일만에 답을 주셨다. 읽다가 눈물이 났고 소속사를 설득해서 출연의사를 전했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 다행히 배급사를 만나 극장 개봉을 타진하게 됐다. 그간 주요 한국독립예술영화를 제작, 배급해 온 인디스토리가 담당하는 <숨비소리>는 내년 상반기 무렵 개봉 예정이다. 개봉 때까지 이은정 감독은 또다른 작품을 구상하며 창작자로서 본분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영화 연출과 출산이 제게 일종의 과업이었는데 이루게 됐다. 정말 하늘이 도와준 것 같다. 다시 작가 모드로 돌아가서 이야기를 쓰고 싶은 생각이 간절하다. 구체적으로 말하긴 이르지만 과거에 빚을 진 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 이야기를 쓰려고 한다."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 원더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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