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잔당'이 준동하는 지금, '5.18 광주'를 찾는 분들에게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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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 5.18 민주묘지의 '대동세상' 조형물과 민중항쟁탑의 모습. 국가보훈부 주관 45주년 기념식이 거행될 장소이다. |
| ⓒ 서부원 |
전국에서 온 추모객들로 해마다 오월 광주는 북적인다. 더욱이 올해 5.18 기념일은 공교롭게도 일요일이어서, 예년에 견줘 그 수가 대폭 늘어날 걸로 전망된다. 주말을 이용해 가족과 친구끼리 봄나들이 삼아 5.18 사적지를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이다.
친위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주의를 정면으로 거스른 내란 수괴 윤석열이 파면된 직후 처음 맞는 5.18 기념일이어서 더욱 뜻깊다. 희생자들을 추모하며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금 되새기는 더없는 계기가 될 터다. 오월 광주는 전 세계인들이 칭송하는 민주주의의 성지 아닌가.
기념행사에 현직 대통령이 참석하지 못한다는 점은 '옥에 티'다. 내란 공범들이 여전히 활개 치며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의 권한대행'이 추도사를 읽게 될지도 모르는 황당한 상황이다. 윤석열 정부의 2인자로 군림했던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대행마저 사퇴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잘된 일이다. 내란 공범 혐의를 받는 자가 민주화의 영령들이 잠든 묘역을 방문해 정부를 대표해 추도사를 읽는다는 건, 그들의 희생을 모욕하는 짓이다. 하긴 '권한대행의 권한대행' 또한 같은 혐의를 받고 있어 현 정부의 국무위원 중엔 적격인 자를 찾기조차 힘들다.
'어통령(어쩌다 대통령이 된)' 윤석열이 당선되고 급기야 '12.3 내란 사태'까지 벌어지며 모두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태로움을 목격했다. 동시에 앞다퉈 국회로 달려가 몸을 던져 내란을 막아낸 시민의 위대한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실로 가슴이 웅장해지는 벅찬 경험이었다.
민주주의에는 완성도 종착역도 없다
민주주의는 달리는 자전거와 같아서 잠시라도 멈추면 넘어지고 만다. 쉬지 않고 두 발로 힘껏 페달을 밟아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다. 민주주의에는 '완성'이 없고 '종착역'도 없다. 우리가 민주주의를 '공기'처럼 여기는 순간 윤석열과 같은 '괴물'은 언제든 다시 등장하게 될 것이다.
민심을 천심으로 받드는 새 대통령을 기다리며 민주주의를 가슴으로 배우고 느끼려거든 올해 5.18 기념일엔 일부러라도 광주를 찾을 일이다. 광주를 찾는 건, 내란 세력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다짐이며 기도다. 동시에 '과거가 현재를 도울 수 있다'는 걸 증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이맘때쯤 광주를 여러 차례 방문한 이들이라면 나름의 동선이 머릿속에 그려져 있겠지만, 초행길이라면 조금 막막할 수 있다. 그저 도심의 옛 전남도청과 인근의 전일빌딩, 그리고 시 외곽의 국립 5.18 민주 묘지를 들르는 게 보통이다. 관련 홈페이지마다 그렇게 안내한다.
정부 주관의 기념식이 행해지는 18일 당일이라면, 어디든 꽉 막힌 도로와 발 디딜 틈 없는 인파 속에서 시달리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가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향한 다짐은커녕 고통스러운 기억만 남게 될지도 모른다. 번잡하고 어수선한 곳에서는 옷깃을 여미기가 쉽지 않다.
하여 18일 당일 경건하게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되새겨볼 수 있는 '덜 유명한' 5.18 사적지 세 곳을 소개한다. 주관적인 소견일지언정 외지인을 대상으로 십수 년 동안 사적지 해설을 해온 역사 교사로서 자신 있게 권한다. 그곳에 상주한 해설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금상첨화일 테다.
자가용을 직접 운전해 다니면 시간은 절약할 수 있지만, 도심을 걸으면서 누리게 되는 색다른 경험을 할 수 없다. 가급적 대중교통 이용을 권하는 이유다. 물론, 광주 시내에 산재한 수많은 5.18 사적지를 하루에 다 돌아보긴 어렵다. 현재 지정 관리되고 있는 곳만 30곳이 넘는다.
겸사겸사 광주에서 2~3일 정도 머물 요량이라면, 시간과 동선에 구애받지 않고 느긋하게 돌아볼 수 있다. 묘역 등을 제외하면 주요 사적지가 한 시간 내에 걸어서 찾아갈 수 있는 도심에 모여 있어서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사적지의 위치는 물론, 관련 정보도 미리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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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공원 내 친일파 단죄비.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일제에 부역했던 친일파 윤웅렬, 이근호, 홍난유 등 세 명의 '송덕비'를 뽑아 눕혀 놓고 그들의 친일 행적을 상세히 적은 안내판을 세워두었다. 광주는 역사적 기억을 매우 중요시하는 도시다. |
| ⓒ 서부원 |
공원 입구에는 5.18 사적지 표지석과 함께 '김군'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한 지만원이 증거랍시고 내세운 '광수1호'로 지목된 인물의 동상이다. 그 앞에 서면 사법적 판단까지 끝난 그 황당한 주장을 여전히 믿고 따르는 이들에 대한 분노가 새삼 인다.
일제강점기 조성한 신사 계단을 오르면 주차장 넘어 왼편으로 4.19 기념탑이 보인다. 이곳 주차장은 5.18 당시 급조된 시민군의 훈련장이었다. 조지훈의 시비가 적힌 기념탑의 양옆으로 4.19 당시 희생된 어린 학생들 7명의 부조상이 나란하게 섰다. 5.18에 가려져 있지만, 광주는 3.15 부정선거 당시 전국 최초로 민중 시위가 벌어진 4.19의 발상지다.
계단을 더 오르면 일제강점기 신사 터다. 1929년 11월 3일 메이지 일왕의 생일에 이곳을 참배하고 나오던 일본 학생과 조선 학생 간의 무력 충돌이 3.1운동 이후 최대의 민족운동인 광주학생독립운동이다. 이내 광주 전역이 항일 투쟁의 열기로 뒤덮였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지금은 현충탑이 세워진 신사 터 옆엔 구한말 호남 의병을 대표하는 심남일 의병장의 순절비가 오롯하다. 국권 피탈 직전 일제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항전했던 곳이 호남이었다. 일제는 이른바 '남한 대토벌 작전'을 전개하며 분풀이하듯 그를 비롯한 호남 의병을 무참히 살육했다.
광주공원은 5.18의 정신이 구한말 의병으로부터 광주학생독립운동과 4.19를 거치며 누적된 역사적 산물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공간이다. 그곳에서 만나는 5.18은 앞서 전개된 역사의 프리즘을 통해 훨씬 풍성해진다. 5.18을 넘어 광주가 궁금하다면 광주공원만 한 곳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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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45개 헬기탄흔이 발견된 전일빌딩에서 내려다 본 민주광장 전경. 위로 내외부 공사 중인 옛 전남도청이 보이고, 왼편 파란 지붕의 건물은 당시 시신을 임시 안치했던 상무관이다. 당시의 모습 그대로인 중앙의 분수대 아래로, 2013년 다시 가져다 세운 시계탑이 보인다. 시계탑 아래 스피커를 통해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흘러나온다. |
| ⓒ 서부원 |
이곳은 지난 2011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된 5.18 관련 기록물이 보관, 전시되고 있는 공간이다. 희생자들이 잠든 묘역과 함께 5.18 사적지 중 가장 핵심적인 곳인데도 상대적으로 방문객들의 발길이 뜸한 편이다. 옛 전남도청 주변만 둘러보고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하긴 아시아문화전당(ACC)으로 조성된 옛 전남도청 주변만 해도 사적지가 즐비하다. 당시 모습 그대로인 분수대와 시신들의 관이 임시로 안치된 상무관, 대책 상황실로 쓰인 YMCA와 YWCA 건물, 시민 저항권의 상징이 된 옛 MBC 사옥, 시민 수습 대책위원회가 열린 남동 성당 등이 지척이다. 245개의 헬기 탄흔이 발견된 전일빌딩도 빼놓을 수 없다.
5.18 기록관도 그곳에서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다. 항쟁의 현장이었음을 알리는 금남로 사적지 표지석은 기록관 입구에 세워져 있다. 당시 최고층이었던 전일빌딩과 함께 학살의 현장을 목격했던 사실상 유일한 건물로, 가톨릭 사제들이 주거하고 근무했던 종교 시설이었다.
1~3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도 볼만 하지만, 6층의 가장자리에 마련된 옛 주교의 방과 경당은 필수 코스다. 이름하여 '진실의 눈(The eye of the truth)'이다. 당시 계엄군이 시민을 학살했던 참혹한 현장을 목격한 장소라는 뜻이다. 이후 가톨릭 사제들은 '역사의 증언자'가 됐다.
일부 사제들은 당시 당장 거리로 나가 시민들 편에 서서 싸워야 했지만, 두려움 속에 그들의 고통을 외면했다는 죄의식과 자괴감에 평생 시달려야 했다. 이는 민주주의를 향한 가톨릭의 치열한 반독재 투쟁의 자양분이 됐다. 지금 기록관 3층에선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작인 <소년이 온다> 특별전이 열리고 있어, 45주년을 더욱 뜻깊게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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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주공원에 세워진 4.19혁명 기념탑 전경. 양 옆으로 당시 희생된 학생 7명의 부조상이 서 있다. 광주는 5.18의 도시이자, 4.19혁명의 성지이기도 하다. 기념탑 앞 주차장으로 쓰이는 너른 공간은 5.18 당시 시민군의 훈련장으로 활용되었다. |
| ⓒ 서부원 |
시계탑이 눈에 거슬렸던 전두환 신군부는 1980년대 중반 쥐도 새도 모르게 시계탑을 뽑아 시 외곽으로 옮겼다. 사실상 시민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내다 버린 것이다. 그렇게 30년 가까이 방치되었지만, 가슴 속에 한이 응어리진 시민들은 시계탑의 존재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듯 시 외곽에 덩그러니 서 있던 시계탑을 2013년 봄에 원래의 자리로 옮겨왔다. 왜소할지언정 묵직한 존재감을 뽐내는 5.18의 산 증인으로 거듭난 것이다. 위치상 옛 전남도청과 분수대를 지키는 수문장이자 항쟁의 현장인 민주 광장과 금남로를 잇는 매듭이다.
바로 이곳에서 1980년 5월 21일 오후 1시 애국가를 발포 명령 삼아 계엄군이 앉아쏴 자세로 시민들을 향해 조준 사격을 감행했다. 지금 시계탑은 그 참혹했던 순간을 기억해야 한다며, 5.18 숫자가 겹치는 매일 오후 5시 18분이면 어김없이 비장한 가락의 곡조가 울려 퍼진다. 대한민국 민주화운동을 대표하는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다.
시계탑은 타지에서 온 방문객들이 가장 인상적이었다고 평가하는 사적지다. 묘역 등 다른 사적지를 둘러본 뒤 애써 오후 5시 18분에 맞춰 시계탑에 닿도록 동선을 짜는 이유다. 그들은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되풀이된다'는 5.18의 경구를 되새기게 하는 곳이라고 입을 모은다.
광주공원과 5.18 기록관, 시계탑은 족히 반나절이면 걸어서 모두 돌아볼 수 있다. 시간이 허락해 다른 사적지를 찾을 거라면, 부디 초록색 518번 시내버스를 이용하길 추천한다. 5.18 사적지를 연결하는 노선으로, 5.18 자유 공원이 기점이고 국립 5.18 민주 묘지가 종점이다.
광주엔 4.19 사적지를 잇는 419번 노선도 있고, 대구의 2.28 민주운동을 역사적 의미를 되새기는 228번 노선도 있다. 대구와의 '달빛 동맹'으로 개설되었는데, 광주의 아이들이 2.28과 4.19의 관련성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 5.18의 영향일 테지만, 광주는 역사적 기억을 매우 중요시하는 도시다.
사족. 부디 5.18 45주년이 모두에게 특별하게 기억되길 바란다. 조금 장황하지만, 이 글이 무슨 수학 공식처럼 묘역과 옛 전남도청, 전일빌딩만 둘러본 뒤 광주를 떠나는 외지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해설을 부탁하면 버선발로 달려 나갈 사적지 해설사와 나와 같은 시민들이 광주엔 줄을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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