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화는 볼수록 불가사의…기발한 발상, 소름 돋는다”

이은주 2025. 4. 29.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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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었을 적 ‘인사동 신선’이라 불리며 고미술 시장을 섭렵한 김세종 평창아트 대표(아래 사진)는 뒤늦게 민화에 빠져 수집해 왔다. 그는 “민화를 순수 미술로 바라볼 때 훨씬 흥미롭고 환상적인 세계가 보인다”고 말했다. 사진은 책거리의 일부 모습. [사진 평창아트]

조선 민화 수집과 전시, 그리고 민화 관련 책 출간···. 어느 대학 교수의 이력이 아니다. 국내 대표 민화 컬렉터 김세종(69) 평창아트 대표가 해온 일이다. 30대 초반에 우연히 민화를 처음 보고 잠을 못 이뤘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삶이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2018년 서울 예술의전당 서예박물관과 세종문화회관,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대규모 컬렉션 전시를 연 그가 최근 4권으로 구성된 대형 컬렉션 화집 『판타지아 조선민화』(아트북스·사진)를 펴냈다. 『컬렉션의 맛』, 『나는 조선민화 천재화가를 찾았다』에 이은 세 번째 출간이다.

『판타지아 조선민화』는 자신의 컬렉션을 집대성한 도록이다. 그는 1000여점에 달하는 자신의 민화 소장품 중 일부를 주제에 따라 화조도, 산수도, 책거리·문자도, 호랑이·무신도 등 4권으로 나누고, 다양한 각도로 들여다 볼 수 있게 편집했다. 오는 6월엔 새 책 『나는 조선민화에서 순수미술을 보았다』도 나온다. 컬렉터의 활동으론 국내에서 선례를 찾기 어려운 ‘광폭 행보’다.

김세종 평창아트 대표

“지금도 민화를 들여다보면 기발한 발상과 표현에 감탄하며 온몸에 소름이 돋는다”는 그는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할 한류의 정수가 이 안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25일 그를 서울 평창동에서 만났다.

Q : 컬렉션 도록을 4권으로 냈다.
A : “백 마디 말이 무슨 소용 있겠나. ‘자, 봐라!’ 외치는 마음으로 그동안 내가 혼자 보고 감탄한 작품을 족집게로 집어내 보여주고 싶었다. 영문 글도 함께 실었는데, 이 도록을 적어도 세계 100곳의 유수 미술관에 보내는 게 내 바람이고 목표다.”

Q : 민화의 어떤 점을 드러내고 싶었나.
A : “재기발랄한 창의성이다. 익명의 화가들이 그렸다고 전문가들은 순수 미술로 인정하기보다 서민들의 민예품 정도로 여겼지만, 민화는 보면 볼수록 불가사의한 미의 세계다. 화가 낙인은 없었지만 천재적인 실력을 갖춘 이들이 있었다.”

Q : 어떤 기준으로 작품을 모았나.
A : “독창성과 회화성, 그리고 예술적 완성도를 기준으로 봤다. 단순히 도상학적인 분류를 따르기보다 순수 회화 관점에서 완성도가 뛰어난 것을 모았다.”

판타지아 조선민화. [사진 아트북스]

민화(民畫)는 조선시대 서민들이 생활에서 즐겨 그린 실용적인 그림을 말한다. 자유로운 형식과 대중적인 주제를 다뤄 한국인의 정서와 생활 문화를 반영하지만, 그 예술성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김 대표는 “지금이라도 고정관념을 깨야 한다. 주목받지 못한 민화 가운데 피카소 그림이 전혀 부럽지않게 자유분방하고 흥미진진한 작품들이 꽤 있다”고 강조했다.

충남 보령이 고향인 김 대표는 10대에 홀로 상경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충무로에서 광고기획 일을 했다. 1980년대 아파트 분양이 활발할 때 사업이 잘돼 일찍 경제적 안정을 이뤘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아 20대 후반부터 틈만 나면 박물관과 미술관에 다녔고 고미술 회화와 도자기 등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2000년 6월 평창아트 갤러리를 열었다.

본격적으로 민화를 수집하게 된 건 갤러리를 차린 이듬해 한 수집가의 컬렉션 수 백점을 넘겨받으면서다. “처음엔 유치하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볼수록 재미있는 거예요. 현대적인 아름다움도 보이고요. 그때부터 민화를 새로운 눈으로 보기 시작했죠.”

Q : 민화의 매력은.
A : “상상력과 표현의 자유분방함이다. 대나무, 억수로 내리는 비, 집과 사람도 그 안에선 상상 초월한 표현들이 넘친다. 화가들이 이름을 남기지 않은 게 오히려 장점이 됐다고 본다.”
김씨는 “앞서 화가 이우환, 운보 김기창, 권옥연, 건축가 유동룡(이타미 준)등 민화의 멋과 아름다움에 주목한 예술가들이 여럿 있었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이우환 화백은 민화를 ‘추상적인 환상(abstract fantasy)’이라고 부르며 1975년 일본 강담사에서 『구조로서의 회화-이조의 민화에 대해서』를 펴내기도 했다. 2001년엔 평생 모은 민화 120여 점을 프랑스 기메동양박물관에 기증했다.

김 대표는 “사람들은 비싼 작품을 많이 갖고 있는 사람을 ‘컬렉터’라고 생각하지만 진정한 컬렉터는 남이 못 알아보는 것, 거기서 진정한 미적 가치를 찾아내 그것을 미래의 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멀지 않은 미래에 내 민화 컬렉션을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꼭 전시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은주 문화선임기자 ju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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