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왕적 대통령 게임'은 이번이 마지막 회여야

강수택 2025. 4. 29. 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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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자의 개헌론②] 지금 시대정신은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 '4년 중임제'로 시대 거슬러선 안돼

[강수택 기자]

이승만에 의해 도입되었고 군사정권 시절 강화된 막강한 권력의 대통령제가 군사정권 종식 이후에도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 대통령제의 가장 심각한 정치적 병폐는 대통령 혹은 잠재적인 대통령 후보라는 인물 중심의 정치가 가장 중요한 바탕이 됨으로써 진정한 정당정치의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점이다. 그리고 대통령제는 양당제와 친화적이어서 다당제의 발전을 어렵게 하여 다양한 정당의 발전에도 장애가 된다.

결국 정당정치가 발전하지 못하면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의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이 명확하다. 즉, 의회가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입법화하는 생산적인 장이 되기보다는 거대 양당 정치인들 간의 비방과 흠집 내기가 끝없이 벌어지는 보기 사나운 싸움터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날 대부분의 시민이 우리나라 국회와 국회의원에 대해 갖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다.

물론 정책개발과 입법 활동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는 훌륭한 국회의원들도 있다. 하지만 국회와 양당 지도자들은 어느덧 제왕적 대통령 게임의 주요 참여자가 되어 자신들이 속한 정치세력에서 대통령을 배출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장악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한국사회에서 가장 뒤처진 영역이 정치라고 하며 또한 국회와 정치인이 시민으로부터 가장 신뢰받지 못하는 기관과 집단이 되어버렸다.
 제20대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 2022년 5월 1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 국회사진취재단
대통령제의 폐해는 단지 정치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한국사회는 사회적 갈등과 대립이 아주 심한 사회다. 여러 연구와 국제 통계가 이것을 말해준다. 그런데 특히 최근에 와서 시민들이 더욱 뚜렷이 경험하듯이 한국사회의 많은 갈등과 대립 가운데 가장 심각한 것이 정치적·이념적 갈등이다. 여기서 이념적 갈등은 사실은 서구의 경우와 비교할 때 그렇게 크지도 않은 정책의 차이를 정치권이 과장한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정치적·이념적 갈등이라고 해도 대부분은 정치적 갈등에 해당한다. 어쨌든 한국사회의 극심한 정치적 갈등과 대립은 양대 정치세력 혹은 이를 대표하는 주요 정치인에 대한 지지를 둘러싼 경우가 많다. 이 갈등과 대립을 정당화하기 위해 이념 혹은 이론이라는 그럴듯한 포장이 이뤄지는 것이다.

양당제와 친화적인 대통령제를 극복하지 않는 한 대통령 게임 참가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생존을 둘러싼 이전투구식 경쟁에 온 국민이 빠져들어 극단적인 갈등과 대립으로부터 벗어나기 어렵다. 대통령 게임의 승자인 대통령 당선자가 이러한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고 통합을 이루겠다고 하지만 대립하는 정당 출신 당선자가 소속 정당의 이해관계에 반하면서까지 상대 정당 혹은 정치세력의 지지자를 통합하는 데에는 뚜렷한 한계가 있다. 대통령의 통합 구호 혹은 의지와 대통령제의 양분화된 정치 현실이 상충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충돌은 대통령 임기 후반 혹은 차기 대선이 가까워질수록 더욱 뚜렷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자는 제6공화국의 대통령제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다거나 5년 단임제가 문제일 뿐이므로 연임 가능한 4년 중임제로 바꾸면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런데 대통령제는 독재화할 위험성이 크다 보니 중임을 허용하되 연임은 금지하는 국가도 많다. 이처럼 대통령 연임제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그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대통령제 자체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큰 폐해를 가져오기 쉬운 제도라는 것이 문제다.

연방제와 양원제의 미국과 달리 지방분권 수준이 매우 취약할 뿐 아니라 국회에 대한 견제도 제도적으로 취약한 한국에서는 더욱 그렇다. 제6공화국에서 실패한 대통령은 모두 제도보다는 인물 때문이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렇다. 정당 중심의 의원내각제와 비교할 때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이 성공하거나 실패하거나 모두 대통령 개인의 역량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 문제는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인물이 국가 지도자로 언제든지 세워질 수 있는 것이 대통령제이며 이런 대통령의 실패는 국가적으로 엄청난 위험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또 어떤 이는 주장한다. 직선 대통령제야말로 1987년 민주항쟁의 정신이었다고. 이것은 일부만 맞는 주장이다. 1987년 당시에는 군사정권의 간선 대통령제를 직선 대통령제로 바꾸는 것이 곧 국가권력을 주권자인 국민에게 돌려주는 일이었다. 즉, 대통령 간선제를 직선제로 바꾸는 것이 민주항쟁의 정신이었던 것이지 대통령제를 지키는 것이 민주항쟁의 정신이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대통령제가 곧 민주주의 정신이라면 4월 혁명의 결과로 세워진 제2공화국은 비민주적인 정부였는가?
▲ 우원식 국회의장 개헌 관련 기자회견 우원식 국회의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사랑재에서 개헌 관련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제6공화국 헌법이 만들어진 지도 벌써 40년 가까이 되어간다. 그동안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불리는 대한민국 대통령제의 폐해는 드러날 만큼 드러났다. 현재의 대통령제의 문제점이 이렇게도 분명히 그리고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데도 여전히 대통령제를 고수하려는 핵심 집단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력에 관심을 갖고 제왕적 대통령 게임에 참여하려는 정치인과 정치세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들 때문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을 갈망하는 시민들의 염원은 번번이 좌절되어 왔다. 이번 위헌·위법적인 비상계엄과 대통령 탄핵 과정을 보면서 시민들의 이러한 갈망은 더욱 간절해졌지만 탄핵 심판을 앞두고는 이를 제대로 표출하기 어려웠다. 마침내 탄핵이 인용되어 곧바로 대선 국면으로 이어짐으로써 지금은 제왕적 대통령 게임에 온 정치권이 빠져들고 있다.

온 정치 인생을 대통령 지위나 권력만 바라보고 달려온 개인이나 집단에게는 비록 계엄과 탄핵 사태로 나라는 혼란스럽지만 2년이나 앞당겨진 선거에 언감생심으로 앞다투어 달려들고 있다.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없어도 대통령 후보로 주목받는 것 자체가 정치인으로서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기 때문에 양대 정당이 아닌 군소 정당 정치인들도 대통령 후보로 나서려고 안간힘을 쓴다. 심지어 선거법 위반으로 피선거권이 박탈된 사람조차도 대선 출마 선언을 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코미디 같은 일도 벌어진다. 이 모두가 막장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권력구조 개편을 염원하는 일반 시민의 열망을 잘 아는 국회의장은 이번 대선 때에 개헌투표도 동시에 실시하자는 제안을 했다가 취소한 바 있다. 개헌은 국회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로 결정하기에 국회의 합의가 중요하지만 시민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는 과정도 필요한 만큼 이 제안은 매우 성급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 2026년 지방선거 때에 개헌투표를 하자는 의견이 나오는데 2026년 지방선거든 2028년 총선이든 아니면 2030년 대선이든 간에 어쨌든 충분한 준비와 폭넓은 공감대를 이루어 제21대 대통령 임기 중에는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개헌이 꼭 이뤄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번 대선에 참여하는 주요 후보들이 모두 임기 중에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개헌을 하겠다고 분명하게 공약해야만 한다. 대한민국이 앞으로 진정한 선진국으로 발돋움하려면 현행 대통령제를 필히 극복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언젠가는 현행 대통령 중심의 권력구조가 분권형 혹은 의원내각제로 전환될 것이다.

문제는 이것을 얼마나 빨리 앞당기는가 하는 것이다. 전환이 늦어질수록 국가적으로 큰 비용을 치를 수밖에 없으며 그만큼 일반 시민의 희생과 고통이 커진다. 이렇게 보면 제21대 대통령 당선자가 누가 되든 임기 중에 이 전환의 과제를 소홀히 한다면 그만큼 역사에 큰 죄를 짓는 셈이 될 것이다.

이 시대가 대한민국 정치에 요구하는 가장 큰 과제, 즉 가장 중요한 시대정신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극복이다. 이것이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가장 우선적인 정치적 민주주의의 과제이기도 하다. 어떤 후보도 대통령 4년 중임제 같은 공약으로 결코 시대 정신을 거슬러서는 안 된다. 막장 드라마 '제왕적 대통령 게임'은 이번이 마지막 회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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