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여성영웅을 다룬 소설이라니
[김용찬 기자]
대부분의 작품에서 작자가 분명히 밝혀진 현대소설과 달리, 고전소설의 상당수는 작자를 알 수 없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여기에서 소개하는 <이형경전>(2025년 1월 발간)도 작자 미상의 고전소설 작품으로,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작품을 현대어로 번역하여 소개하면서, 번역자는 '<이형경전>이 우리 문학사에서 의의와 가치가 남다른 작품'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여성영웅소설'의 범주로 구분할 수 있지만, 여타의 작품들과 달리 '여주인공 이형경은 젠더를 거부하고 사회적 자아를 실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그 근거의 하나로 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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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형경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35, 이상구(옮긴이) |
| ⓒ 문학동네 |
여성 주인공인 '이형경은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어려서부터 남자옷을 입고 글공부'를 하는 것은 물론, '부모가 돌아가신 뒤에는 스스럼 없이 재상가의 젊은 자제들과 어울려 시'를 짓는 등 남자처럼 행세하는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무엇보다 '세속의 여자들처럼 지아비를 두려워하고 시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할 수 없다'는 의식을 지니고, '당시 평범한 여성의 삶을 거부하고 사회적 자아 실현을 확실하게 추구한 인물'이라 할 것이다.
남성 중심의 문화가 지배했던 조선시대 '여성영웅소설'의 출현은 남성과 다름 없이 사회 활동을 펼치고자 했던 당대 여성들의 상상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파악된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여성 주인공은 처음에는 전쟁에서 공을 세우는 등 영웅적 활약상을 보여주지만, 후반부에서 자신에게 걸맞은 남성을 만나 결혼을 하여 '여성으로서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결말로 이어지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 역시 이러한 설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당대의 상황을 고려한 결말로 이해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당대의 지배적인 관념에 맞서려고 했던 여성영웅소설의 작자와 독자들의 역할과 의미를 결코 낮춰 볼 수는 없다고 하겠다.
<이형경전>에서는 여타의 작품들과 다른 특별한 캐릭터로서 이형경이란 인물을 설정하기 위한 장치가 작품의 서두에 마련되어 있다. 우선 이형경의 부모가 고향을 떠나 서울에 정착한 '사고무친한 처지'로 그려져 있으며, 어려서부터 남장을 하여 남자처럼 살도록 허락한 후 '형경이 열 살이 되었을 때 부모가 모두 돌아가'신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이후 남자인 벗들과 어울려 지내면서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하고, 외적의 침입을 막는 전투에 활약하여 높은 지위에 오르는 등의 활약을 펼친다. 그럼에도 유모를 제외한 어느 누구도 이형경이 여자인 것을 알지 못하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심지어 남동생조차 형경을 '누나가 아닌 형'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상황은 황제에게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을 고백할 때까지 이어지고 있다.
만약 이형경의 가문이 번성했거나 혹은 형경이 장성할 때까지 부모가 살아있었다면, 이형경이 여전히 남자로써 활동하는 것을 용납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부모나 가문의 어른들이 존재했었다면, 어렷을 때는 그러하더라도 장성한 상황에서는 남성의 옷차림에서 벗어나 당대의 여성들처럼 결혼하기를 바랐을 것이다. 더욱이 자식으로서 부모의 뜻을 거스르지 않는 것이 효(孝)라고 인식되던 현실에서, 이형경은 부모의 말을 거스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짐작된다.
그렇기에 작품의 서두에 설정된 이러한 상황은 여성인 주인공이 남성처럼 살 수 있도록 문학적 장치라고 이해된다. 또한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면모가 도드라진 이형경과 달리, 작품에 등장하는 다른 여성들은 남성 중심의 문화에 길들여진 모습으로 형상화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즉 이러한 문학적 장치로 인해 여타의 여성 인물들과 달리 이형경만이 주체적인 여성의 형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하겠다.
작품의 전반부에서 이형경이 남장을 하여 사회적 성취를 이루지만, 후반부에서는 결국 여성임을 드러낼 수밖에 없게 된다. 여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후에도, 이형경이 세운 공로와 사회적 성취의 결과를 황제로부터 온전하게 인정받는 상황이 전개된다. 아울러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던 남성 주인공 장연의 청혼을 여러 차례 거절하지만, 두 사람을 부부로 이어주려는 황제의 의도에 따라 마지못해 장연과 결혼하는 모양을 취하게 된다.
두 사람의 결혼 이후 작품의 내용은 시댁과 친정을 오가며 가정 내에서 일어나는 사건이 전개된다. 부모가 없는 친정에서는 누나이지만 가장으로서의 권위를 행사하는 모습을 보이고, 시가에서도 주눅들지 않고 당당한 모습으로 행동하는 주체적인 인물 형상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한 이형경의 모습을 못마땅하게 여긴 시어머니와 남편의 첩인 위영의 모함으로 시가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기도 한다. 더욱이 장연의 첩 위연은 친정에 있는 이형경을 죽이려는 계교를 꾸미고, 무술로 자객을 물리치는 등 고부와 처첩 사이의 갈등이 벌어지기도 한다. 끝내 첩 위영의 계교가 밝혀지고, 남편 장연과 시아버지의 거듭된 부탁으로 이형경은 시가로 돌아오게 된다.
그 과정에서 '시가의 절대적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형경의 주체적인 형상이 그려지고 있으며, 남편과의 관계에서도 '부부관계를 주도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한 면모라고 이해된다. 이러한 작품의 양상은 시가의 절대적 권위에 억물렸던 당대 여성들의 상황을 작품에서나마 상상적으로 극복하려는 시도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형경전>은 남성 중심의 지배적인 질서에 맞서려고 했던 여성 주인공의 주체적인 면모가 충분히 드러내고 있는 작품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흥미로운 작품의 내용을 현대역과 더불어 원문으로도 확인할 수 있기에, 일반 독자는 물론 전공자들도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개인의 독서 기록 공간인 포털사이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 (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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