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동거까지 예상했겠어, 가출이 하고 싶었던 거지

서나연 2025. 5. 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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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동반자법 발의를 찬성합니다

[서나연 기자]

ⓒ 연합뉴스=OGQ
대학 휴학 후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나는 대뜸 가출했다. 남자친구와 연애하던 것을 엄마에게 걸렸기 때문이다. 그 사랑은 너무 농밀해서 영어 문제집 사이에 끼워져 있다가 엄마가 우리 딸 공부 잘하고 있나 보자고 펼쳐본 날 떨어져 버렸다. 썩어서 거름이 될 일만 남은 꽃잎처럼 말이다. 그 작은 종이에는 남자 친구의 개인적인 정보가 적혀 있었다. 천사 같은 딸, 순결해야 하는 딸이 이런 짓을 하다니. 엄마는 나에게 대단히 실망했다. 계속 엄마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그녀의 모든 말에 복종하거나 싸워 이겨야 했다. 나는 둘 다 자신이 없었다.

가출한다는 건 말 그대로 가족에게서 벗어난다는 뜻이다. 모아둔 돈이 없었던 나는 지역저축은행에서 300만 원을 빌렸다. '대학 휴학생 대출'이었는데 이자가 15퍼센트 정도였다. 남자 친구도 누나가 두 명이나 살고 있는 집을 나와서 함께 살기로 했다. 보증금을 뺀 나머지 돈을 생활비로 쓰면서 직장을 구했다. 직장에는 그냥 독립해서 혼자 살고 있다고 말하고선 말이다. 우리 엄마도 나를 이해 못 해주는데, 다른 사람들은 오죽할까 싶었다. 실제로 2013년 당시 한국의 비혼 동거 가구 비율은 전체 가구의 약 1.75%였다고 한다. 동거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정적이었음을 말해주는 지표다. 나와 남자 친구는 제일 가까운 곳에 있었지만, 서로의 수술 동의서를 써줄 수 없었고, 함께 살 집을 얻기 위해 신혼부부 대출 같은 것을 받을 수도 없었다.

프랑스에는 PACS(Pacte civil de solidarite)라는 제도가 있다. 결혼보다는 덜 무겁고, 이별하더라도 '돌싱' 딱지가 붙지 않는다. 주거, 의료 등에 대해 일부 권리를 인정하고, 이혼보다 간편한 해지도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프랑스인의 절반 이상은 결혼보다 PACS를 선호한다. 관계에 실패했다는 낙인보다, 같이 살다 보니 그냥 달랐다는 식이다.

온종일 일하다 쓰러져... 다시 집으로

결혼 전에 '함께 살아보기'가 '사회적 선택지'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매우 달랐다. 서로 사랑한다고 믿어서 함께 살기 시작했지만, 그보다 중요했던 것은 우리의 생활을 이어가는 일이었다. 나는 대출을 얼른 갚으려고 일주일에 6일씩 일했지만, 남자 친구는 게임 아이템을 팔아 돈을 벌겠다며 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 있었다. 법적으로 아무 권리도, 의무도 없는 사이였지만 당장 내 동거인이었기에 굶길 수는 없었다. 급기야는 내가 용돈을 주는 상황까지 되었다.

그 와중에 임신을 할까 봐 두려웠다. 생활비가 모자랄 때마다 빌린 대출은 1000만 원 가까이 늘어났다. 휴학 연장 신청을 놓치면서 '고졸 대출'이 되어 이자도 38퍼센트가량으로 펄쩍 뛰게 되었다. 그제야 나는 이러다 죽겠다는 생각을 했다. 원룸 월세와 이자, 관리비 등 숨만 쉬어도 100만 원이 넘게 나갔다. 아침에는 주유소, 점심부터 오후까지는 콜센터, 오후부터 밤까지는 떡볶이집 주방일을 하며 조금씩 원금을 갚았다. 그러다 쓰러졌다. 생리를 하지 않았다. 일하던 떡볶이집 사장님이 한약을 지어 원룸 현관 앞에 놔두고 가신 걸 아직 잊지 못한다. 그런 따스함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리고 내가 돌아간 곳은 결국 또 집이었다.

'집'을 갖는 건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유년 시절 부모님의 이혼을 겪은 나는 빨리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가지고 싶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준비 없이 내게 남은 건 상처와 빚이었다. 엄마에게 대출금과 이자는 비밀에 부쳤다. 그래도 월세와 식비, 관리비를 아낄 수 있으니 막내딸 습관처럼 칭얼대던 소리는 쏙 들어갔다. 철이 들 기회라고 믿고 또 믿으며, 일 년이 조금 넘었을 때, 이자와 원금을 모두 갚았다.

제도가 감정을 지켜주지 못한 시대
ⓒ 언스플래쉬
그로부터 오 년 후, 나는 동거가 아니라 혼인 신고를 하게 된다. 결혼식보다 혼인 신고가 먼저였다. 이유는 단순했다. 신혼부부 청약. 현실이 먼저였지만, 오히려 그래서 믿을 수 있었다. 이번엔 내가 지켜질 수 있는 사랑이길 바랐다. 제도의 부재가 감정을 망가뜨렸듯, 제도의 안정은 쉽게 감정의 꽃이 피게 했다고 해야 할까. 아플 때 지켜줄 사람, 원가족을 떠나 내가 가질 수 있는 보호막을 나는 사랑하고 싶었다. 그래야만 했다.

그러나 '결혼'만이 사랑은 아닐 터, 한국은 '사랑을 지키기 위한 장치'가 부족한 사회다. 2023년 4월 26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혼인이나 혈연관계가 아닌 성인 두 사람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의 '생활동반자법'을 국내 최초로 발의했다. 결혼과는 다른 형태의 '공적 파트너 등록' 제도라고 한다. 동성결혼 합법화와 관련하여 중요한 논의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나는 이성애자지만, 고등학교 때 단짝 친구와 파트너십을 맺을 기회도 있었다. 백 년만 더 늦게 태어났어도 말이다. 성별에 상관없이 두 사람이 가족처럼 공동체를 구성하며, 유럽을 중심으로 이미 다수 국가에 도입되었다고 한다. 나는 남자와 동거했지만, 그 시절 나를 가장 이해해 주었던 친구는 여자였다. 우리는 가족이었고, 서로를 지켰다. 성별이 달라야만 사랑이고, 보호받아야 한다는 법은 나에게 그저 낯설기도 하다.

약간 사담이지만, 나에게는 남편 시험이 그거였다. 내 동거 과거를 알릴 것. 그리고 그것을 이해하는 남자일 것. 나는 남편이 매우 마음이 넓은 사람이라고 점수를 줬지만, 지금은 그 말도 바꾸고 싶다. 그냥 덜 보수적인 사람이라고. 동거하는 데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말이다. 가출을 하고 싶었던 거지, 동거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제도가 감정을 지켜주지 못한 시대에, 우리는 감정으로 제도의 부재를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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