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새 '음쓰'가 사라졌다, 이 덩어리가 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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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현 기자]
냄새나는 음식물 쓰레기 봉지를 들고 쓰레기장으로 가는 길은 대단히 불편한 시간이다. 비닐봉지 안에서 스멀스멀 피어나는 냄새는 문을 나서기 전부터 앞서간다. 이때는 승강기에서 다른 사람과 마주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진다. 그러나 현실은 기대를 자주 저버린다. 대체로 한가하던 승강기가 음식물 봉지만 들고나가면 분주해지는 것 같다. 소위 머피의 법칙은 그럴 때 영락없이 끼어든다.
비슷한 집 구조에서 사는 사람들의 경험과 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마음을 알아채고 해법을 파는 것이 시장의 일이다. 음식물 처리기는 그런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마케터들은 그런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아서 신제품을 내놓는다. 나도 정확하게 그 표적의 범위 안에 있었다.
이게 음쓰를 먹어치운다고?
이것저것 따져보다가 미생물이란 것이 음식물을 분해해 준다는 음식물 처리기를 구입했다. 미생물 처리기는 3세대라고 한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동네에서는 벌써 2세대가 지나갔고 그다음 세대가 나온 것이다. 전기도 많이 안 들고 자연 친화적 처리 방식이라고 선전이 대단했다. 기계에 익숙한 도시인에게 미생물은 원시적 궁금증을 자아내기도 했다.
반신반의했다. 제품 설명도 읽고 리뷰도 적지 않게 확인했다. 그 정도면 기능을 의심할 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하게 생긴 통 하나가 음식물 쓰레기를 거침없이 먹어치운다는 것을 설명만으로는 실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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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배추를 손질하며 떼어낸 겉잎을 음식물 처리기에 쏟아 부은 모습. |
| ⓒ 이종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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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물 처리기의 미생물흙이 양배추 잎을 덮고 분해를 하고 있는 모습. |
| ⓒ 이종현 |
미생물은 낮밤이 없는 모양이었다. 내가 잠을 자는 동안 밤새 제 몸의 수천 배 수만 배 큰 음식물 덩어리를 잘게 부수고 소화해 흙으로 토해냈다. 수천수만의 미생물이 있다면 전체 덩치는 비슷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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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음식물 처리기의 미생물이 양배추 잎을 모두 소화하고 천연덕스럽게 흙만 뱉어낸 모습. |
| ⓒ 이종현 |
그렇게 낯설기만 하던 물건도 어느새 익숙해졌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온갖 생물들 속에서 살아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집안 구석에 어떤 벌레가 있는지 모른다. 아무 영양가가 없는 것 같은 세면대조차 오래 두면 어디서 왔는지 불그스레한 곰팡이가 핀다. 그 또한 생명체이다.
음식물은 말할 것도 없다. 온도만 적당하면 금세 알록달록 다양한 곰팡이가 고운 솔처럼 내려앉는다. 냉장고 안에서도 시간이 지난 식재료가 무르는 것은 무엇인가 미생물이 숨을 쉬고 있는 것이리라. 하나하나 떠올리면 온몸이 근질근질해지는 느낌이지만 다시 생각하면 언제나 우리는 그 속에서 그렇게 살아왔다.
나의 음식물 처리기에는 눈에 보이는 생명체가 없는 데다가 흙은 늘 통속에서만 돌아가고 있어서 다행이었다. 음식물이 들어가면 갑자기 흙이 살아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만 통의 뚜껑을 덮고 나면 그뿐이었다. 약간의 냄새와 알게 모르게 흙의 양이 조금씩 늘어나는 것 외에 다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통 속의 흙이 혼자서 밖으로 기어 나오는 일은 없었다. 우리 집에 들어온 생명체는 나에게 점차 하얀색 통에 까만 뚜껑이 달린 음식물 처리기로 자리를 잡아갔다.
음식물 처리기 옆에 서 있으면 낮은 소음이 끊이지 않고 들린다. 전류가 전선을 지나는 소리인지도 모른다. 나는 여치가 조물조물 풀잎을 갉아먹던 모습을 떠올리며 미생물의 운동을 상상한다. 국민학교 시절, 아래위에 골판지를 대고 그 사이에 이쑤시개를 촘촘하게 꽂아 여치집을 만든 적이 있다. 여치를 잡아넣고 풀을 주었다.
여치의 먹성은 대단했다. 마치 재단사가 큰 천을 가위로 자르듯 잎 사이를 가르며 빠른 속도로 풀잎을 먹어 들어갔다. 보이지도 않는 작은 입으로 쏠아 먹는 것인데 그랬다. 여치집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들어보면 스륵스륵 아주 미세한 소리가 났다. 그리고 풀잎은 이내 조각이 나고 결국 없어졌다.
우리 집 하얀 통에 있는 미생물들도 여치를 닮은 것 같다. 조용하게 먹는 태도나 먹성 좋은 것이 꼭 그렇다. 먹어도 먹어도 식욕이 저하되거나 게을러지는 법이 없다. 흙이 늘어도 먹는 속도와 소화량에는 변화가 없다. 통 속에 제법 흙이 차올랐을 때 나는 그것을 퍼서 버리기만 하면 된다. 더 이상 신경 쓸 일이 없다. 그것만으로 통속의 미생물은 소명을 충실하게 수행한다.
제품 소개서에서는 그 흙이 양질의 거름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한다. 화단에 뿌리면 꽃들이 흙의 양분을 먹고 잘 자라게 된다고 한다. 왜 안 그렇겠는가. 영양소를 골고루 갖춘 음식물을 분해해 놓았으니 식물들에게는 잘 조리된 식사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음식물 쓰레기는 미생물의 열일을 거쳐 그렇게 다시 자연의 순환체계로 들어가게 된다.
생물이 자연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이렇게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치가 있을까 싶다. 선명한 형체를 가진 생물의 조각이 하루 만에 깔끔하게 흙으로 환원된다. 따지고 보면 모든 생물은 거대한 자연의 순환체계 안에서 궁극적으로 흙이 된다. 우리가 먹고 소화하고 배설하는 것도 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몸 역시 결국은 그렇게 되는 도정에 있다. 우리 집에 있는 미생물은 그 과정에 기여하는 촉진제인 것 같다.
나는 단순한 음식물 처리기가 아니라 자연의 작은 순환계를 들여다 놓은 셈이 됐다. 우리 집의 하얀색 양철통 안에는 작은 지구가 들어 있다. 그 속에서는 매일 지구의 신비가 작동하고 있다. 하얀 통이 내는 스르륵스르륵 작은 소음에서 지구가 숨 쉬는 소리를 듣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스토리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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