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초만에 점자로 출력된 안내문…‘재판받을 권리’ 지켜주는 이 곳은

한웅희 2025. 4. 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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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권역 최초 ‘사법접근센터’ 가보니


시각장애인 상담사인 유석종씨는 지난 25일 안내견 ‘해달이’와 함께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 1층 종합민원실 내 사법접근센터를 찾았다. 이곳엔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 프린터가 준비돼 있다. A4용지 1장짜리 법률 상담 문서를 점자로 번역해 출력하기까지 불과 10초밖에 걸리지 않았다. 유씨가 읽은 문서 내용은 이랬다. “이 안내서는 장애가 있는 사람이 소송 절차에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합니다.”

사법접근센터 상담실에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화상전화기도 마련돼 있다. 수화기 옆 모니터에 ‘다산콜 수어통역’ 아이콘을 누르면 다산콜센터 수어통역가와 즉시 연결돼 법률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27일 서울남부지법에 따르면 사법접근센터는 2022년 12월 서울에서 처음으로 남부지법에 설립됐다. 장애인, 이주민, 외국인, 고령자 등 사회적 약자들의 ‘재판받을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6개의 상담실로 이루어진 사법접근센터는 점자프린터와 화상 전화기가 갖춰져 있을 뿐 아니라 상주하는 변호사와 법무사가 무료 법률상담도 제공한다. 가족 갈등, 경제적 어려움에 대한 상담을 받을 수 있는 ‘유관기관 상담실’도 있다. 오윤찬 남부지법 사법지원관은 “법률상담을 받다가 가정폭력을 당한 경험을 털어놓으시는 분들이 옆 상담실로 가서 가정폭력부터 상담받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일반인도 이용할 수 있다. 하루에 진행되는 100~120건의 상담 중 사회적 약자 지원 비율은 2023년 47.9%, 2024년 42.1%였다. 이날 오전 11시50분쯤 오전 상담 업무를 마치고 나온 최철웅 상담관은 “청력이 떨어진 분들에게 큰 소리로 안내하다 보니 벌써 목이 쉬었다”며 웃음을 지었다.

남양주시청에서 공무원으로 일하는 시각장애인 양주혜(34)씨는 “보통의 공공기관엔 음성 지원 프로그램과 점자 프린터 둘 중 하나만 구비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남부지법 사법지원센터엔 필요한 수요에 맞춰서 사용할 수 있게 모두 갖춰져 있어 좋다”고 말했다.

윤경아 법원장을 포함한 남부지법 직원 30여명은 지난 25일 오전 남부지법에서 ‘장애인의 날’ 주간을 기념해 안내견과 함께 안대를 쓰고 걷는 체험 행사에 참여했다. 윤 법원장은 “발 내딛기도 어려운 길을 안내견과 함께 걸으니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인생에서 처음 겪은 이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가 법원을 찾으실 때 불편함이 없도록 치열하게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남부지법은 앞으로 전담 담당자를 지정하고 운영 현황을 상시 점검하는 등 사법접근센터 운영을 개선해나갈 계획이다. 남부지법은 “노후된 청각장애인용 화상전화기 2대를 교체하고 사법접근센터 홈페이지에 유관기관 상담예약 배너도 설치할 예정”이라며 “사회적 약자의 법률서비스 접근성을 더욱 높이겠다”고 밝혔다.

한웅희 기자 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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