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싹> 양관식 때문에 죽다 살아난 '김관식'입니다

김관식 2025. 5. 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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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관식이와 이름 같아 생긴 일... 이름 덕 톡톡히 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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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식 기자]

종영한 화제의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아시는지. 나는 극 중 '양관식'(박보검 분) 때문에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다. 이름이 같기 때문이다. 50년 가까이 '관식'이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나는 실은 최대한 <폭싹 속았수다>를 안 보려 미뤘고, '문희'라는 이름을 가진 아내는 2007년 방영한 MBC 드라마 <문희>를 외면해 왔었다.
 넷플릭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 오른쪽이 극중 양관식. 드라마에서 '관식'은 늘 힘든 생활에서도 아내 '오애순'을 믿고 사랑하며 힘을 나눠준다.
ⓒ 넷플릭스
뭐랄까, 말로 표현하기가 쉽지 않은데, 마치 나와 똑같은 복장을 갖춘 사람과 함께 한 공간에 머무는 어색한 기분이랄까. 그래서 드라마를 보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우리 부부는 서로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나는 아내 몰래 <문희>를 봤고, 오랜 시간 아내를 놀려댔다. 아내는 틈틈이 나보다 먼저 <폭싹 속았수다>를 끝냈고, 어느 순간부터 눈 뜨면 하는 말이 '거기 관식이는 이렇게 해줬는데, 여기 관식이는 왜 그러냐?'며 '애순이의 신랑과 문희의 신랑은 비교 불가다'라며 애정 섞인 투정을 부려본다.

놀리는 친구들... 어디서든 유독 크게 들렸던 그 이름, 관식

그러다 그 드라마를 벼르고 벼르다, 마침내 주말에 몰아 보고는 마침표를 찍게 된 계기가 있었다. 누군가 버스에서 외치듯 한 이 말 때문이었다.

"누구? 관식이? 관식이 정도면 금상첨화지. 관식이 반만 따라가 봐라."

하루 종일 뭐 하나 뜻대로 되는 게 없던 어느 날, 어김없이 퇴근 시간이 금세 다가왔다. 가방을 둘러매고 버스정류장가지 터벅터벅 걸어가다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마침, 앞자리가 하나 났길래 자리에 털썩 주저앉듯 앉아 가방을 무릎 위에 올려놓고 눈을 조용히 감았다. 그날은 이상하게 평소처럼 귀에 이어폰을 꽂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내 뒤에 조금 떨어진 곳에서 내 이름이 들렸다. 처음엔 꿈인 줄 알았다. 동시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순간, 나를 부르는 건가 싶어서 반사적으로 뒤를 돌아봤는데, 그 두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둘 다 '뭐지?' 하는 그 어색한 표정. 부부로 보이는 이들이 서로 나눴던 대화였던 것.
 양관식이라는 인물은 삶에서 진정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주기 때문에 그 이름이 지닌 무게가 크다. 나와 이름이 같아 유독 그의 언행에 집중되는 것도 사실이다. 세상에 관식이가 더 많아졌으면 하는 생각이다.
ⓒ 넷플릭스 캡처
어쩌면 그 두 사람은 눈치채지 않았을까? 내가 고개를 돌려 갑자기 자신들을 돌와봤던 이유를. 내가 자기들이 주고 받았던 그 이름, '관식이'라는 희대의 모범 남편과 이름이 같았기 때문이라는 걸. 아, 차라리 티 내지 말고 못 들은 척 할 걸. 그 30분이 왜 이리 길게 느껴지던지.

애순이 남편, 양관식. 나와 성만 다른 그 양반으로부터 촉발된 사태였다. 나 말고 다른 관식이, <폭싹 속았수다>의 관식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그 뒤로도 지하철과 버스만 타면 유독 그 이름만 크게 들렸다. '관식' '관식' '관식'... 하도 자주 들려서, '이러다 양관식이 때문에 김관식이가 다 죽게 생겼네' 생각했었다. 나와 친한 한 친구는 나만 보면 '우리 관식이, 폭싹 삭았수다'라며 제목을 비틀어 나를 놀려댔다.

그날 바로 <폭싹 속았수다>를 다 보려고 넷플릭스에 접속했다. 아, 결국 드라마를 끝까지 시청한 후 내가 느낀 관식은, 감히 내가 입에 올려서는 안 되는 훌륭한 이름이었다. 예민하게 피해 다녀야 할 이름은커녕 화목한 가정을 어떻게 꾸려야 하는지 알려준 자랑스럽고 배워야 할 이름이었다.

드라마에 빠져들수록 금쪽같은 대사가 많아 눈에 띄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메모해서 내 개인 SNS에 올리기도 하고, 메모 창으로 컴퓨터 바탕화면에 띄워두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발상의 전환'을 하게 된 계기가 있었다.

내 소개에 '빵 터진' 관객들... 이렇게 고마울 수가
 <폭싹 속았수다>를 보며 이름이 같은 내게 힘을 주기 위해 자막을 캡처했다. 이 말이 마치, 내게 힘내라는 메시지인 듯해 몇 번이고 들여다봤는지 모른다.
ⓒ 넷플릭스 화면 캡처
지난 4월 어느 날, 한 지인으로부터 서울 코엑스에서 열릴 모 세미나에 사회를 부탁받았다. 평소에 친하게 지내는 지인이기도 해서 덜컥 "알았다"라고 답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자 현실적인 부분이 조금씩 고민되기 시작했다.

닥치면 더듬더듬 해내겠지만, 나는 막상 하기 전까지 생각이 많은 편이다. 취할 건 취하고 버릴 건 버리고 큰 부담을 갖지 않아야 하는데, 잘하는 주위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도 자연스럽게 대처하려다가 그 과정에서 오히려 부자연스러워질 때가 있다. '나다움'이 필요한 때라 생각했다.

행사를 하루 앞둔 날, 진행 10분 전에 장내는 어떤 멘트로 정리해야 할지, 각 연사의 강연이 끝날 때마다 요점을 정리하고 다음 순서를 안내해야 할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나면 어떤 멘트로 끝인사를 해야 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선빵'일 것 같았다. 처음의 자신감이 끝까지 가기 마련이다. 고로, 나를 처음에 어떻게 소개할까? 내가 참석자들과 섞이기 위해서는 어떤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 좋을까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무릎을 쳤다. '그래, 그렇게 나를 소개하고 시작하면 되겠구나'... 이것 하나 확실하게 정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행사 당일, 드디어 시작 10분 전. 마이크를 잡고 긴장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투로 '10분 후 세미나를 예정대로 시작하니 5분 전까지 자리에 앉아달라'고 말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드디어 행사 개시. 내심 떨렸던 나는 이렇게 마이크를 잡고 운을 뗐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기 앉아계신 참석자분들, <폭싹 속았수다> 보신 분 손들어 보세요(대부분의 참석자가 손을 들었다). 예상대로네요. 그 드라마에 나오는 관식이 아시죠?(모두 "네"라고 대답했다)

네, 애순이의 단짝. 그 관식이 덕분에 요즘 유명세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사회자 관식, 김관식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누자, 청중석에서 와하하 웃음이 흘러나왔다. 장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졌다. (양)관식이 덕을 본 것이다. 자칫 의례적인 행사처럼 비칠 수 있는 자리를 다소나마 '관식'이를 통해 모두 웃음으로 긴장을 풀었다. 그 유해진 분위기로 첫 일정을 시작할 수 있었다. 이때만큼 내 이름에 대해 고맙고 뿌듯하게 느낀 적이 없었다.

순간 정말 고마웠다. 박해준(나이 든 관식 역할), 박보검(젊은 관식 역할) 배우가 모두 떠올랐다. 아울러 긴장되는 상황, 처음 접하는 상황이라고 해도, 이를 회피하지 않고 발상을 바꿔내면 그 또한 또 다른 삶의 한 장면이 될 수 있다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었다.

양관식은 바다로, 김관식은 주방으로... 각자 열심히 살아가는 관식이들

그 뿐만이 아니다. 나는 일상에서 '양관식이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됐다. 드라마에서 늘 가족을 위해 말 없이 성실하게 고기를 잡으러 바닷가로 나섰던 양관식. 이제는 나도 주말이면 가족을 위해 주방으로 나가려고 노력한다. 밥을 안치고 김치를 썰고, 돼지고기를 팬 위에 넣어 맛있게 볶는다.

내가 '금명이'라고 종종 놀리는(극 중 양관식의 딸 이름이 양금명이다) 우리 딸아이가 먹을 계란 프라이를 만들고, 혹시나 내가 없을 때 아내와 아이가 먹을 수 있도록 콘푸라이트와 우유도 미리 사놓는다. 또 혹시나 우유 먹고 배탈 날까 봐 '소화 잘 되는 우유'를 웃돈 주고 사놓기도 한다. 그래, 이렇게 쓰려고 돈 버는 거지.
▲ 양관식으로 빙의돼 주말이면 가족을 위해 주방에서 만든 음식.  처음엔 시간도 제법 소요되고 어려웠지만 한두 번 주방으로 나가니 나름 할만했다. 요리하는 중간중간 책을 읽거나 영화도 보는 여유도 생겼다. 모두 양관식 덕분이다.
ⓒ 김관식
양관식이 금명이에게 자주 나직이 내뱉었던, "수틀리면 빠꾸해"라는 말도 암기했다. 중3인 아이가 한참 중간고사 기간인데 너무 부담 갖지 않도록 웃으며 "수틀리면 빠꾸"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아이들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김관식인 나는 이젠 양관식이 다 됐다. 며칠 전엔 혼자 마트 가서 장을 다 보고 SNS에 이렇게 남겼다. '오늘도 아내를 위해 장도 보고 밥도 지은 관식이'... 그랬더니 어떤 지인이 댓글을 달아준다. 댓글을 읽고 나는 피식, 하며 웃었다.

'양관식 못지않은 사랑꾼이시군요.'
▲ 딸의 결혼식 '폭삭속았수다' 중 금명의 결혼식에서 관식의 말
ⓒ 넷플릭스
거울효과라 하던가. 언젠가 책에서 읽은 내용인데, 타인의 특정한 행동을 공감하며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뇌의 특정 영역이 활성화된다고 한다. 이후 그 행동을 모방하려 노력하면, 그와 관련한 다른 사람의 감정까지도 전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게 주된 내용인 이론이다.

그래서였나? 드라마 후반, 양관식이 병실에서 애순과 마음속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다. 그때까지 잘 참았는데 그 부분을 보다가 실은 조금 울컥했다. 관식이의 독백을 들으며 이를 조용히 지켜보던 나, 김관식이가 양관식이 마음에 충분히 공감 갔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그 병실에 있는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 상황이라면 나도 아내에게 비슷한 얘기를 하지 않았을까. '당신을 만나서 지금까지 티격태격 아웅다웅했어도, 당신을 만나 지금까지 잘 살아왔고 행복했었다'라고.

드라마 때문인지 몰라도, 내 주변에 양관식처럼 살려는 사람이 제법 많아졌다. 선한 영향력이다. 세상에 양관식이 많아지는 날, 가정의 평화와 인류의 행복, 나아가 국경 없는 인류애가 자리잡히지 않을까 조심스레 상상해 본다. 처음엔 밉기만 했던 관식에게 한 마디 건네고 싶다.

'모두 관식이 너 때문이야. 고마웠어! 덕분에 내 이름이 너무 자랑스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글쓴이의 네이버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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