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하는 자가 없으면, 진실은 두 번 죽는다"
[김성수 기자]
이창훈 4·9통일평화재단 사료실장은 최근 '인혁당재건위 사건 사형수 8인의 약전' <다시, 봄은 왔으나>를 펴냈다. 1975년 4월 9일,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8명의 젊은이가 사형대에 올랐다. 비극의 그날, 한국 현대사 한복판에 깊고도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새겨졌다. 그리고 긴 세월이 흘러, 우리는 다시 묻는다. "그들의 봄은 정말 왔는가?" 이 책은 '잊힌 봄'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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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표지 |
| ⓒ 삼인 |
"재단에 사료실장으로 입사할 때부터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 다만 처음에는 각 개별 열사들의 평전을 만들려고 하다 여러 이유로 인해 그 작업은 어렵게 되었고 그래서 나오게 된 것이 이 책이다."
- 이 책을 쓰면서 가장 안타깝고 어려웠던 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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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저자 이창훈 |
| ⓒ 이창훈 |
"당시 박정희는 위급했다. 국제사회 압력이 대단했다. 그래서 1975년 1월에 민청학련사건 관련자들을 대부분 풀어 주었는데, 풀려난 대학생들이나 지학순 주교와 같은 분들을 환호하는 인파를 보고 박정희가 분노했다. 실제로 신문기사에 박정희가 '국가보안법을 위반한 자들이 마치 개선장군처럼 만세를 불렀다'고 말했다는 부분이 나온다. 10년 동안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자가 자신을 무시하는 모습을 보고 참지 못했던 거다.
정의롭지 못한 세력은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기상천외한 짓거리들을 많이 한다. 게다가 대법원 판결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사형을 집행한 것은 이미 계획된 일이었다. 사형집행명령서를 보면 하루 전 8일에 있었던 재판이 끝나기도 전에 작성된 흔적이 있다. 그것은 사형확정 후 또다시 벌어질 구명운동을 사전에 막아보려는 속셈이었던 것이다."
- 이날 억울하게 사형당한 8분이 어떤 분들인지?
"이 분들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성장기에는 혼란스러운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지켜보아야 했다. 그러다가 4.19혁명이 난다. 이 시기 부산에서 결성된 고교생 사회과학 서클 암장 회원들은 드디어 화산 분출이라는 거대한 시작을 실천에 옮겼다. 또한 대구에서는 어느 지역보다 먼저 한국사회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한국전쟁피학살자유족회 활동이라든지, 교원노조결성투쟁, 2대악법반대투쟁 등이 모두 대구에서 시작되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이러한 투쟁의 중심에 있었던 20,30대 젊은 활동가들이 바로 인혁당 사형수들이었다. 이러한 투쟁경험은 영원히 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를 일으키고 3선 개헌을 해서 대통령이 되고 유신쿠데타를 일으켜 종신집권을 하는 상황에서도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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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07년 1월 23일 무죄판결을 받고 나서. (좌측 여성부터) 고 김진생(송상진선생 부인), 고 이영교(하재완선생 부인), 문정현 신부, 이정숙(이수병선생 부인), 강순희(우홍선선생 부인), 고 신동숙(도예종선생 부인), 유승옥(김용원선생 부인) |
| ⓒ 4.9재단 |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남편들이 다음날 신문에 간첩으로 발표가 된 상황에서 어이없어 하던 부인들이 구명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뜻 있는 목사님들과 신부님들이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시노트 신부님은 지인들 통해 인혁당재건위사건이 조작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가족들을 찾아가 위로하며 구명운동에 함께 해주셨다. 이 분들 도움으로 한국민주화를 위해 가졌던 '월요모임', '목요기도회'에 참석해 인혁당 사형수들의 안타까운 사연들을 전했다.
특히 하재완 선생의 부인 이영교, 도예종 선생의 부인 신동숙, 송상진 선생의 부인 김진생 님들은 대구에서 서울까지 오가며 숱한 시간을 거리에서 보내야 했다. 이렇게 사형수의 부인들이 종교계 정치계 등 사회 인사들을 만나며 구명활동을 벌여나가자 부인들을 연행, 협박하며 '더 이상 남편의 구명운동을 하지 않겠다'는 서약서를 작성하라고 강요했다. 특히 한 부인에게는 환각제를 탄 물을 주고 서명을 강요했다. 그 부인은 남편이 아직도 감옥에 있는데 서약서를 작성한 게 너무도 억울해 자식들과 함께 약을 먹고 죽으려 했다는 사연은 너무도 안타까운 일이었다.
구명운동보다 더 힘든 일은 어린 자식을 돌보는 일이었다. 구명운동을 위해 자주 집을 비우다 보니 어린 자식들을 돌 봐줄 사람이 없었고, 그런 아이들이 거리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빨갱이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는 일이 자주 있었으며, 심지어 가짜 권총을 들이대며 사형 시킨다고 큰소리를 치는 못된 놈들도 있었다. 기가 막힌 일이었다."
- 8분이 억울하게 어느 날 갑자기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후 그 가족들은 어떤 삶을 살았나?
"남편을 잃은 이들에게는 더 무서운 천벌이 다가왔다. 연좌제다. '간첩가족'이라는 딱지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잘리게 하고, 삯바느질을 하던 부인에게는 일감이 줄어들게 했고, 양장점을 하던 부인은 문을 닫게 만들었다. 가까운 친인척들도 도움은커녕 이들을 멀리했다.
가정살림을 하던 부인은 남편을 대신해 돈을 벌기 위해 학습지를 돌리러 거리로 나섰고, 조그마한 구멍가게라도 열어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했다. 이런 힘든 삶을 더 힘들게 한 것은 공안기관의 감시였다. 집 앞에는 경찰초소가 세워지고, 나라에 큰 행사나 외빈이 방문하면 외출을 금지 당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의 아픔을 아는 이들의 도움이었다. 구명운동에 함께 했던 신부님들이나 목사님들은 명절이나 생일이 되면 이들을 찾아와 격려와 선물을 제공했으며, 직장을 구해주거나 자녀들 학자금을 보태 주기도 했다. 또 사형수가족들의 아픈 사연을 국제엠테스티에 알려 회원들이 스스로 나서 격려편지를 보내거나 경제적 도움을 주었다. 이런 구원의 손길 덕에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자녀들은 잘 성장해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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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검찰청이 작성한 도예종씨의 ‘형 선고통지’. 사진 아래 두 개의 도장을 보면 비상고등군법회의 검찰부가 접수한 시각이 '4월 8일 3시'이고, 서울구치소가 접수한 시각은 처음에는 '4월 8일 14시'로 찍혔다가 '9일'로 고쳐졌다. 즉 대법원 선고가 8일 오후에 있었는데, 그 전에 이미 사형선고통지가 있었고, 서울구치소에서는 8일이 맞다면 역시 대법원 선고가 진행되는 시각에 구치소에 벌써 통고가 된 것이고, 고쳐진 9일이라면 사형이 집행된 다음에 사형선고통지서가 도착한 것이 된다. 이렇게 실제 상황과 맞지 않은 공문이 작성된 것은 박정희 대통령이 대법원 형확정 즉시 신속하게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법원절차를 무시한 채 명령을 하달하면서 빚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
| ⓒ 4.9재단 |
"아픈 이야기지만은 87년 6월 항쟁이 터지고 우리사회 곳곳에서 민주화바람이 불었다. 항쟁 직후 87년 7, 8월 노동자대투쟁이 있었고 대통령은 직선제로 선출하게 되었다. 그리고 88년에는 분단올림픽을 반대하는 통일운동도 거세게 일어났다. 광주민중항쟁도 국회에서 진실규명을 위한 청문회가 열렸다.
그리고 박정희 전두환 정권시절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이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명예회복투쟁도 벌어졌다. 이때 인혁당 사형수의 부인들도 남편들의 명예회복을 위해 나섰다. 그런데 '간첩의 부인들'이 이곳에 왜 왔냐며 냉대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처럼 메카시즘이 6월항쟁 이후에도 우리사회 전반을 지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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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2025년 4월 9일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4.9통일열사 50주기 추모제' 광경. |
| ⓒ 4.9통일평화재단 |
"조언할 생각이 없다. 박씨는 당장 진화위 위원장에서 사퇴해야 한다. 박씨는 대통령에서 탄핵당한 윤씨가 헌법재판관 친인척이라 탄핵을 모면해보고자 임명한 것이다. 박씨는 박정희 전두환을 칭송하는 사람인데 그 정권에서 자행된 인권탄압사건을 조사하는 진화위 위원장으로 임명된 자체가 부당한 것이다. 이제 윤씨도 탄핵된 마당에 뭘 더 기대하나. 조언을 하라면 바로 사퇴하라는 말밖에 없다."
- 이제 6월 3일이면 새로운 정부가 탄생할 것 같다. 새 정부에 인혁당사건과 관련해 바라는 바가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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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9통일평화재단 이사장인 문정현 신부가 직접 서각한 재단 |
| ⓒ 4.9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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