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장은 뭐가 다를까? 서울 한 복판에서 만나는 창작의 비밀
[김성호 평론가]
한국에 또 없는 특별한 극장에서 다른 곳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를 본다. 그것도 무료로.
미술을 즐기는 내게 그나마 다행한 일은 한국, 그것도 대도시 서울에선 꽤 양질의 작품을 무료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이 대표적 사례로, 언제 어느 시점에 찾아도 품격 있는 기획전이 끊이지 않고 열리고 있다. 헌법재판소 인근인 탓에 워낙 시끄러워 지난 몇 달 찾지 않은 이들에겐 더욱 좋은 선택지가 될 수도 있겠다.
MMCA 서울 지하 1층엔 영상관이 있다. 말이 영상관이지 시중 어느 극장에 비해도 그리 뒤떨어지지 않는, 아니 훨씬 더 잘 관리되고 있는 상영관이다. 이곳에선 '필름앤비디오'란 이름으로 현대미술과 영상의 접점에 있는 작품을 기획전 성격으로 틀어주고는 한다. 오는 5월 24일까지는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 전이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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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젤름 스틸컷 |
| ⓒ 국립현대미술관 |
하나하나가 이 시대 거장이라 불린 작가들로, 그 전공이라 해도 좋을 장기며 스타일이 조금씩 차이가 있는 이들이다. 이들이 기존의 방식이며 문법과 달리 만든 작품이 MMCA에서 상영기회를 얻은 이유는 무엇일까. '창작의 순간-예술가의 작업실'이란 기획명이 보여주듯 예술가의 작업실과 창작의 순간이 작품의 어딘가에 담겨 있기 때문일 테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를 담아내는 방식이 영화와 미술의 경계를 오가고 있기 때문일 수 있겠다.
빔 벤더스는 독일의 대표적인 영화감독이다. 현존 독일 영화감독 하면 플로리안 헨켈 폰 도너스마르크나 마렌 아데 같은 작가를 떠올리는 이들이 있겠다. 빔 벤더스는 명백히 독일 영화계의 손꼽는 거장이지만 어딘지 교과서에나 등장할 늙은이 같은 인상이 있는 때문이다. 독일의 대표적 영화사조인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로까지 불리는 그는, 제가 일으킨 사조의 쇠락을 직접 지켜보았고 스스로도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이어가며 전과 같은 위상을 갖지는 못했던 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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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젤름 스틸컷 |
| ⓒ 국립현대미술관 |
<안젤름>은 빔 벤더스의 또 다른 면모를 알아볼 수 있는 작품이다. 기실 빔 벤더스는 그저 뉴 저먼 시네마의 기수라거나 추종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미국 문화며 그 사고방식에 매료돼 있다는 점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넓은 작품세계를 가진 감독이다. 지난 '씨네만세' 1004번째 편에서 다루었던 <베를린 천사의 시>부터 그 최고의 작품이라 할 만한 <파리, 텍사스>, 또 <퍼펙트 데이즈>와 두 편의 다큐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안젤름>까지가 하나하나 그렇지 아니한가. 어느 한 작품을 만든 이가 그 곁에 선 다른 영화를 찍었으리라고 도무지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폭넓은 관심과 도전 정신을 가진 이인 것이다. 그 근간에 예술을 향한 뜨거운 열정이 있었으리란 건 쉬이 예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안젤름>은 빔 벤더스가 독일의 유명 화가 안젤름 키퍼의 작업을 담아낸 다큐멘터리다. 그는 3D 카메라를 들고 안젤름 키퍼의 여러 작업실을 오가며 그가 작품을 대하는 자세를 세심히 관찰한다. 그저 관찰과 촬영에 그치지 않고 키퍼의 유년시절을 배우를 고용해 재현하는 시도까지 감행한다. 평면이 아닌 3D 입체로 구현된 장면들은 키퍼의 어제와 오늘을 그저 얄팍한 시각으로만 이해하지 않도록, 공간감을 불어넣어 주기 위한 선택이었을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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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젤름 스틸컷 |
| ⓒ 국립현대미술관 |
전쟁이 남긴 상흔을 조명하고 그를 충실히 기억하지 않는 사회에 내부자로서 문제의식을 던졌던 키퍼의 작품들은 그 시대에 곧장 발탁돼 높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전쟁 가해국 내부자의 시선이란 점이 귀했고, 당대 최대규모로 확장하던 미국 미술계가 그에게 높은 평가를 내주었다. 그렇게 키퍼는 세계 최고의 미술가 반열에 올랐다.
키퍼는 다른 많은 예술가들이 그러하듯, 전쟁에서 신화로, 또 다른 무엇으로 꾸준히 관심을 옮겨간다. 빔 벤더스의 카메라는 과거와 오늘을 오르내리며 키퍼의 예술세계와 그가 작품을 대하는 자세를 우호적 시선에서 관찰한다. 유년과 장년, 그리고 노년에 이른 키퍼의 예술세계를 오가고 다루는 방식은 다분히 비선형적이다. 3D 특수안경을 거치면 작품의 질감까지 약간은 두텁게 살아나는 듯 보인다. 키퍼의 작품보다도 더 미술적으로 느껴지는 시도도 없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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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의 순간 ? 예술가의 작업실 포스터 |
| ⓒ 국립현대미술관 |
시각뿐 아니라 청각도 효과적으로 활용할 줄 아는 빔 벤더스의 역량이 낯설고 실험적인 다큐작업 가운데서도 빛난다. 그가 구태여 3D로 키퍼의 작품에 공간을 부여한 이유 또한 납득하긴 어려워도 이해는 할 수 있는 일이다. 동시대 독일인을 설득하지 못했으나 미국과 전 세계 예술계를 환호하게 한 키퍼다. 그렇다면 그만한 이유는 있는 것이다. <안젤름>의 가치는 그 이유를 이해하는 과정에 있는 게 아닌가를 돌아본다.
중년의 키퍼는 그의 아들이, 어린 시절의 키퍼는 빔 벤더스의 손자가 연기했다고 전한다. 2년 여의 시간을 바쳐 빔 벤더스가 키퍼의 이야기를 이토록 낯설고 공들여 찍은 이유가 그저 그를 좋아해서만은 아닌 듯해 신선하다. 독일에서 태어나 미국에 애정을 느끼고 기존 독일의 여러 부문을 부인하려 했던 두 예술가는 여러 개의 공통점을 가졌다. 빔 벤더스가 먼저 영화의 경계를 넘어 키퍼와 그의 예술세계로 넘어가려 한다. 그 결과가 <안젤름>에 담겼다. 그렇다면 그 자체로 예술적 도전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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