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 새우, 황소, 수탉을 그린 이응노 화백의 마음

이상기 2025. 4. 30.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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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고암 이응노생가기념관 소장품 기획전 '해학諧謔 : 수구초심首丘初心', 6월 30일까지

[이상기 기자]

해학성을 보여주는 이응노의 동물 그림
 팥배나무 꽃이 피어있는 이응노생가기념관
ⓒ 이상기
4월 29일부터 홍성에 있는 이응노생가기념관에서 고암(顧庵) 이응노(李應魯)의 '해학(諧謔) : 수구초심(首丘初心)' 전시가 열리고 있다(6월 30일까지). 고암은 이응노의 호다. 1933년 한학자 규원 정병조(葵園 鄭丙朝)에게 받은 호다. 이응노는 1904년 충남 홍성에서 태어나 1989년 프랑스 파리에서 죽었다. 해학은 유머나 익살을 말한다. 유머는 우스꽝스러움이나 새로움의 추구를 생각나게 한다. 수구초심은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머리가 고향 언덕을 향하는 어릴 적 마음에서 나왔다.
그래선지 '해학 수구초심' 전은 고암이 어릴 때부터 고향에서 보아온 동물 그림을 모아놓았다. 이응노의 동물 그림에서 우리는 그만의 개성과 해학을 발견할 수 있다. 동물 그림은 동양의 문인화 또는 화조화에서 즐겨 표현되는 대상이다. 그것은 동물이 사물의 역동성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이응노는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을 오브제로 선택했다. 어류, 사슴과 소, 새가 그것이다. 물가, 집,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물들이다.
 메기 그림
ⓒ 이상기
이응노미술관 3․4전시실에서 이들 동물을 만날 수 있다. 가장 먼저 어류가 눈에 들어온다. 어류 중에서도 메기를 표현했다. 어릴 적 놀던 홍성 중리 앞 개울에 메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메기 표현이 정교하다기보다는 거칠고 투박하다. 몸통과 지느러미의 윤곽을 농담으로 구별했다. 메기의 특징인 수염은 가늘고 길지 않고 굵고 짧은 편이다. 그 때문인지 메기의 움직임이 느릿하고 익살스럽게 느껴진다. 이게 고암 이응노의 개성이고 해학이다.
새우 그림은 동양화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새우는 백년해로와 장수를 기원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렇지만 이응노는 그런 의미보다는 고향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새우 또는 징거미를 그린 것 같다. 갈색의 몸통에 검은색 눈을 그려 넣고 더듬이를 통해 새우의 움직임을 표현했다. 1960년 작품이니 프랑스 파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그린 작품으로 이해할 수 있다.
 수묵으로 표현한 사슴
ⓒ 이상기
사슴은 부귀와 복록을 상징한다. 그것은 사슴의 녹(鹿)과 복록의 녹(祿)이 같게 발음되기 때문이다. 1956년 작품은 몸뚱이의 얼룩과 눈 그리고 뿔이 상당히 개성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이 사슴이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가면서 점점 단순화된다. 이에 비해 1969년 마포에서 그린 사슴은 농담으로 몸뚱이를 표현하고 뿔도 굵게 표현했다. 얼굴을 단순하면서도 특이하게 그리고 그 안에 점 두 개를 찍어 눈을 표현했다. 전체적으로 놀란 모습이다.
소는 모두 황소를 그렸다. 세 작품인데 두 작품은 역동적인 모습을 한 작품은 정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역동성은 치켜올린 어깨와 위를 향한 머리에서 발견할 수 있다. 구부린 네 다리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순한 눈을 가지고 천천히 걸어가는 소에서는 우보천리(牛步千里)를 느낄 수 있다. 기축원단(己丑元旦)이라는 제호를 통해 1949년 소의 해 정초에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응노의 해학과 개성을 보여주는 새
ⓒ 이상기
화조화의 단골 소재인 새를 이응노 역시 즐겨 그렸다. 거위 닭 기러기 꿩 메추라기가 보인다. 어떤 이유인지 그 사이에 용 그림도 한 점 보인다. 하늘을 난다는 의미에서 포함시킨 것 같다. 거위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상대를 응시하고 있다. 수탉은 싸우려는 자세로 깃털을 부풀려 돌진하기 직전이다. 기러기는 한 쌍인데, 손녀인 경인(敬仁)의 결혼을 축하해 그려준 그림이다. 기러기 한 쌍이 바다에서 솟는 해를 맞으며 새 출발을 하는 모습이다. 다른 작품에 비해 채색이 화려하다.
다른 새들은 꽃 또는 갈대와 함께 그려져 있다. 그래서 화조도 또는 노안도(蘆雁圖)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이러한 그림은 동양의 전통 문인화에서 즐겨 그려진다. 꽃이 핀 나뭇가지에 앉은 한 마리 새, 매화꽃 주변에서 사랑을 주고받는 한 쌍의 새에서 우리는 외로움과 품격 그리고 기쁨을 느낄 수 있다. 노안도에서는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는 계절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다.
 이응노의 황소 그림: 오른쪽 위가 장손 종진에게 준 그림이다.
ⓒ 이상기
이번 전시의 타이틀로 선정된 황소 그림은 1969년 4월에 도화산방에서 그렸다는 발제가 있다. 그리고 장손 종진에게 준다고 기록해 놓았다. 손녀의 결혼 축하 그림에는 손녀 사위가 되는 정상구(鄭相九) 군의 이름까지 적어놓았다. 이응노의 손주 사랑과 세심한 마음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그런 이응노가 고국을 떠나 일본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프랑스와 독일에서 그림을 그리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다.
상설전시장에서 만난 이응노의 삶과 예술
 1972년 이응노의 모습
ⓒ 이상기
이응노는 해강 김규진(海崗 金奎鎭) 문하에서 산수화, 인물화, 화조화, 사군자 등 전통 문인화와 서예를 익혔다. 대나무 그림을 잘 그려 해강으로부터 죽사(竹史)라는 호를 받았다. 1935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서양화를 공부했다.

해방 후 귀국해 일본 화풍을 극복하고 우리 화맥을 계승하여 전통을 재창조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1948년부터 화가로 교수로 미술이론을 정립하려고 했다. 그 결과 1956년 <동양화의 감상과 기법>(문화교육출판사)을 출간할 수 있었다. 1958년 서양화의 본산인 프랑스 파리로 가게 되면서 그의 미술인생의 새로운 시기가 시작되었다.

이능노기념관 상설전시실에는 그의 화업을 보여주는 수십 점 그림이 전시되어 있다. 동양의 전통 사군자부터 서양의 현대 추상까지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 고암 이응노의 집에서 발간한 자료집에 보면, 이응노의 화풍을 프랑스로 떠나기 이전과 이후로 나눠 설명하고 있다. 1958년 이전을 문인화, 풍경화 인물화의 시기로 구별한다. 1958년 이후를 <구성> 연작(1960년대), 옥중작(1967~1969), 문자 추상(1960년 말~1970년대), <군상>(1980년대) 시기로 구별한다.
 문자 추상
ⓒ 이상기
이응노는 구상에서 시작해 추상으로 넘어가는 경향을 보여준다. 그것은 처음에 문인화 중심의 동양화를 배우고 나중에 서양의 추상화를 접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의 예술적 재능과 개성이 이 둘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응용해 이응노만의 작품을 만들어냈다. 그중 우리에게 더 많이 알려진 것이 문자 추상과 군상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작품들보다 그의 개성이 잘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문자 추상은 해강에게서 배운 서예가 그 바탕이다. 그러므로 문인화에서는 한글과 한자의 자모와 획이 추상으로 변모해 간다. 군상은 말 그대로 사람의 움직임을 한 화면에 그려 넣었다. 수백 명이 보여주는 개성적인 모습이 무질서한 듯 질서를 보여준다. 이곳에 있는 작품은 1980년대 그린 것들이다. 군상 시리즈는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소식을 접하고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민중들이 소리 지르는 절규를 표현했다고 볼 수 있다.
 군상 1982
ⓒ 이상기
그 절규가 받아들여지지 않아서인지 이응노는 1983년 프랑스로 귀화한다. 1988년에는 동백림사건의 혐의가 풀리고, 국내에서도 그의 전시가 열릴 수 있게 된다. 1989년 1월 1일 호암미술관에서 고암 이응노 회고전이 열린다. 그러나 귀국을 앞둔 1월 10일 심장마비로 파리에서 세상을 떠난다. 그리고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에 안장된다. 그는 결국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했지만, 대전과 홍성에 이응노미술관이 만들어져 그를 기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고암 이응노의 <해학 수구초심>전은 4월 29일부터 6월 30일까지 홍성군 홍북읍에 있는 고암 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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