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 대신 영화과 진학, 엄마의 한숨을 영화에 담았죠"
[이선필 기자]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속 주인공 금명(아이유)은 제주를 떠나 서울로 뿌리를 옮겼지만 이 영화 속 주인공 해진(이선빈)은 반대로 고향 제주로 돌아가 해녀라는 새로운 꿈을 펼친다. 상반된 선택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같다. 다름 아닌 자신이 진짜 원하는 것을 치열하게 찾고자 했고, 끝내 찾았다는 것.
영화 <숨비소리> 속 해진은 감독의 경험이 녹진하게 담겨 있는 캐릭터였다. 연출부 경력 10여년 간 감독 데뷔를 꿈꾸며 액션 장르 시나리오를 써오던 이은정 감독(42)은 돌연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이야기를 써야겠다는 생각에 제주도를 배경으로 새롭게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고, 마침 제주영상위원회와 영화진흥위원회 사업에 선정되면서 마중물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해진이 고향에 돌아오는 과정, 그리고 외할머니 강자(김자영)와 엄마 옥란(서영희)과 함께 살면서 묘하게 위로받고 갈등하는 과정 자체가 <숨비소리>의 줄기다. 해당 영화는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상영 일정을 마친 이후인 7일 오전 서울 합정동 인근에서 이은정 감독을 만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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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이은정 감독의 모습이다. |
ⓒ 원더필름 |
"그전까지 여러 여행지를 다녀봤지만 제주는 서른 살이 돼서야 처음 가봤다. 이 좋은 곳을 두고 어딜 그렇게 다녔나 하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부터 종종 찾았다. 올레길을 걷다가 해녀분들이 물질하는 걸 보게 됐는데 이 강인한 여성들은 누굴까? 근데 막상 잠수복을 벗으면 꼬부랑 할머니들이시 않나. 그게 제겐 인상적이었다. 그러다 2016년인가 해녀 문화가 유네스코 무형유산에 등재되면서 더욱 관심을 갖게 됐지.
제가 액션 장르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막상 글이 잘 안 써지던 와중에 처음부터 다시 출발했다. 그때가 2020년 무렵이었다. 나란 사람이 뭘 좋아하는지, 어떤 이야기로 데뷔해야 하는지 생각하다가 나온 결과물이 <숨비소리>다. 처음엔 막연하게 엄마와 딸 이야기로 생각하다 제주 해녀 문화를 접목시킨 것이다. 제가 또 외할머니에 대한 애틋한 기억이 있다. 전라남도 해남에 사셨는데 유독 절 예뻐해 주셨고, 그 경험이 시나리오에 담겨 있다. 너무 제 이야기를 담아낸 것 같아 좀 민망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전주영화제에서 관객분들과 만나며 그 생각은 다 사라졌다(웃음)."
<숨비소리>를 지탱하는 이야기는 크게 두 축이다. 하나는 강자, 옥란, 해진으로 이어지는 여성 삼대의 각기 다른 가치관이고, 다른 하나는 엄마의 기대주였던 해진이 스스로를 자각하고 그 기대와 다른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이다. 이은정 감독은 "한 가족 안에서도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시각이나 생각이 다르다. 해녀라는 같은 직업을 가진 다른 세대의 세 여성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제가 중학생 때부터 막연하게 영화감독이 꿈이었다. 근데 엄마가 원하는 학교가 있어 그땐 그곳으로 진학했는데 대학 땐 내가 원하는 걸 공부하겠다고 약속을 받아냈었다. 잊지 않고 영화과에 가겠다고 했지. 엄마는 교대를 원하셨던 것 같다. 한숨을 푹 쉬시면서도 가라고 하시더라. 그게 영화 속 옥란의 느낌이기도 했다.
과연 성공이란 게 젊은 세대에겐 뭘까. 돈과 명예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진짜 하고 싶은 게 뭔지 고민해야 할 시기지 않을까. 타인이 세운 기준에 따라 해진도 맞춰서 공무원 시험을 준비했던 거지. 그건 해진이 아닌 옥란의 꿈이었던 셈이다. 해진이 유일하게 숨 쉬며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제주였고, 자연에 가장 가깝게 사는 해녀가 되는 게 행복하다는 걸 깨닫는다. 그게 바로 성공을 위한 선택 아닐까. 꼭 서울이 아니어도, 공무원이 안돼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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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
ⓒ 원더필름 |
그런 이유로 <숨비소리>는 수중 촬영부터 주요 감정신들 하나하나가 세밀하게 담겨 있었다. 제작비를 물으니 약 4억 원이란다. "정말로 그 베테랑들이 받는 개런티에서 절반의 반도 안 되는 수준인데 거의 재능기부처럼 참여해주셨다"고 이은정 감독은 강조했다.
"제가 시나리오를 쓸 때만 해도 제주를 다루는 작품이 많지 않았는데 가장 최근 <폭싹 속았수다>가 있었고, 그전에 <웰컴투 삼달리>, <우리들의 블루스> 등이 나왔다. 제가 그 무렵 출산하고 1년을 쉬면서 자연스럽게 제작이 좀 길어졌는데 자칫 제가 쓰는 이야기가 진부해질까 걱정하기도 했다. 누군가는 상업영화로 가기에 소재가 너무 비주류적이지 않냐고도 하셨는데, <폭싹>이 성공하는 걸 보면서 다시금 자신감을 찾기도 했다."
해진 역을 표현한 배우 이선빈도 감독에겐 매우 중요했다. 나름 길다면 긴 영화일 경력에 여러 배우들을 눈여겨봤지만 이선빈의 작품들을 보며 내면이 단단하고 뿌리가 강한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구해진 또한 단단함과 반짝거림이 있는 인물인데 이선빈 배우가 1순위였다"며 이은정 감독은 "시나리오를 드린 지 3일만에 답을 주셨다. 읽다가 눈물이 났고 소속사를 설득해서 출연의사를 전했다고 하시더라"고 말했다.
이렇게 소중한 인연들이 모여 만들어 낸 결과물이 다행히 배급사를 만나 극장 개봉을 타진하게 됐다. 그간 주요 한국독립예술영화를 제작, 배급해 온 인디스토리가 담당하는 <숨비소리>는 내년 상반기 무렵 개봉 예정이다. 개봉 때까지 이은정 감독은 또다른 작품을 구상하며 창작자로서 본분을 이어가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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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26회 전주국제영화제 한국경쟁 부문에 초청된 영화 <숨비소리> 현장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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