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재무장관의 충격적 발언... 한덕수 대행은 답하라

강명구 2025. 4. 30. 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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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구의 뉴욕 직설] 한미 무역 협상이 조기 대선용? 졸속 협상 경계하고 사후 책임 명확히 해야

[강명구 기자]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워싱턴 DC 백악관에서 진행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 경제 성과 브리핑에서 발언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는 그들이 협상 테이블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를 마무리하고, 이후 귀국하여 선거 캠페인에 활용하려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있다."

지난 4월 29일(현지시간), 미국의 스콧 베선트 재무부 장관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예상은 했지만 다소 놀랐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한미 무역 협상을 조기 대선용 정치 이벤트로 활용하려 한다는 사실을 미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기자와의 질의응답 과정에서 나온 이 즉흥 발언은 외교적으로는 실언에 가깝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트럼프 정부의 본심이 고스란히 드러난 것으로 보인다. 한덕수 권한대행은 지금이라도 분명히 답할 의무가 있다. 이번 대미 협상이 본인의 조기 대선용인지 아닌지 말이다.

조기 대선용 한미협상인가

4월 24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2+2 고위급 통상 협의에는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포함 8개 부처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보도에 따르면 파견된 인원이 60명 넘는 대규모였고 협상 내용도 광범위하다. 관세 완화, 조선업 기술 협력, 미국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농산물 시장 개방, 디지털 서비스 규제 완화, 통화 정책 협의까지 모든 분야를 일괄 대상 협상으로 올렸다.

문제는 그 구체적 협상 내용이 국민에게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바에 따르면, 분야별로 실무협상을 계속해 5월 15~16일 제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통상 장관 회의에서 고위급 협상을 통해 일괄 타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모든 일정은 6월 3일 대통령 선거를 의식한 듯 5월 중순까지 협상의 틀을 마무리하려는 흐름과 맞물려 있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도 이런 정황을 뒷받침한다. 그는 "이들 정부는 선거 전에 미국과 성공적인 협상을 이뤘다는 점을 유권자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오히려 협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밝혔다. 이 말은 협상이 경제적 필요에 따른 것이 아니라, 정치적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미국도 알고 있다는 의미다.

한덕수 대행도 최근 국무회의에서 "한미 간 기본 틀에 대한 원칙적 합의를 이끌어냈으며, 불확실성을 상당 부분 해소했다"고 자평했다. 그러면서 "국익을 위해 결단해야 한다"는 표현까지 사용했다. 여러 논란이 있지만 일부 불리한 조건도 과감히 받아들여 한미 협상을 5월 중순까지 타결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하지만 선거용 성급한 접근은 결국 장기 국익을 해친다. 이번 한미 협상은 그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하나같이 민감한 사안들로 채워져 있다. 관세 완화는 단기적으로 유리해 보이지만, 철강, 반도체, 자동차 등 핵심 산업에 품목별 쿼터 제한이 붙을 수 있다. 수출이 제한되면 경쟁력은 자연히 떨어진다.

조선업 협력도 문제다. 명분은 상생이지만, 실제로는 기술 이전 요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조선 기술력은 한 번 넘기면 다시 회수하기 어렵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의 압도적인 조선 능력은 안보 및 방산 협력 등 다른 분야의 주요 쟁점과 연계해 협상 레버리지로 활용할 수 있는 중요한 자산이다. 미국 측이 사정하고 한국 측 조건을 들어줘야 하는 분야라는 얘기다.

에너지와 농업, 디지털도 마찬가지다. 미국산 LNG 수입 확대는 에너지 다변화를 막고, 고정 가격 계약은 시장 유연성을 해친다. 농산물 개방은 이미 위기에 놓인 농촌 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특히 축산물 수입 확대는 지역 유통망까지 흔든다. 디지털 분야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면, 데이터 이전과 규제 완화가 동시에 따라온다. 그 결과, 한국의 디지털 주권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이 모든 쟁점을 권한대행 정부의 조기 대선용 필요에 따라 '일괄 거래' 형식으로 추진하면 안 된다. 트럼프 정부가 한국을 배려해 호의를 베풀 상황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고, 결국 중장기 국익을 해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언론이라도 나서서 5월에 있을 한미 협상 결과를 매의 눈으로 주시할 필요가 있는 이유다.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회의 및 국제통화금융위원회(IMFC)' 참석차 미국 워싱턴D.C를 방문중인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함께 24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재무부에서 열린 '한-미 2+2 통상협의'를 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트럼프식 관세, 미국 내부에서도 흔들려

언론에 의해 이미 많이 보도되었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적 관세 전략은 미국 내부로부터 점점 더 강력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익히 알려져 있듯, 트럼프 정부의 고율 관세 조치는 즉각 금융시장부터 흔들었다. 관세 발표 직후, 미국 제조업과 소매업 주가가 급락했고, 채권시장 금리는 급등했다. 관세로 인한 생산비 상승이 기업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시장을 덮은 결과다. 투자자들은 방어적 포지션으로 이동했고, 시장 전체는 불확실성과 변동성에 빠져들었다.

이 충격은 빠르게 실물 경제로 번지는 중이다. 미국 제조업체 상당수는 부품과 원자재를 해외, 특히 중국에서 들여온다. 여기에 고율 관세가 부과되면서 생산비가 급격히 상승하고 있다. 생산비가 오르면 가격도 오르게 마련이고, 이는 소비자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미국 전역에서 기업들이 관세 부담으로 인해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공급망도 엉켰다. 운송비, 창고비, 재고 조정 비용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더 오르고 있다. 그 부정적 효과가 본격적으로 가시화된 현 상태가 유지될 경우 여름 이후 경기침체가 불 보듯 뻔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최근의 자동차 부품 관세 예외 조치는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결과다.

공화당 내부에서도 분열이 깊다. 관세 수입을 기반으로 한 트럼프의 소득세 철폐 구상이 현실성 없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관세는 경기에 따라 출렁이는 변동성 높은 세원이기 때문에, 이를 기반으로 안정적인 재정을 꾸린다는 발상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특히 공화당 내부의 재정 보수파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미 연방정부의 부채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한 상황에서 추가 감세와 지출 확대가 더해질 경우, 정부 재정이 파탄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실제로 공공복지, 교육, 보건 등 핵심 분야에서의 지출 삭감이 논의되면서, 사회적 불만과 불안도 커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공화당 내의 정치적 결속력마저 약화시키는 추세다.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이제 단순한 정책 논쟁을 넘어 법적 투쟁의 대상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미국 헌법은 의회에 세금과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는 '국제비상경제권법'을 근거로 무역적자를 '국가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관세를 직접 부과해 왔다. 이 방식이 권한 남용이라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현재 12개 넘는 주정부와 다수 기업, 시민단체가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대통령 권한 남용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판례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트럼프의 관세 정책은 결국 경제뿐 아니라 헌법 질서와 제도적 신뢰에도 큰 균열을 내고 있다. 상대방이 불안정할 때, 더 신중하고 여유 있게 협상하는 것이 정석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권한대행 정부는 정반대로 움직이고 있다.

외교는 정권이 아닌 국가의 시간으로 해야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가 2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재외공관장 신임장 수여식에 입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
급한 협상은 국익을 해칠 수밖에 없다. 지금의 한미 무역 협상이 조기 대선 일정에 맞춰 성급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베선트 장관의 발언은 이 의구심이 결코 기우가 아님을 시사한다.

한덕수 대행은 이제라도 국민에게 분명히 답해야 한다. 이번 한미 무역 협상이 본인의 조기 대선용인지 아닌지를 말이다. 또한 언론과 국민들도 매의 눈으로 지켜보며 감시할 필요가 있다. 5월 중순까지로 예정된 한미 협상이 진정으로 국익을 위하는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아니면 한미동맹 강화라는 허울 좋은 명분 아래 내란 세력의 대선용 목적으로 이용되는지 말이다.

외교는 정권이 아니라 국가의 시간으로 해야 한다. 지금 한덕수 대행 체제는 이 기본을 무시하고 있다. 졸속 협상으로 이어질 경우, 사후라도 반드시 이에 상응하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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