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광용 거제시장 "조선업 호황 속 지역은 불황, 상생기금은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
[김민수 기자]
조선업이 역대급 수주 호황을 이어가고 있지만, 정작 거제 지역경제는 활기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하청노동자의 임금 체불은 여전히 반복되고, 골목상권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말 그대로 '호황 속 불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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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광용 거제시장이 지역상생발전기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 ⓒ 거제시 |
"거제는 조선업으로 성장해온 도시입니다. 그러나 그 조선업이 수십 년간 지역사회의 희생과 지원 속에 성장해왔다는 점은 종종 간과됩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조선 호황기입니다. 하지만 그 혜택이 지역사회 전체로 골고루 돌아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단지 기업의 '기부'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기업과 지역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지역상생발전기금' 구상을 제안하게 된 겁니다. 기업이 지역과 상생하는 것은 시대적 흐름이자 사회적 책무라고 봅니다."
- 조선업 호황에도 불구하고 지역경제와 노동자들의 삶은 왜 나아지지 않을까요?
"가장 중요한 원인은 구조적인 저임금 문제와 외국인 노동자 증가입니다. 조선업이 역대급 수주 호황을 맞이했지만, 그 혜택이 지역사회로 제대로 확산되지 않고 있습니다. 조선업체들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저임금의 외국인 노동자에 의존하면서, 내국인 노동자들은 조선업을 외면하게 됐고, 숙련 인력의 이탈이 이어졌습니다. 외국인 노동자의 급여는 대부분 본국으로 송금되기 때문에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소비 효과를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구조가 고착화되면, 거제는 인구 감소와 소비 위축이라는 이중고를 겪게 됩니다."
- 상생기금과 기존의 기업 사회공헌 활동은 어떻게 다른가요?
"기업의 사회공헌 활동은 대개 일회성, 또는 기업 이미지 제고 차원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장학금 전달, 봉사활동, 기부금 지원 등이죠. 물론 이러한 활동도 의미는 있지만, 지역경제 구조나 노동시장 개선으로 이어지기는 어렵습니다.
반면 상생기금은 제도적이고 지속적인 틀 안에서 기업과 지역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를 만들자는 취지입니다. 기업이 벌어들인 이익 중 일부를 지역에 환원하고, 그것이 지역 주민과 노동자, 중소상공인의 실질적 삶의 질 향상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구조적 접근이죠. 단순한 '시혜'가 아니라 '책임'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핵심 차이입니다.
즉, 상생기금은 사회공헌보다 훨씬 더 공공성과 지속성, 실효성을 갖춘 지역발전의 수단이라 할 수 있습니다."
-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의 기존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합니까?
"물론 두 기업이 과거 다양한 사회공헌 활동을 해온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거제 경제 상황을 보면, 그 효과는 제한적이었습니다. 예컨대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체불 문제는 여전히 반복되고 있고, 산업재해 또한 끊이지 않습니다. 이처럼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 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공허한 구호에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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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광용 거제시장이 6일 시장실에서 지역상생발전기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 ⓒ 거제시 |
"저는 기금의 조성과 집행에 있어 민관 공동 참여 구조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거제시와 양대 조선사인 한화오션과 삼성중공업, 그리고 원청·하청 노동자 대표기구, 시민사회노동단체 등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이 우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협의체가 중심이 되어 기금의 성격과 목적, 규모, 사용처, 운영 방식에 대해 충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이 논의를 통해 법인이나 단체 형태의 운영 주체를 새롭게 결성하고, 기금의 조성, 운영, 관리, 집행 방식까지 함께 결정하는 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러한 구조는 기금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실질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실천 과제들을 도출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특히 시민사회와 노동자들의 참여가 보장되는 감시와 피드백 시스템을 갖춰야 기금 운영의 책임성과 지속성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 기금이 지역에 어떤 효과를 줄 수 있나요?
"기금은 노동자의 처우 개선뿐 아니라 지역경제 전반에 긍정적 영향을 줄 것입니다. 단순히 돈을 모아 쓰는 것이 아니라, 지역경제의 체질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이는 구조적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청노동자의 임금 체불을 방지하고, 최소한의 생활임금 보장에 대한 안전망을 구축하는 데 기금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소상공인을 위한 지원 사업, 지역 내 사회적 경제 활성화, 청년과 지역 인재 양성 프로그램, 산재 예방 및 노동 안전 교육 등도 가능합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기금이 거제라는 지역 안에서 발생한 이익이 지역 안에서 선순환되도록 만드는 구조라는 겁니다. 조선업 호황의 과실이 단지 기업의 수익으로만 귀결되는 게 아니라, 그 과실을 함께 만들어낸 노동자와 시민들에게도 돌아가야 한다는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기금이 잘 운영된다면, 지역 소멸 위기와 청년 인구 유출, 골목경제의 붕괴, 노동자 삶의 불안정 같은 문제들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단기적 복지나 일회성 지원이 아니라, 지속 가능한 지역 공동체 기반을 만드는 장치로 기능할 수 있다고 봅니다."
- 기금이 주주와 노동자에게 불이익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주장에 대한 입장은요?
"일부에서는 '이 기금이 원청 노동자들의 몫을 줄이는 것 아니냐', 즉 노동자 복지나 임금 상승분이 기금으로 빠져나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는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이 기금은 그런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상생기금은 원청과 하청, 기업과 지역이 함께 사는 구조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재정 플랫폼이지, 누군가의 몫을 덜어 다른 누군가에게 주자는 개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 기금이 제대로 작동하면, 하청노동자의 처우 개선과 내국인 채용 확대, 지역 인프라 정비를 통해 전체 산업 생태계가 건강해집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원청 노동자들의 일자리 안정성과 직무환경 역시 개선되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또, 주주 가치 훼손에 대한 우려도 있지만, 저는 오히려 반대로 봅니다. 기업이 지역과 신뢰를 쌓고, 장기적인 경영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확보하는 것이야말로 주주에게도 더 큰 이익이라고 생각합니다. 일시적인 비용 지출처럼 보일 수 있으나, 지역사회와 갈등 없는 협력 구조, 인력 수급 안정, 사회적 평판 상승 등은 기업가치를 중장기적으로 높이는 요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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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변광용 거제시장이 6일 시장실에서 지역상생발전기금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있다. |
| ⓒ 거제시 |
"상생기금 논의는 단지 거제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지역경제의 구조적 불균형, 노동자 처우의 양극화, 산업재해 문제, 외국인노동자 의존도 증가 같은 이슈는 전국의 산업도시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는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앙정부 역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지역과 기업이 자발적으로 기금을 조성하고 상생 모델을 만들고자 한다면, 정부는 이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유인할 수 있는 정책적 뒷받침을 마련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기금을 출연한 기업에 세제 혜택을 부여하거나 정부 공모사업 가점을 제공하는 방식이 있을 수 있고, 고용노동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나서 기금 모델을 제도화·표준화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중앙정부는 예산 지원을 넘어 지역 상생 노력을 촉진하고 제도화하는 주체로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 마지막으로 시민과 기업, 정부에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상생기금은 단순히 돈을 걷자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거제가 처한 '호황 속 불황'이라는 구조적 모순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한 첫걸음입니다. 지역경제는 기업만 잘된다고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시민의 노력만으로 바뀌지도 않습니다. 함께 책임지고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동안 거제시는 조선산업을 위해 인프라, 인력, 공공 자원을 아낌없이 제공해 왔습니다. 이제는 이에 걸맞은 사회적 책임과 역할이 필요합니다. 저는 이 기금이 단기적 복지 수당이 아니라, 거제의 미래를 위한 공동 투자이자 세대 간 책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청 노동자, 청년, 소상공인,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튼튼한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습니다.
또한 중앙정부도 이 같은 지역 주도의 상생 모델이 한 도시의 실험에 그치지 않도록 제도화와 정책적 지원에 적극 나서주시길 바랍니다.
지금 거제는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 기회를 잡아 미래로 나아갈 것인지, 갈등을 반복할 것인지 선택해야 할 시점입니다. 저는 시민과 기업, 정부가 함께 손을 맞잡고 지속 가능한 변화의 길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거제뉴스광장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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