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의 나라 영국에서 스펙 공화국 한국을 바라보며

김성수 2025. 5. 5.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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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사는 '이중국적자'가 아닌 '이중감정자'가 보는 한국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있다. 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살며 느낀 점이 '밤하늘의 별' 만큼 많다.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어린 시절 8년 간 살며 한국 초등학교도 다녔다. 그 후 영국으로 다시 와 이곳에서 초중고대를 마치고 지금은 독립해 따로 산다. 한국과 영국의 교육제도를 부모 입장에서 지난 몇 십년간 지켜보며 느낀 점이 절절히 많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 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 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 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 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 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나누고 싶다. <기자말>

[김성수 기자]

 한영기
ⓒ 김성수
영국 아이는 방학을 기다리고, 한국 아이는 학원을 기다린다

영국 중부의 한 마을 우리 동네에 사는 초등학교 5학년 아이 '존'은 오늘도 학교에서 돌아오며 "내일은 쉬는 날이니까 친구랑 공원 가도 돼요?"라고 묻는다.

한편, 서울 강남구에 사는 같은 또래의 '민준이'는 학원에서 돌아오며 "내일은 논술학원, 수학 심화, 그리고 영어독해, 총 세 군데 다 가야 되죠?"라고 묻는다.

차이는 어디서 시작될까? 바로 '교육'이라는 국가의 책임에 대한 관점에서다.

영국은 95%를 차지하는 공립학교에 수업료가 전혀 없다.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비는 물론 교재비도 무료다. 심지어 급식도 대부분 무상이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경우에는 교통비나 체육복까지 지원해준다.

대학교도 정부에서 학비와 생활비를 전액 융자해 준다. 졸업 후 몇 십 년에 걸쳐서 분할로 학비와 생활비를 갚아야 하지만 연봉이 안 높거나 실업상태면 정부융자금을 안 갚아도 된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돈이 없어서' 교육을 못 받거나 대학을 못 가는 경우가 구조적으로 전혀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아이를 낳고 기르는 일에 '정부가 함께 책임지는 구조'가 존재한다.

반면, 한국 부모들은 오늘도 허리띠를 졸라맨다.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갈 때부터 시작되는 '사교육 전쟁'은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을 거치며 '가정파산 코스로 직행'하는 고속열차가 된다.

교육, 개인의 잠재력을 극대화해 준다

영국처럼 아무 돈 걱정 없이 개인이 마음껏 공부할 수 있는 나라가 되어야 대한민국이 희망이 있는 나라가 된다. 교육은 개인 잠재력을 극대화해 준다. 교육을 통해 개인이 자기 잠재력을 극대화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정부가 지원해 주면 결국 그 개인이 자아실현으로 행복할 뿐 아니라 국가도 그 개인으로 인해 큰 덕을 본다.

부모가 '돈이 없어서' 한 청춘이 교육을 제대로 못 받거나 그래서 마음껏 그 잠재능력을 못 살리고 사장되면, 결국 그것은 그 개인의 불행일 뿐 아니라 그가 속한 국가의 크나큰 손실이 된다.

모든 개인이 자기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주는 나라와 오직 선택된 극소수 계층만이 잠재력을 극대화할 수 있는 나라가 세계무대에서 경쟁할 때 과연 어느 나라가 국제사회에서 승리할까?

답은 뻔하다. 국민 다수의 잠재력을 사장시키는 국가는 국민다수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주는 국가와의 경쟁에서 '백전백패' 할 수밖에 없다. 국가경쟁력의 기초는 유능한 개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가가 국민다수의 잠재력을 극대화 시켜주면, 즉 유능한 개인이 될 수 있도록 지원해주면, 국가경쟁력이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보편복지는 단순히 국민에 대한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 반드시 정부가 국민에게 취해주어야 할 의무 와도 같다. 그래서 사회복지, 특별히 교육에 대한 정부투자는, 곧 국가경쟁력 향상을 위한 투자이고 다수 국민의 능력, 행복도와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직접적인 투자다.

무상급식은커녕, 교복도 '명품'으로 간주되는 나라

영국에서 무상급식은 그야말로 '기본값'이다. 따로 토론할 가치도 없을 정도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무상급식을 두고 아직도 '좌파정책'이니 '포퓰리즘'이니 하는 낡은 이념논쟁이 벌어 진다. 심지어 일부 사립고에서는 교복 한 벌이 수십만 원을 넘는다. 교복을 받기 위해 카드사 할부를 알아보는 부모의 눈빛에서 우리는 대한민국의 공교육이 얼마나 '사치품화'됐는지 절감하게 된다.

한국에서 '국민소득 4만 달러' 운운하지만, 부모들은 아직도 '학원비 납부 마감일'을 공포의 붉은 날로 기억한다. "학원 안 무서운 부모는 없다"는 말이 이제는 격언처럼 느껴진다. 아이들이 뛰어놀며 자라야 할 골목길은 사라지고, 대신 각종 학원빌딩이 들어선다.

영국에선 아이들이 잔디밭에서 축구를 하는데, 한국에선 아이들이 '교재 3권과 샌드위치를 들고 12시간짜리 학원 일정'을 소화한다. 게다가 명문대 입시에서는 '생기부(생활기록부) 기재용' 봉사활동이 일반화되며, 이제는 진짜 봉사보다 '봉사전략'이 더 중요해진 아이러니한 현실에 우리는 살고 있다.

영국교육이 강조하는 가치는 '사고력'과 '표현력', 그리고 '공존의식'이다. 성적은 물론 중요하지만, 아이가 주체적으로 배우고 성장하는 것이 무엇보다 우선시된다.

반면, 한국교육은 마치 게임의 랭킹 시스템처럼 '전국 석차'와 '내신 1등급'을 놓고 승자독식 경쟁이 펼쳐진다. 창의력보다 '정답을 빨리 찾는 능력'이 우선되고, 질문 잘하는 아이보다는 눈치 잘 보는 아이가 '모범생'으로 인정받는다.

이쯤 되면 묻고 싶다. 한국은 과연 교육을 통해 아이를 키우려는가, 아니면 스펙을 부풀린 '미니 성인'을 양산하려는가?

국가는 어디까지 '부모의 희생'에 기생할 것인가?

영국 교육제도에는 명확한 철학이 있다. 국가는 교육을 공공재로 본다. 교육은 시장의 경쟁 논리에 맡길 수 없는, 아이의 미래와 직결된 '권리'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도 교육을 '상품'으로 본다. 그러다보니 가정의 소득수준이 아이의 미래를 좌우하는 구조가 고착화됐다. 교육의 사다리는 무너졌고, 이제는 '사다리를 붙잡을 수 있는 팔힘'조차 돈이 좌우하는 지경이다.

한국에서 복지는 언제쯤 '구걸'이나 '시혜'가 아닌 당연한 '권리'가 될 수 있을까? 언제쯤 '기초수급자'라는 말에 눈을 흘기지 않고, '무상'이라는 단어에 인색하지 않은 사회가 될 수 있을까?

아이를 키운다는 것은 곧 나라를 만드는 일

영국의 아이들은 적어도 내일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공립학교에서 배우고, 공공도서관에서 책을 읽으며, 무상급식으로 점심을 해결한다. 부모는 학원비 고지서 대신 주말 피크닉을 고민한다.

반면, 한국의 부모들은 내일이 오는 게 두렵다. 입시, 사교육, 대출, 장학금, 이런 단어가 머리를 짓누른다.

우리가 만드는 내일은 누구의 것인가?

그저 이 땅에 태어났다는 이유로 '기회의 평등'마저 박탈당하는 아이들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세계 10대 경제대국인 대한민국에서 무상교육은 '공짜'가 아니다. '공존의 약속'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사회, 한국정부는, 그 약속을 반복해서 저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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