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에 '사법살인 기념관'을 만들자
[안홍기 기자]
히틀러 치하의 독일 뮌헨에는 백장미단이라는 저항그룹이 있었다. 뮌헨대학교의 학생들과 교수 등이 히틀러와 나치의 악행을 고발하고 저항을 독려하는 전단지를 뿌렸는데, 이들은 결국 체포돼 여러 명이 사형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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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일 뮌헨 법원청사(Justizpalast Munchen) 내부에 있는 백장미단 기념관 입구. 천장에 백장미단이 뿌린 반나치 전단지를 형상화한 고보라이트가 비쳐있다. |
| ⓒ 안홍기 |
1943년 2월 18일 22세 조피 숄, 25세 한스 숄 남매가 체포됐다. 이틀 뒤 24세 크리스토프 프롭스트가 체포됐다. 2월 22일 인민재판소장 롤란트 프라이슬러가 고함치며 진행한 재판은 3시간도 안 돼 사형선고로 마무리됐다. 사형은 그날 바로 집행됐다.
백장미단 체포는 이어졌다. 1943년 4월 19일에는 11명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로 돼 있었는데, 그날 체포된 3명이 즉시 추가돼 14명이 재판을 받았다. 쿠르트 후버 교수, 빌리 그라프, 알렉산더 슈모렐에게 사형이 선고됐다. 이 두 번째 백장미단 재판이 열린 법정이 그대로 보존돼 지금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뮌헨대 본관의 기념관이 백장미단의 활동과 그 신념을 되돌아보면서 이들을 추모하는 데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법원청사 내 기념관은 백장미단에 대한 '초고속 사형 판결'이 이루어진 과정을 되짚으면서 나치 독일에서 법치가 무너진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기념관 복도의 전시물은 히틀러의 집권과 수권법 제정에 이은 법치주의 붕괴를 서술한다. 그 과정 중의 하나로 제시된 판결문의 한 대목을 보자.
"일련의 중대한 반역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속죄가 따라야 한다. 오랜 절차적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보호이다.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할 경우엔 부조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뮌헨고등지방법원, 1937년 12월 8일 판결
나치가 반대 세력을 제거하는 데에는 사법절차의 '오랜 절차적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이 방해가 되었다. 법원은 '국가와 국민의 보호'라는 예외 사유를 내세워 절차적 원칙을 무력화했다. 이 판결문을 중요하게 전시한 이유는, '절차적 원칙'이 '사법 괴물'의 출현을 막는 중요한 안전장치이기 때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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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뮌헨 법원청사(Justizpalast Munchen) 내 백장미단 기념관에 전시물. 사진 왼쪽부터 한스 숄, 조피 숄, 크리스토프 프롭스트. |
| ⓒ 안홍기 |
'사법살인'이라는 말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반국가세력 척결'을 외치며 비상계엄을 일으킨 대통령을 탄핵해 파면한 민주공화국에서 이게 무슨 일인가.
대법원의 유례없는 전원합의체 초고속 파기환송 판결과 이어진 서울고등법원의 재판 기일 지정 등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선거법 위반 사건 재판 과정에 대해 이같은 평가가 나온다. 이 후보는 스스로도, 이승만과 대립했다가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를 뒤집어쓰고 사형을 당한 조봉암 선생, 내란을 일으킨 신군부에 의해 도리어 내란음모죄로 사형을 선고받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사례를 언급했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이 후보에게 사형이 선고될 일은 없으니, 사법살인이라는 말이 딱 와닿지 않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절차적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기는커녕 듣도보도 못한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초고속 심리와 그에 이은 사법절차로 인해 하루아침에 유력한 대통령 후보가 사라진다면, 법적 살인은 아니지만 정치적인 살인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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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뮌헨 법원청사(Justizpalast Munchen) 내 백장미단 기념관. 백장미단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을 보존하고 전시물을 설치했다. |
| ⓒ 안홍기 |
대한민국 법원은 사법살인을 저질러온 역사가 있다. 이재명 후보가 언급한 사건 외에도 인민혁명당재건위(2차 인혁당) 사건이 대표적이고, 이외에도 억울하게 사법살인을 당하거나 복역한 이들이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경우가 부지기수다.
그러고보니, 뮌헨 사람들이 백장미단에게 사형을 선고한 법정을 보존해 기념관을 만든 비슷한 기념관이 한국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국제적으로도 널리 알려졌던 2차 인혁당 사건의 경우에도 기념관은 없고, 희생자들의 묘역과 경북대 내 추모비 정도만 존재한다.
법치의 붕괴와 사법살인의 가능성을 경고할 기념관을 2차 인혁당 사건 당시의 법정을 복원해 조성하면 가장 좋겠지만, 이미 불가능해 보인다. 1928년 경성재판소로 시작해 1995년까지 대법원으로 사용된 서울 서소문동 청사는 서울시립미술관으로 변모하면서 대대적으로 개축했다. 건물 정면의 모양은 예전 그대로이나 내부 구조가 크게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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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뮌헨 법원청사(Justizpalast Munchen) 내 백장미단 기념관 내 전시물. “일련의 중대한 반역 행위에 대해서는 어떤 상황에서도 적절한 속죄가 따라야 한다. 오랜 절차적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가와 국민의 보호이다. 원칙을 예외없이 적용할 경우엔 부조리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뮌헨고등지방법원, 1937년 12월 8일 판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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