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영국노동자는 좌파, 한국노동자는 우파를 지지할까

김성수 2025. 5. 2.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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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 사는 '이중국적자'가 아닌 '이중감정자'가 보는 한국

[김성수 기자]

 한영기
ⓒ 김성수
지난 35년간 영국에서 살고, 공부하며,영국 여성과 결혼해 애 낳고 부부싸움하고 살며 느낀 점이 하늘의 별 만큼 많다. 내 전공이 역사고, 취미가 BBC뉴스와 역사 다큐 보는 것이니 내 느낌이 아주 일리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아무리 영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어도,나는 자주 한국이 그립다. 한국의 문화, 냄새, 심지어 소음까지도 그립다. 전에 가족과 함께 한국에 갔다. 그런데 한국에 머무는 동안,이번에는 영국이 그리워지기 시작했다. 영국의 문화, 풍경, 심지어 영국의 날씨까지도 말이다.이상하게도, 영국에 있을 땐 한국이 그립고, 한국에 있을 땐 영국이 그립다.어쩌면 나는 욕심쟁이일지도 모른다.나는 '이중국적자'는 아니지만 분명히 '이중감정자'다.

하지만 그게 바로 나다. 삶이 힘들고 슬플 땐,우리는 평화로운 천국을 그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설령 평화로운 천국에 있더라도, 우리는 이 바쁘고 소란스러운 삶이 그리워질 수도 있다. 자, 이제 그러면 내가 느끼는 점을 나누고 싶다.

전통적인 정치학 이론에 따르면 노동자 계층은 자연스레 좌파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런 상식을 뒤엎는 흥미로운 예외 사례로, 내가 대학에서 공부할 때 만난 영국 정치학자들도 이런 이례적인 한국 상황에 고개를 갸우뚱 했다. 영국노동자들은 증조부 시절부터 '붉은 깃발'을 높이 들고 노동당에 투표해 왔다. 반면, 한국 노동자들은 열정적으로 보수 후보에 표를 던지며 BTS의 노래를 흥얼거린다.

한국과 영국의 노동자 계층

영국에서는 런던의 비처럼 예측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광부, 공장노동자 그리고 실제로 스패너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이 전통적으로 노동당 지지의 중추를 형성해 왔다. 선거철이 되면, 그들은 파란 작업복에 빨간 노동당 배지를 달고 오후 4시 '티 타임'처럼 규칙적으로 투표장으로 향한다.

영국 노동자 계층은 전통적으로 자신이 '노동자'이니 이름도 똑같은 '노동당(Labour Party)'을 늘 지지해왔다. 이들은 사회복지, 공공서비스강화(무상의료, 무상교육), 노동자 권익보호 등을 핵심 가치로 삼는 노동당 정책에 공감하며, 자신들의 삶과 직결된 문제들을 해결해 줄 정당으로 노동당을 선택한다. 최근에는 일부 유권자들이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며 다른 정당에 눈을 돌리기도 하지만, 여전히 노동당은 노동자 계층의 주요 지지 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한국 노동자 계층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한국에 살 때도 대학은 가정형편상 못가고 상업고등학교를 나온 중학교 동창이 조선일보를 보며 자기와 배경이 같은 '자수성가'형 인물 노무현 대통령을 증오하고 보수 정당에 표를 던지는 것을 봤다.

왜 그럴까? 이는 여러 가지 요인에 기인한다. 한국 노동자들은 보수정당이 추진하는 친기업 정책과 경제성장 중심 전략이 일자리를 창출하고 생활 수준을 향상시킬 것이라는 믿음과 기대감이 있다. 또 보수정당의 강경한 안보 정책과 대외 관계에서의 단호한 태도가 대한민국의 안전과 번영을 보장할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보수정당이 강조하는 가족 중심 가치관과 전통적인 사회 질서 유지에 공감하는 유권자들이 많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한국 노동자 계층은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면 무리한 추측일까?

북한과 서울이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한국인을 좌파로 밀어낼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다. 한국에 살 때 한 서울 공장노동자가 내게 한 말을 인용한다.

"네, 저는 12시간 교대로 일하고 집세를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38선 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보셨나요? 차라리 재벌과 함께 사는 게 낫겠습니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당의 '반공콤플렉스'를 앞세운 캠페인이 이 정도면 성공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한편, 영국에서는 공산주의 위협에 가장 가까운 것이라고는 지난주에 유투브에서 갑자기 마르크스를 발견하고 가족 저녁 식사 중 그것에 대해 열을 내며 이야기하는 대학생 정도다. 어제 우리동네 지방선거를 했는데 투표용지 제일 아래쪽에 '공산당'이 있는 것을 보고 조금 놀랐다. 영국에 35년 살았지만 영국에 공산당이 있는지도 몰랐다. 물론 공산당 국회의석은 아직 한 석도 없다.

'한강의 기적' 그리고 '템스강의 이슬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한국은 박정희 군사독재 하에서 기술 강국으로 빠른 경제 변혁을 이룩했다. 이는 노동자 계층에게 특별한 형태의 박정희 향수를 만들어 냈다. "우리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 중 하나였던 때를 기억하세요? 좋은 시절이었죠"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러나 우파 보수 또는 극우정권 하에서의 급속한 경제발전 기억은 여전히 강력하다.

반면 영국 노동자 계층은 국민건강서비스(NHS, 무상의료)와 무상교육 그리고 공공주택을 제공한 2차 세계대전 후 노동당 정부를 그리워한다. 결국 "다른 나라, 다른 정치"인 셈이다.

이러한 한국과 영국의 정치적 선택의 차이는 때때로 풍자와 코미디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영국노동자들: "우리는 노동당을 지지해. 왜냐하면 우리를 위한 정책을 펴니까."
한국노동자들: "우리는 보수당을 지지해. 왜냐하면 그들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니까."

공자왈, 어른을 공경하고 재벌도 공경하라!

한국의 오랜 유교 전통은 위계 질서와 권위에 대한 존중을 강조하는데, 이는 보수 정치와 잘 맞아떨어지는 가치다. 유교문화 기반이 2,500년에 달하는 사회 질서 존중을 포함하고 있다면, 한국에서 급진적인 변화를 지지하기 위해 대열을 깨는 것은 마치 정장 결혼식에 반바지나 배꼽티를 입고 슬리퍼를 신고 가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반면, 자본주의의 역사가 세계에서 가장 길고 계급 투쟁의 수세기 역사에 더 많은 영향을 받은 영국 노동자 계층은 사장이나 상관에게도 정확히 하고 싶은 말을 표현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문화적 거리낌이 없다. 직장에서도 상관과 부하직원 간에 대화를 할 때 또 친척들이 모였을 때 할머니 할아버지 수준을 제외하곤 삼촌 수준까지는 보통 거의 '퍼스트 네임'을 쓴다.

삼성인가 NHS(무상의료)인가? 충성의 문제

한국에서는 경제를 지배하는 재벌들이 기업 애국심을 길러 왔다. "삼성에 좋은 것이 한국에 좋다"는 말은 냉소적인 기업 슬로건이라기보다는 한국에서는 널리 받아들여지는 만고의 진리다. 노동자 유권자들은 종종 그들의 근로조건을 저주하면서도 동시에 재벌기업의 성공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국가번영에 필수적인 것으로 본다.

한국경제를 지배하는 광범위한 가족 중심 재벌들은 마치 자비로운 (혹은 그다지 자비롭지 않은) 중세 영국의 봉건영주와 같은 위치를 누리고 있다. 일자리를 제공하고, 소속감을 주고, 가끔 회사 야유회에서 어색한 노래방 시간을 선사한 재벌들은 노동자들에게 회사의 주가상승이 곧 자신의 성공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설득하는 부성적 자본주의 기술을 완벽하게 터득했다. 그래서 잊을 만하면 "분기별 보너스를 생각해 보세요"라고 속삭인다.

반면, 한국 정치지형에서 다수 직장인들의 권익을 위한 노조는 종종 오히려 급진적인 선동가로 수구 언론에서 묘사된다. 끊임없이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심지어, 감히? 산업안전을 요구한다. 물론 이러한 노조는 국가 경제 경쟁력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된다. 특히 보수언론은 노조 지도자들을 불같은 연설과 자기 분신이라는 기이한 취미를 가진 만화 같은 악당으로 자주 묘사한다. 이것은 법원이나 검찰청 앞에서 체포를 가끔 피하는 세련되고 잘 차려입은 재벌 회장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대조될 때 특히 설득력 있다.

또한 많은 한국 노동자들, 특히 중산층은 자신을 미래의 재벌임원 연수생쯤으로 여긴다. 그들은 열심히 일하고, 지옥 같은 야근을 견디고, 완벽한 회식 기술을 정복하면 자신도 엘리트 계층에 합류할 수 있다고 굳게 믿는다. 물론 재벌가문들이 최고위직을 가족 내에서 유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사실을 편리하게 무시한다. 매주 복권을 사면서 자신이 현명한 투자자라고 확신하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 영국 노동자들은 기업이 아닌 NHS(무상의료), 무상교육과 같은 소중한 공공기관에 충성을 맹세한다. 차이는 뚜렷하다. 한국인들은 고용주를 보호하기 위해 싸우고, 영국인들은 '성악설'을 믿기에 고용주의 최악의 본능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는 공공서비스를 지키기 위해 투표하고 필요할 때 시위한다.

나를 포함한 한국 기성세대는 강력한 반공 백신 '빨갱이' 세뇌를 아주 어려서부터 국가에서 무료로 접종받았다. 이 이념적 예방 접종과 세뇌 교육은 수십 년간의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권위주의적 통치를 통해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좌파"는 "북한 동조자" 또는 "빨갱이'와 동의어다. 그리고 그런 효과는 너무 강력해서 오늘날에도 많은 노동자 유권자들은 "진보적 정책"이라는 말을 듣고 본능적으로 북한에서 날아오는 미사일이 있는지 스마트 폰을 확인할 정도다.

한국과 영국, 같은 교통체증을 피하기 위해 각자 선택한 다른 길

영국과 한국 노동자 계층은 궁극적으로 같은 서민, 같은 인간으로서 결국 같은 것을 원한다. 그것은 행복한 가정, 병원비나 교육비 걱정 없는 나라, 괜찮은 임금, 직업안정성, 적정한 주택가격 그리고 간혹 실존적 공포에서 벗어나 가족 또는 친구와 즐거운 주말을 보내거나 해외 휴가를 가는 것 등이다. 그들은 단지 이러한 목적지, 즉 '삶의 행복'에 도달하기 위해 다른 정치 수단을 선택했을 뿐이다.

한국 민주주의가 성숙해지고 영국이 브렉시트 이후 정체성 위기를 겪으면서, 아마도 두 나라의 노동자 계층은 결국 어느 시점에서 합리적인 중간 지점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정책이 정치적 색깔보다 더 중요하고, 유권자들이 역사적 습관이나 문화적 반사 작용보다는 진정한 자기 이익에 기반해 자신과 가족의 행복을 위해 정당을 선택하는 장소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한국이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날이 '한강의 기적'처럼 '빨리빨리' 오기를 기대하고 꿈꿔본다. 그러니 오는 6월 3일, 한국의 노동자, 서민들이여 제발 투표 좀 잘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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