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고 또 걷고... 발에 물집 생기자 아이가 자랑하며 한 말

공지욱 2025. 5. 1.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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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자유학교 6학년 중요 과업 '12일간의 제주도 도보 여행'이 남긴 아름다운 흔적들

[공지욱 기자]

 학교 식구들의 응원을 받으며 힘차게 들살이 출발!
ⓒ 공지욱
고양자유학교 아이들은 초등 1학년부터 부모님과 떨어져 생활해보는 것을 시작으로 스스로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고 자연 속에서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만끽하는 '들살이'를 1년에 두 번씩 한다. 그렇게 12학년(고3)까지 들살이는 다양한 꼴로 펼쳐진다.

특히 6학년의 중요한 과업은 12일간의 제주 도보 들살이(여행)다. 들살이를 전후하여 교실에서는 '제주'라는 키워드를 과학, 사회, 역사, 음악 등의 과목에서 배운다. 제주 땅의 구조와 지형, 4.3, 제주 문학과 문화 등으로 풀어내고 엮어낸다. 아이들은 그 배움을 들살이를 통해 교실 밖에서 자신의 두 발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담아낸다. 또한 스스로 세 끼를 해 먹으며 제주 한 바퀴를 돌면서 자신의 한계를 만나는 도전과 극복 속에 용기와 인내, 성취감을 얻는다.

사람은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아이들에게 제주 들살이의 추억이 저마다의 모습으로 남아 때때로 곶감 빼먹는 달달함을 줄 터, 오늘 나도 지난해 만들어진 그 곶감을 하나 빼 먹어보려 한다.

[길 위에서의 배움①]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배운다
 고양자유학교 6학년 12일간의 제주 도보 여행
ⓒ 공지욱
#들살이 2일차_한참 국도를 걷다가 멋진 바다 풍경을 기대하며 아이들을 올레길로 안내했다. 꼬불꼬불 골목길을 한참 들어갔다. 드디어 바다가 보이는데 공사로 그 길이 막혀 있었다. 왔던 길을 돌아가 다시 걸어야 했다. 허탈함에 한숨을 쉬는 아이들을 보며 나는 미안함에 할 말을 잃었다. 혹시 갈 수 있는 길이 있을지 조금 더 내려갔다 돌아왔는데 아이들은 그새 신나 있었다. 암벽 등반 하듯 돌 언덕을 오르고 언덕 위에서 솔방울을 던지며 놀고 있었다. 언덕에 올라가니 바닷바람이 정말 시원했다. 길이 막힌 김에 쉬며 도시락을 먹었다.

#들살이 4일차_그날은 아침부터 비가 왔다. 오전 내내 비는 부슬부슬 내렸다가 그쳤다가 쏟아지기를 반복했다. 12kg 배낭 위로 비옷을 입고 25km를 걸어야 하는 우리에게 두두두 떨어지는 비는 '함께'이기에 낭만적이었다. 꿉꿉함이 그 낭만마저 밀어내려 할 때쯤 다행히 해가 났다. 햇살 아래 아이들은 오늘 저녁 메뉴인 떡볶이 이야기를 꺼냈다. 떡볶이가 얼마나 맛있는 음식인지, 어떤 조리법을 준비해왔는지, 떡볶이 먹을 생각하면 힘이 나서 걸을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숙소 가는 길의 마지막 마트에 도착했다. 그런데 검색했을 때 '영업중'으로 떴던 그 마트는 굳게 닫혀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다른 마트를 가려면 8km를 돌아가야 했다. 10시간을 걸었으나 떡볶이 재료 없이 숙소에 도착한 우리는 둥글게 앉아 회의를 시작했다. 그리고 가방에 넣고 다니던 짜장가루를 꺼내 끓였다. 건더기는 없지만 그래도 짜장가루와 쌀을 메고 다녀 다행이라고, 그리고 하물며 너무 맛있다고 모두 입을 모았다. 고춧가루를 뿌려 반찬을 대신하며 싹싹 다 먹었다.
 고양자유학교 6학년 12일간의 제주 도보 여행
ⓒ 공지욱
그 후 아이들은 그 당시 유행하던 '첫 만남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라는 노래를 개사해 부르며 깔깔거리며 걸었다.

'제주도는 너무 어려워~♪ 계획대로 되지 않아서~♪'

교실에서는 교사가 배움의 많은 부분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난다. 그것은 당위적이고 필수적이다. 그런데 교사가 의도하지 않은 상황에서 더 큰 배움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 순간이 교사로서는 정말 짜릿하다.

아무리 많은 준비를 해도 들살이에서는 돌발상황이 반드시 생긴다. 계획에 없던 일을 만났을 때 아이들은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선택해서 앞으로 나아간다. 어떤 때는 교사의 생각을 뛰어넘는 방도를 찾아낸다. 어떤 때는 이런 일은 별거 아니라며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교사의 걱정을 허공으로 날려버린다. 흔히 말하는 문제해결능력, 상황대처능력, 유연성 같은 것들이 아이들에게 쌓인다. 그런 순간이 반복되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바뀌어있다. 그 빛나는 아이들의 모습을 곁에서 보고 있으니 어찌 짜릿함이 없겠는가!

[길 위에서의 배움②]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

#들살이 10일차_그날은 유독 해가 뜨거웠다. 덕분에 덜 마른 옷을 가방에 달고 다녔다. 아이들의 다리가 쳐졌다. 걷기 시작한 지 5시간. 앞으로 걸을 시간이 곱절은 더 남아 있었다. 배가 고프다는 푸념이 길었지만 점심 먹을 마땅한 장소가 나오지 않았다. 그러던 중 겨우 그늘을 만났고 털썩 주저앉아 설익고 무슨 맛인지 모르겠는 차가운 도시락을 까먹었다. 하필이면 왜 이렇게 힘든 날, 밥이 설익느냐, 말이다. 옆에서 쌩쌩 달리는 차들이 얄미운 그런 날이었다.

기운이 없어 수다도 끊긴 즈음 지나가던 자동차가 비상등을 켜고 서더니 어떤 아주머니께서 차에서 내려 돌아 걸어 아이들에게 오셨다. "학생들 도보 여행하나 봐요. 너무 대단해. 이거 먹어요." 먹기 좋게 손질되어 비닐팩 안에 가득 담긴 시원한 망고를 건네주셨다. 감사의 인사를 여러 번 하고 아이들은 망고를 머리 위로 들며 기쁨과 감사의 환호성을 질렀다. 잠시 뒤 한 아이가 외쳤다.

"잠깐만. 이거 새옹지마예요, 딸기! 생각해보니 제주도 걸으면서 계속 그랬어요! 우리 새옹지마를 하루에 여러 번 겪어요!" 또 어떤 아이는 "우리는 진짜 복이 많아요!"하고 외쳤다.

차를 세워 옥수수를 주신 분, 한라산 오를 때 과자를 주신 분, 길에서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을 때 얼음물을 주신 식당 사장님, 달리던 차 창문을 내려 파이팅! 외쳐주신 분, 음료수를 건네주신 오징어를 말리던 사장님까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떠올랐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는 모든 것을 한 입씩 나눠 먹었다.
 내가 책임지는 내 짐의 무게와 삶의 무게.
ⓒ 공지욱
#들살이 5일차_10kg 넘는 가방을 메고 종일 걷고 걸어 5일차쯤 되니 발에 물집이 잡히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발을 치료해주며 아파서 걷기 힘들었겠다는 교사의 말에 아이는 물집 잡힌 부분 덜 닿게, 덜 아프게 걷는 법을 안다며 자랑하고 웃어 보였다. 그 옆에서는 많이 걸어서 발바닥에 새로운 줄이 생겼다고, 새로운 족문이라며 발을 치켜들었다. 신기하게도 같은 자리에 같은 길이의 족문이 생긴 아이가 또 있었다. 우린 발바닥 두 개를 보며 함께 웃었다.
# 들살이 6일차_캠핑장 데크 위에 침낭을 깔고 잔 5일차와 어느 회관의 식탁 사이에 침낭을 깔고 잔 6일차는 모기가 많았다. 모기에 잔뜩 물린 한 아이는 두 팔을 얼굴 앞에서 교차하며 모기빔을 쏠 수 있다고 웃었다. 또 다른 아이는 모기 물린 곳에 연고를 바르다가 모기 물린 곳의 털이 하얀색으로 변했다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 부분이 햇살을 받아 하얗게 반짝이고 있었다. "제주 들살이에서는 털 색깔도 바뀌네~ 신기하다~" 하면서 우리 모두 깔깔 웃었다. 그렇게 우리는 웃고 있었다.
 조금 더 자고 싶은 아이들.
ⓒ 공지욱
#들살이 10일차_아이들은 들살이 출발 전부터 밖에서 어떻게 자냐며 걱정했다. 32km를 걸어 그날 숙소인 해수욕장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모래 위에 두레(반) 이름을 새기고 헤드랜턴을 끼고 물 빠진 밤바다 위를 산책했다.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늘의 별이 바다에 내려앉은 듯했다. 그리고 야영장 정자에 침낭을 펴고 누웠는데 별빛 조명이 바로 옆에 내려앉았다. 걱정은 어느새 저 멀리 떠났고 우리 곁에는 황홀하게 빛나는 밤이 남았다.

우리는 들살이를 통해 온몸으로 알게 된다. 모든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마음대로 되지는 않지만 동시에 그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마냥 계속 나쁘기만 한 일은 없다는 것을. 오늘 하루는 충분히 빛나는 날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길위에서의 배움③] 나를 서게 하는 것들
 함께 맞이하는 12번의 아침.
ⓒ 공지욱
# 들살이 1일차_제주도에서의 첫날 밤은 농원 비닐하우스 안 팔레트 위였다. 이튿날 아침 식사 당번인 모둠은 새벽 4시 반에 일어났다. 코펠에 밥을 짓고 싱크대 없는 수돗가에서 설거지를 했다. 아침을 해 먹고 점심 도시락을 싸고 화장실 1개를 12명이 쓰며 나갈 준비를 하는데 3시간이 넘게 걸렸다. 3일차가 넘어가니 아이들은 걷는 것보다 밥하고 빨래하고 숙소 청소하는 것이 더 힘들다고 했다. 나의 일상을 채웠던 부모님의 손길에 무심했던 자신을 만난다.
제주 들살이에서 아이들은 비일상적인 상황에서 일상을 살아간다. 하루 20~33km를 걸으며 낯선 환경에서 먹고, 자고, 입는 일상을 스스로 책임지고 해내야 한다. 그건 굉장히 고된 일이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아침 준비 시간이 줄었다. 아이들은 자신의 역할이 아니더라도 바쁜 곳에 손을 보탰다. 다친 발과 팔로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버너, 코펠, 도마, 남은 식재료 등 공통의 짐을 가방에 넣어야 할 때 컨디션이 안 좋은 친구의 짐을 조용히 자신의 가방에 담았다. 아이들은 어느새 힘든 와중에도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점심 도시락을 싸는 멋진 셰프들! 들살이 기간 동안 아이들이 계획한 식단으로 아침,점심,저녁 모두 만들어 먹는다.
ⓒ 공지욱
우리는 길 위에서 나를 만나고 타자를 만난다. 그리고 알게 된다. 함께 하는 친구들과 여러 도움의 손길로 내가 많은 것을 해낼 수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나는 누군가에게, 누군가는 나에게 그렇게 서로의 어깨를 기꺼이 내어주며 우리가 서게 된다는 것을 말이다.

그 시간을 살아낸 아이들과 그 곁에서 오래 아이들을 지켜보는 사람들은 들살이의 힘을 안다. 그 시간이 아이들 몸과 마음에 스며들고 그것이 아이들의 마음 밭에서 고요히 피어올라 아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채워준다는 것을. 그것을 바탕삼아 오늘도 아이들은 기쁘게, 단단하게 한 걸음 내디딘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나는 그 길에 오르는 아이들에게 올해도 온 마음 담은 응원을 보내는 일을 게을리할 수 없다.
 고양자유학교 6학년 12일간의 제주 도보 여행
ⓒ 공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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