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 사적지 표지석에 조각가 이름 빠진 이유
[이돈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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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진 사적지 표지석. 전남대학교는 5.18항쟁이 시작된 곳으로 5.18사적지 제1호로 지정돼 있다. 광주시내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가운데 가장 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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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대학교 정문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에 새겨진 글이다. 전남대학교는 5·18항쟁이 시작된 곳으로, 5·18사적지 제1호로 지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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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순 너릿재공원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김왕현 작가의 디자인 작품을 그대로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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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수소문해 만났다. 사적지 표지석을 디자인한 주인공은 조각가 김왕현(71)이다. 김 작가는 2021년 나주 동신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에서 정년퇴직하고, 지금은 전라남도 나주시 산포면 등정리에서 '김왕현미술관'을 운영하고 있다. 전국조각작가협회 이사장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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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왕현 작가가 나주 영강삼거리에 세워진 5.18사적지 표지석 앞에서 표지석 디자인에 얽힌 이야기를 하고 있다. 김 작가는 사적지 표지석을 디자인한 당사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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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작가가 표지석에 이름을 따로 새기지 않은 이유다. 김 작가는 1980년 당시 평택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다. 광주상황에 대한 정보가 통제된 탓에 5·18민주화운동이 일어났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다고 했다.
사적지 표지석에 담긴 의미도 궁금했다. 표지석을 네모나 동그라미 형태가 아닌, 타원형으로 만든 이유는 뭘까?
"주변 건축물을 한번 보십시오. 모든 도시가 매한가지인데, 건축물이 직선과 직면으로 돼 있습니다. 여기에다 직선이나 직면의 표지석을 세우면 건축물에 묻히기 십상입니다. 도시 건축물과 조화를 이루고, 시각적인 효과를 높이려고 타원형으로 만들었어요. 잘 어울리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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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주 영강삼거리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 단일 작품으로 60여 곳에 세워져 있는 조각작품은 김왕현 작가가 디자인한 5.18사적지 표지석이 유일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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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왕현 작가가 5.18사적지 표지석 다자인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김 작가는 광주와 전남지역 60여 곳에 세워져 있는 5.18사적지 표지석을 디자인한 당사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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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도 타원형의 몸체와 어우러지도록 왼쪽에 국문, 오른편에 영문을 새겼다. 세월이 흘러도 낡거나 녹슬지 않게 구리를 95% 함유한 동판을 썼다. 표지석 크기도 사적지에 얽힌 의미나 규모 등을 감안해 대·중·소 세 가지로 만들었다. 가장 큰 표지석은 5·18항쟁의 시작점인 전남대학교 정문 앞에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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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남 대흥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5.18전남사적지 표지석. 김왕현 작가가 디자인한 표지석을 광주와 전남지역에서 모두 쓰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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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데, 구멍에서 바큇살처럼 방사형으로 뻗은 다섯 개의 선은 사람을 형상하고 있습니다. 머리와 두 팔, 두 다리를 표현했죠. 계엄군의 총탄을 맞으면서도 두 팔을 높이 쳐들고 '민주'를 외쳤던 시민의 모습입니다. 가운데에 뚫린 구멍은 총탄의 흔적이고요."
김 작가의 말이다. 방사형의 다섯 개 선과 한가운데 구멍은 총탄 앞에서도 전혀 굴하지 않고 민주와 정의를 외친 시민을 상징한다는 말이었다.
"가운데 구멍 둘레에 있는, 여러 개의 둥근 문양은 안에서 바깥쪽으로 갈수록 커지게 했습니다. 우리 남도에서 시작된 민주의 빛과, 또 목청 높여 외친 민주화 함성이 전국으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길 바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고요. 밑에 있는 청동 횃불은 뜨겁게 타오른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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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왕현 작가가 디자인하고 설치한 ‘3.1마당’ 조형물. 광주 5.18민주묘지 1묘역과 2묘역 사이 역사마당에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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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 5.18민주묘지에 세워져 있는 ‘헌수 기념비’. 5.18민주묘지 조성에 맞춰 광주와 전남지역 12개 언론사가 주도한 범국민 헌수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김왕현 작가의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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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신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습니다. 1996년으로 기억하는데, 5·18묘지 성역화 사업의 하나로 역사마당 조형물을 공모했습니다. 저는 '3·1마당' 조형물 제작에 응모했고, 당선됐죠. 1998년 5·18묘지에 세운 '헌수 기념비'도 제 작품입니다. 그 인연으로 5·18민주화운동 사적지 표지석 제작 설치 자문위원으로 참여했고, 의도하지 않았는데 표지석 구상과 디자인까지 맡게 됐습니다."
김 작가가 얘기한 '3·1마당' 조형물은 민족대표 33인이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을 하고, 탑골공원에서 독립만세를 부르는 모습과 일본군이 한국인을 살육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명성황후와 안중근 의사까지 두루 표현하고 있다.
조형물은 5·18민주묘지 1묘역과 2묘역 사이 역사마당에 세워져 있다. 역사마당은 우리 역사에서 불의와 폭압에 맞섰던 임진왜란과 한말 의병운동을 비롯 동학농민혁명, 3·1만세운동, 광주학생독립운동, 4·19혁명, 5·18항쟁, 그리고 통일마당 등 7개 부조벽으로 이뤄져 있다.
제2묘역 앞에 세워져 있는 '헌수 기념비'는 5·18민주묘지 조성에 맞춰 광주와 전남지역 12개 언론사가 주도한 범국민 헌수운동을 기념하고 있다. 당시 헌수 참여자의 이름을 모두 새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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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경찰청 앞 안병하공원에 세워진 안병하 치안감 흉상. 안 치안감은 5.18 당시 신군부의 강경진압 지시를 거부했다. 흉상은 김왕현 작가가 디자인한 작품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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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병하 치안감은 1980년 5월 당시 전남도경국장(현 전남경찰청장)으로 있으면서 신군부의 강경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 그 이유로 5월 26일 직위 해제돼 보안사에 끌려가 혹독한 고문을 당하고 6월 2일 의원면직됐다. 형식상 본인이 사의 표시를 통한 면직이지만, 사실상 파면이다. 안 치안감은 1988년 10월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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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남도청 앞 남악중앙공원에 있는 높이 450㎝의 김대중 전 대통령 동상. 김왕현 작가가 심혈을 기울인 작품 가운데 하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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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0여 년을 조각가로 살고 있는 김왕현 작가. 그는 지금도 새로운 작품 세계를 추구하고 있다. 최근엔 기하학적인 추상작품 ‘포지티브&네거티브’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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