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사라지면 뭐가 달라지나요? 탄핵 후 청년들이 한 질문

이영광 2025. 4. 28.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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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광의 '온에어' 350 ] MBC < PD수첩 > 박해인 PD

[이영광 기자]

지난 22일 방송된 MBC에서는 '광장에 선 청년들 깃발 꽂고 전진' 편이 전파를 탔다. 12월 3일 군용차를 앞에서 막은 김동현 씨와 김다인 씨 목소리로 시작한 이날 방송은 2030세대가 광장에서 말한 것과 파면 이후 그들이 생각하는 대한민국을 담았다. 취재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지난 23일 서울 상암 MBC 사옥에서 해당 회차 연출한 박해인 PD와 만났다. 다음은 박 PD와 나눈 일문일답 정리한 것이다.

대통령 파면 후 세상
 < PD수첩 > 중 한 장면
ⓒ MBC
- 방송 끝낸 소회는요.
"저에게 이번 방송이 하나의 방송 끝낸다기보다 12월 3일 계엄 직후부터 광장 다니고 사람들 만난 경험을 넉 달 동안 해왔는데 그거에 대한 정리였던 것 같아요. 파면 선고 이후에도 아직 방송이 남아 후련하게 끝난 느낌이 안 들었는데 끝나니까 실감 나는 것 같습니다."

- 탄핵에 찬성했던 2030세대의 파면 후 이야기를 어떻게 다루게 됐나요.
" 탄핵 심판 선고 직후에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고민이었는데요. 저는 이번 탄핵 정국에서 주로 전광훈, 손현보 목사 주도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 현장 취재를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생각보다 탄핵을 촉구하는 집회를 깊이 안 적이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한 번쯤은 그쪽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다니다 보니 현장에서 탄핵 촉구에 대한 이야기보다 각자 삶에 대한 이야기가 오간다는 것을 알게 됐고, 대통령 파면 후에 어떤 세상을 꿈꾸는지에 대해 공유할 수 있는 이야기가 많다고 느꼈어요."

- 이 아이템을 결정하고 처음에 뭐부터 했어요?
"제가 처음에 이 기획을 하게 된 계기가 된 사람이 있는데요. 1월 15일 관저 앞에서 제가 취재 할 때에 만났던 한 대학생분이거든요. 근데 3월 집회에 나가서 그분을 우연히 다시 본 거예요. 그때 문득 이 사람은 정치와 연관된 사람도 아니고 어떻게 보면 시위를 엄청 많이 다녔던 사람도 아닌데 이렇게 계엄 이후에 계속해서 집회에 나오게 되는 이유가 도대체 뭘지 궁금했어요. 그래서 그분을 가장 먼저 인터뷰하고 그 사람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따라다녔던 것 같아요."

- PD님도 비슷한 나이라서 친구들을 통해 듣는 얘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서는 대다수가 부정적이었어요. 그런데 갈수록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과 민주당의 연이은 탄핵을 동일 선상에 두고 평가하는 분들도 많이 보였어요. 그리고 어떠한 입장이건 간에 윤석열 전 대통령 체포 이후에 직접 집회에 나간 분들은 제 주변에는 거의 없었어요. 오히려 제3자의 시점으로 그때그때 논평하기 바빴죠. 그래서 무엇이 이들을 광장으로 이끄는지 더욱 궁금했던 것 같아요."

- 주로 탄핵 찬성 집회 가신 거 같은데 집회 가보면 어땠어요?
"저는 사실 탄핵 찬성 집회라고 부르는 걸 별로 안 좋아해요. 이게 찬성과 반대의 양비론 속에서 많은 언론들이 두 개의 광장의 청년들을 비교하는 동안 실제 이야기들이 못 다뤄졌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무튼 탄핵 촉구하는 집회에 나간 청년들 얘기들을 들어보면 생각보다 후반부로 갈수록 탄핵 빨리 해야 한다는 이야기보다 자기 얘기하러 나온 사람들이 많았거든요. 특히 남태령에서 그게 폭발적이었어요. 저도 광장을 다 가보지 못했어요. 근데 그걸 다 기록한 '말빛'이는 분이 계세요. 그분이 관저 앞 시위 이후부터 이걸 흩어지게 냅두면 안 되겠고 이 민중의 말들을 기록해야겠다고 다짐하고 모든 집회에 나가면서 사람들의 말을 기록했어요. 그분에게서 기록하신 걸 받아봤는데 정말로 자신의 고민 그리고 더 나아가 사회에 대한 질문을 나누는 공론장이 아니었나 해요."

- 예전하고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아요.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 발언자로 나와 페미니즘이나 성소수자나 아니면 장애인 등 인권 얘기하는 게 있었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근데 한 번 물꼬가 트이니까 더 그런 말들이 많이 오갔던 것 같고요. 다른 광장과 남태령이 다른 게 남태령은 그야말로 갑자기 모이게 된 광장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보통 사람들의 엄청 큰 캠프파이어 같은 자리였던 것 같더라고요. 저는 인상 깊었던 말이 이곳에서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귀 기울여 들어주고 나의 문제에 정말 진심으로 공감해 줄 것 같았다는 거였어요."

- 프롤로그에서 비상계엄 때 군용차를 막은 김동현씨와 김다인씨 이야기를 먼저 보여줬는데 어떤 의도였을까요?
"동현씨는 '군용차를 막은 청년'이라고 탄핵 정국 초반에 화제가 됐었는데요. 대통령 탄핵 심판을 앞두고 다시 만나보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히 그 사람을 이미지로 소비하는 게 아니라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감정, 바라는 미래 등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 싶었어요. 그리고 동현씨가 처음에 막긴 했지만, 바로 곁의 사람들이 동참해 줬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을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다인 씨가 바로 함께 막아준 분이었어요. 그래서 두 분을 함께 만났죠. 두 분 모두 폭력 앞에서 당장 행동할만큼 용기 있으신 분들이니만큼 평소에도 한국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갖가지 폭력에 대해 분노하고 이야기해 주셨어요. 그래서 이분들이야 말로 비상계엄이라는 거대한 폭력의 사태를 경험한 청년들이 왜 파면이 끝이 아니라고 말하는지 엿볼 수 있는 분들이라고 느꼈어요."

- 이번 탄핵 집회에서 빠질 수 없는 게 해학과 풍자로 만든 깃발 같아요.
"깃발이라고 하면 보통 단체의 깃발을 상상하니까 단체 주도의 광장이라고 폄훼되기도 했었는데요. 사실 대부분의 깃발은 '1인 연합,' 그러니까 한 사람이 들고 나온 깃발이었어요. 자신이 좋아하는 것, 사회에 말하고 싶은 것을 자유롭게 써와서 광장에서 당차게 흔드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광장의 깃발들을 아카이빙 해둔 사이트도 있어요. 들어가서 보시면 얼마나 다채로운 메시지가 있는지 알 수 있을 거예요."

- 중국 이주노동자 2세인 최서연(가명)씨 이야기도 나와요. 계엄 후 중국에 대한 혐오가 더 심해져서 힘들 것 같은데.
"사실 그분이 남태령 집회에서 발언한 영상조차도 또 곡해돼서 탄핵에 반대한다는 분들이 유튜브에 올렸거든요. 거기 댓글 보면 '와 우리나라 망할 것 같다. 어떻게 중국인이라는데 이렇게 박수를 치냐. 저 사람 어떻게 추방 안 되나요?'라는 댓글들이 쭉 있어요.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거죠. 왜냐하면 그분들이 계속해 왔던 얘기가 탄핵 찬성 집회에는 중국인이 더 많다는 거죠. 그거에 대한 근거를 찾았다는 식으로 올렸거든요. 일단 사실과 다른 게 서연(가명) 씨와 부모님은 모두 한국 국적 소유자이고요. 다만 스스로를 어떻게 정체화해야 할까의 고민에서 나온 '저는 중국인입니다'의 복잡한 맥락을 필요에 의해 단편적으로 이용한 거죠. 한국에서 태어나 계속 살아온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단지 부모가 중국에서 살다가 넘어오신 분들인 거잖아요. 근데 그 사람이 겪는 혼란과 그 생애 전반에 계속 본인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계속 고민해 왔을 텐데 이토록 쉽게 사람들이 단순화하고 적으로 내몰 수 있다는 걸 이번에 느끼신 것 같더라고요. 그런 게 많이 안타까웠어요."

- 특성화고 졸업 후 직장 다니는 박동균씨 이야기가 나와요.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일단 집회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분이었어요. 근데 이분은 중간에 너무 바빠서 집회에 못 나왔어요. 저는 가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도 일상이 너무 바빠서 못 간 사람이 되게 많을 거로 생각했어요. 그래서 광장 밖의 이야기로서 동균씨를 취재했던 거였고요. 사실 이번 정국에서 중국인에 대한 혐오도 많았지만, 노조 혐오도 굉장히 심했거든요. 근데 제가 동균씨를 통해 본 노조는 자신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신의 옆에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연대 하게 되는 집단이었던 거거든요. 그런 얘기를 담기에도 동균씨를 만나보고 싶었고요. 만나보니 생각보다 더 열심히 사는 사람이었어요, 열심히 살면 내년엔 좀 다르고 내후년에 좀 더 나아져야 되는 게 상식적인 게 아닐까라는 질문이 많이 들었던 출연자였어요."

- 박동균씨가 저녁에 배달 일 하는 거 동행하셨잖아요. 어땠나요?
"중소기업 다니는 분인데 야근이나 외근이 없는 날엔 집에 오면 7시 정도가 돼요. 그러면 옷만 갈아입고 배달일을 하는 거죠. 저녁 시간대, 야식 시간대에 배달이 몰리니까 그 시간대를 놓치지 않으려고 본인 저녁도 미루고 배달 하러 가더라고요. 동균씨의 모습을 보면서 몇몇 분이 '어떻게 차가 있는지'를 묻더라고요. 일단 해당 차량도 중고 스틱 차량이고요, 무엇보다 외근이 잦아 영업을 위해서는 차량이 꼭 필요한 사람이거든요. 이제 더 이상 차를 가진다는 게 부의 상징도 아닌데도 '어려운 형편에 왜 차가 있는지' 묻는 사회라는 게 안타까웠어요."

윤석열 사라지면...
 < PD수첩 > 중 한 장면
ⓒ MBC
- 어떤 청년은 "윤석열이 사라지면 사회가 달라지나"라는 질문을 던졌잖아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윤석열이 사라진다는 표현을 썼지만, 그게 함의하는 건 거대한 폭력에 사람들이 맞서 막아낸 경험인 거고 그 마음은 두려움도 있었겠지만, 저는 그 폭력에 대해 우리가 그냥 참지 않겠고 잘못됐다고 얘기할 수 있는 마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게 이어지면 전 사회가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만 광장의 목소리가 정치에 반영될 수 있는가. 이건 별개의 이야기죠. 예컨대 광장에서 가장 여럿 언급된 의제 중 하나는 차별금지법 제정인데, 지금 대선 후보들 중 차별금지법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없잖아요. 이 괴리는 왜 생기는가, 괴리를 어떻게 메워갈까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것 같아요. 광장에 나와 있다 보면 내가 속한 집단이 커 보이는 착시효과도 분명 있을 수 있고요. 제도권 정치와 시민사회 함께 고민해 나가야죠."

- 취재할 때 어려운 점이 있었을까요?
"사실 주인공이 여러 명인 프로그램 회차였죠. 사실 개개인에 대해 1시간으로도 설명이 안 되는 아주 복잡하고 깊은 분들이거든요. 근데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짧게 곡해하지 않고 진심이 잘 전달되도록 담는 것이 어려웠던 것 같아요."

- 취재했는데 방송에 안 나온 곳 중 이야기만 한 게 있나요?
"한때 'TK의 딸들'이 화제가 됐었어요. TK라는 보수의 텃밭으로 불리는 지역에서 탄핵 촉구의 목소리를 낸 여성들이었어요. 저희도 이런 'TK의 딸들'을 만나 지역 청년으로서 느끼는 한계와 차별의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 부분이 빠진 것이 많이 아쉽습니다. 더불어 이른바 '남태령 대첩' 포함해 다수의 탄핵 촉구 집회의 20, 30대는 여성이었거든요. 왜 2030 여성이 집회 참석에 더 적극적이었는가, 그 이유에 대한 좀 더 심도있는 분석도 빠진 것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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