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기로에 선 탄소중립은행연합
기후 위기는 인류가 직면한 가장 시급하고 중차대한 사안이다. 기후 위기와 금융은 밀접한 상관관계를 갖는다. 돈이 어느 쪽으로 흘러가는가에 따라 위기를 증폭시킬 수도 있고, 줄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은‘기후 위기 시대, 금융이 수행해야 할 책임과 역할’을 조명하기 위해 기획된 것으로, 이후 몇 차례에 걸쳐 연재할 예정이다. <기자말>
[문진수 기자]
탄소중립은행연합(Net-Zero Banking Alliance, 아래 NZBA)이라는 유엔(UN) 산하 기구가 있다. 2050년까지 은행의 모든 금융 활동을 탄소제로(net-zero)에 맞춘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우고 출범한 은행들의 연합체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 결의를 통해 2021년에 만들어졌다.
2025년 현재, 44개 나라에 128개 은행이 가입되어 있다. 이들이 보유한 자산액을 합하면 무려 47조 달러(한화 약 6경 7000조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도 7개 은행(하나, 신한, KB, 우리, 농협, IBK, JB)이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5대 금융지주가 모두 이 단체 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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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Guidance for Climate Target Setting for Banks 3.0 www.unepfi.org |
| ⓒ Net-Zero Banking Alliance |
① 야망 :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파리협정 기준(1.5°C 달성)과 일치시킬 것
② 범주 : 온실가스 규약(GHG protocol)의 범주(scope) 기준을 준수할 것
③ 목표 : 2030년과 2050년 목표를 정하고, 중간 목표는 5년 단위로 재수립할 것
④ 영역 : 미공개 사유가 명확한 경우가 제외하고 수집 데이터, 적용 방법론, 금융배출량이 포함되어야 함
⑤ 영향 : 목표 설정 시, 실물경제에 미치는 영향(impact)을 고려할 것
⑥ 협치 : 최고 의사결정기구를 포함,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거칠 것
⑦ 독립성 : 수립한 목표와 취한 조치가 독립적이어야 함
⑧ 실행 : 서명 후 18개월 안에 1차 목표를 수립하고, 36개월 안에 탄소 집약 업종에 대한 세부 목표를 수립할 것
⑨ 검토 : 5년 단위로 수립한 목표를 재검토할 것
⑩ 보고 : 목표 및 진행 과정을 공개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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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대 금융지주회사 탄소배출량 (2023년 기준) 각 그룹에서 공시한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기초해 작성 |
| ⓒ 문진수 |
지역 기반은 기업이 '위치한' 지역의 평균적인 에너지 믹스(mix)를 기준으로 배출량을 산정하고, 시장 기반은 기업이 '구매한' 에너지의 배출량을 반영해 산정한다. 만약 기업이 신재생에너지를 통해 생산된 전력을 구매했다면, 그 효과를 반영해 실제 배출량에서 차감하는 방식이다.
범주(2)에서 지역 기반과 시장 기반을 구분해 산출량을 표시한 곳은 신한금융뿐이었다. 5대 지주회사 모두 범주(1)과 범주(2)에서 배출한 탄소 발생량을 합산(+)해 목표 관리를 하고 있었는데, 범주(2)를 지역 기반 방식으로 산정할 경우, 목표를 달성한 회사는 한 곳도 없었다.
범주(3)은 기업의 가치 사슬 전 과정에서 간접 배출하는 경우를 말하는데, 대부분 회사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① 탄소량(Scope 3)과 대출이나 투자를 통해 간접적으로 유발하는 ③ 탄소량(금융배출량)을 구분하고 있었다. 신한금융은 두 영역을 묶어서 금융배출량에 합산하고 있었다.
온실가스 규약에서 범주(3)은 15개의 카테고리(category)로 나뉘는데, 이 기준에 따라 배출량을 분류해 작성한 곳은 KB금융그룹뿐이었다. ①범주(3)의 배출량 차이가 큰 이유는 회사별로 적용하는 기준이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객관적인 판단 기준과 검증 절차가 필요한 대목이다.
금융회사 탄소배출량 감축에서 가장 중요한 항목은 금융배출량(financed emissions)이다. 금융업의 특성상, 범주(1)∼(3)을 합한 양보다 훨씬 많은 탄소가 이 영역에서 배출되기 때문이다. 5개 지주사의 ③금융배출량 합계는 ②범주(1)∼(3) 합계보다 195배나 많았다, 99.68%의 탄소가 금융배출량에서 배출되었다는 뜻이다.
5개 지주회사들이 공시한 보고서를 꼼꼼히 살펴보면 예외 없이 탄소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수사(修辭)는 화려했지만, 비전문가가 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많았고 정확한 수치를 전달하기보다 탄소배출량이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개별 그룹이 자체 설정한 2030년 감축 목표를 달성하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 지금까지 달성한 결과치를 기초로 볼 때, 남은 기간 동안 저감 목표치에 도달하려면 거의 수직으로 낙하하는 것처럼 탄소배출량을 줄여가야 하는데, 그에 부합하는 명확한 방향성이나 계획은 찾기 어려웠다.
한국은행이 적시한 것처럼, '금융회사들이 금융배출량 감소를 단순히 탄소 집약 업종에 대한 신용공급 축소로 대응하려 할 경우, 탄소 감축 노력이 오히려 저탄소경제 전환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2024, 최근 국내 은행의 금융배출량 관리 현황 및 정책적 시사점)'는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커 보인다.
최근 NZBA를 둘러싸고 벌어진 큰 사건은 공동 설립자로 참여했던 은행 상당수가 탈퇴를 선언한 일이다. 트럼프(D.Trump) 정부의 탄소 역주행 정책에 발목을 잡혀 골드만삭스, 씨티, 모건스탠리 등 세계 금융계를 주름잡는 월가의 초대형 은행들이 잇달아 NZBA를 탈퇴했다.
일본과 캐나다 은행들까지 이 대열에 동참하자 NZBA는 ①기후 목표를 1.5℃에서 '2.0℃'로 낮추고 ②목표 수립 지침을 적용에서 '권장'으로 바꾸는 내용이 포함된 새 기준을 발표한다. 회원사들의 의견을 청취해서 내린 결론이라고 하지만, 사실상 공동 행동의 기본 원칙을 뒤집은 것이다.
이 결정에 대해 탄소중립을 추구해 온 은행들은 일제히 격앙된 반응을 나타냈다. 유럽의 대표적 친환경 금융회사인 독일의 GLS은행은 NZBA의 퇴행을 강하게 비난하며 탈퇴했고, 네덜란드의 트리오도스(Triodos) 은행은 탈퇴 선언을 번복하고 잔류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확인된다.
NZBA가 만들어지기 훨씬 이전부터 친환경 금융회사로서의 명성을 쌓아온 트리오도스 은행은 잔류 성명서에서 "우리는 개정된 기준에 반대하지만, 은행이 1.5℃ 기준에 초점을 맞추어 기후 위기를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글로벌 협력뿐이라고 믿습니다"라며 계속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기후정책(anti-climate policy)이 온 세상을 혼돈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는 가운데, 탄소중립을 위해 모인 은행들의 국제연합체는 지금 큰 도전에 직면해 있다. 자본의 힘에 굴복할 것인가, 미래 인류를 위해 나아갈 것인가. 이들의 행보에 귀추가 주목된다.
덧붙이는 글 | 문진수 기자는 사회적금융연구원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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