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 육안과 심안, 이어폰과 보청기

2025. 4. 29. 00:14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곽정식 수필가

문득 동창들의 안부가 궁금해질 때면 ‘진성이’라는 친구에게 연락을 한다. 가끔 놀러 오라는 청도 받는다.

이름에서 진실함과 성실성이 느껴지는 진성이는 커피 향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홍제동에서 커피 공방을 운영한다. 그는 공방으로 동창들을 불러 계절 음식을 대접한 후 커피를 내놓는다. 커피 마시는 시간은 세계 곳곳의 커피를 소개하는 커피 클래스가 되는데 며칠 전에는 깊은 풍미가 있다는 모카커피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

“모카커피는 아라비아 반도 예멘의 ‘모카(Mocha)’라는 지명이 붙은 커피인데 (…) 나도 처음에는 모카커피의 생산지를 ‘모카’로 알았지. 알고 보니 모카는 생산지가 아니라 항구 이름이었어. 모카커피는 예멘과 북아프리카 산악지대에서 수확하는데 커피 원두는 마대에 담긴 후 모카항에서 수출을 기다리지. 이때 홍해에서 불어오는 습한 바람이 마대 속으로 스며들어 독특한 풍미의 커피를 만든다고 하네. 이 커피를 모카커피라고 부르지. 우리는 그동안 모카커피의 생산지와 항구를 뒤섞여 알고 있었던 거야.”

「 보청기를 이어폰으로 지레짐작
타인 사정 헤아리고 헤아려야
구성원 읽는 심안 열려야 리더

김지윤 기자

그로부터 며칠 후 진성이가 단톡방에 자신의 불찰을 고백하는 글을 올렸다.

“계절 생선을 사려고 시장에 갔는데 들른 가게 사장이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듣고 있었네. 그러니 무얼 물어도 제대로 대답하지 않는 거야. 답답한 나머지 ‘사장님 이어폰 좀 빼고 말씀하시면 안 돼요?’라고 언성을 높였지. 계산을 마친 뒤 가게를 나와서 한참을 걷는데 불현듯 깨달았어. ‘이어폰이 아니라 보청기인지도 몰라. 아~ 보청기구나!’하고 깨닫는 순간 그분께 얼마나 죄송하고 부끄럽던지….”

그는 이어서 왜 보청기를 이어폰으로 착각했는지 설명했다. “보청기와 이어폰은 한눈에 봐도 모양과 크기가 다르지. 그런데 사장님이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는다는 생각을 하니 나머지는 아예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던 거야.”

친구 A가 댓글을 달았다.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것은 쉽지 않아. 어쩌면 훈련이 필요할지도 몰라. 오늘 솔직한 고백에 감사!”

친구 B는 “우리는 가끔 선입견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보지 못할 때가 있지. 솔직한 고백은 용기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어”라고 격려했다.

친구 C는 “우리에겐 두 눈이 있는데 하나는 육안(肉眼), 다른 하나는 심안(心眼)이지. 오늘은 자네의 심안이 열린 날이네.”

보청기 얘기는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렸다. 학교에만 오면 조는 아이가 있었는데 별명이 졸보였다. 알고 보니 그 친구는 집에 가면 물을 긷고, 나무를 하고, 불을 때고, 밥을 하고, 병든 부모님 수발까지 해야 했다. 밥이 부족할 때면 동네 양조장에서 얻은 술지게미 한 덩이를 아침밥 대신 먹고 학교에 왔다.

누군가의 행동이 특이하거나 기대에 어긋나면 그 사람에 대해 잘못 생각하는 건 아닌지, 혹은 그에게 남모를 사정이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하고 또 생각하는 것이 남의 사정을 헤아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출발점이다.

인간과 인공지능과의 대국에서 유일무이하게 1승을 따낸 이세돌은 인간의 약점은 고정관념에 있다고 말했다. 지레짐작으로 오해하는 것이 어디 모카커피의 산지뿐이랴. 제대로 알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모른다고 생각하는 게 낫다. 공자도 말했다. 알지 못하면 모른다고 하는 것이 참으로 아는 것이라고.

이참에 알 지(知)자의 생김새를 한번 보자. 화살 시(矢)자와 입 구(口)자로 이루어져 있다. 그래서 知자로부터는 ‘입으로 화살을 퍼붓는 것’ 같은 예리한 느낌을 받는다. 반면, 지혜의 지(智)에는 밝힘과 따뜻함을 나타내는 일(日)자가 있어 따뜻한 헤아림이 느껴진다. 암호를 풀이하는 것 같지만 어디 틀린 말인가?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것, 귀에 들리는 것 외에도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 돈이 없어 선물을 사지 못하는 친구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은 ‘知’라기 보다는 ‘智’에 가깝다.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말했던 대로 바로 심안이 열려야 사물을 제대로 헤아릴 줄 아는 혜안(慧眼)도 따라올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고 남을 깊이 생각해야 심안과 혜안이 열리고 연륜(年輪)도 생긴다. 연륜은 글자 그대로 나이테를 의미하는데 자연스레 나무와 나이 그리고 사람이란 말들을 떠오르게 한다. 그중 사람(man)과 나이(age)가 합쳐지면 우연히도 ‘경영하다(manage)’는 말이 된다.

경영이 평범한 사람을 비범하게 일하게 만드는 능력이라고 한다면 경영자는 현상을 제대로 이해하고 사람의 마음을 읽는 심안이 열려 있어야 한다. 구성원들은 그런 리더를 가리켜 연륜이 있는 분이라고 말하고 그가 가리키는 곳을 향해 한마음이 되어 달려간다. 이는 기업을 경영하든 나라를 경영하든 마찬가지다.

진정한 리더는 기업 구성원들에게는 뿌듯한 자부심을, 국민에게는 벅차오르는 애국심을 느끼게 만든다.

곽정식 수필가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