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그룹 만년 상무를 전무로 승진시킨 결정적 질문, 이렇게 나왔다
[이정환 기자]
세미콜론(; 쌍반점) 옆에 따옴표. 책 표지 문장 부호들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했다. 세미콜론은 일반적으로 앞서 문장에 이어 인과관계 등에 대한 설명을 계속하려고 할 때 쓴다. 세미콜론 위에는 "차가운 AI보다 따뜻한 당신이 이긴다"는 서술, 그리고 따옴표 안에 책 제목 '공감 지능 시대'가 자리하고 있다.
결국, AI시대에서는 따옴표 안의 '어떤 말'을 하면 좋다고 읽혔다. LG그룹에서 최초로 여성 CSO(최고전략책임자)를 역임한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가 최근 내놓은 책, <공감 지능 시대>(이든하우스)에 대한 첫 인상이다.
'공감 지능'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용어에 대한 이해를 잠시 뒤로 하고 저자 소개를 봤더니, 어느 학교를 나왔고 등등의 소개는 없었다. 그보다 저자는 "유리 천장은커녕 시멘트 천장이라 불렸던 시대를 살았다"거나 "일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가 비난받지 않고 성과만으로 평가받는 환경을 찾아 은행원에서 애널리스트로 변신했다"는 등 서술로 자신을 소개하는 방식을 택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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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가 쓴 책 <공감 지능 시대> |
| ⓒ 이든하우스 |
"나는 흔히들 말하는 '정석적인 직장인의 길'과는 다른 길을 걸었다."
저자가 자신의 성장 동력에 대해 프롤로그 첫 문장에서 던진 힌트다. 그는 "한 우물만 파는 것이 미덕이었던 시절에 전공이나 경력과 전혀 다른 분야로 세 번이나 업종을 전환했다"며 "20대에는 영문과 출신 은행원으로 자금을 다루었고, 30대에는 증권사에서 문과 출신 IT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고 전했다. 금융권 출신이 제조회사로 전직하며 40대에 이르는 내내 "어디를 가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고 했다.
저자에게 전문성 부족은 약점이 아니라 성장의 계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가 아니었기에 오히려 더 근본적인 것을 보려 했다"는 것이다. 전혀 관련 없어 보이는 이종 분야를 연결짓는 것이 창의적으로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 중 하나라는 '정설'이 떠오르는 대목이다. 저자는 "한 분야만 본 사람에게는 당연한 것이 나에게는 낯설었고, 그래서 오히려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운이 따랐다"고 했다.
하지만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과 이를 현실에 적용시키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사람은 낯섦을 반기기도 하지만 꺼리기도 하는 존재다. 어떤 조직 안에서 새로운 생각을 현실화하기 쉽지 않은 것도 그래서다. 미스 커뮤니케이션으로 끝나기 일쑤다. 저자는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이해하고 그들의 원하는 것과 불편을 읽어내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다 보니 "내 성공의 핵심은 사람을 들여다보고 공감하며 답을 찾아가려는 태도에 있었다"고 전한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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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년 1월 28일, 당시 LG디스플레이 IR담당 김희연 상무가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LG디스플레이 2014년 4분기 실적 설명회에서 실적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
| ⓒ 연합뉴스 |
"평범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TV 파는 곳을 알려줄 수 없냐는 문의였다. 팀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비슷한 전화를 여럿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우리는 TV 세트용 패널을 만드는 부품 회사인데 왜 우리에게까지 전화가 올까? 이 작은 질문이 나를 전무로 승진시켜 준 계기가 되었다."
왜 그런 문의가 자신에게까지 도달했나 따져봤던 것은, "코로나가 발발하며 세상도 멈췄다"고 느꼈던 2020년 봄이었다고 한다. "TV 수요가 늘어날 거라는 판단은 시대에 역행하는 것과 다름없었다"는 그 때, 저자와 동료들은 구글 트렌드와 오픈 서베이를 통해 TV 구매 검색량이 수 십 배 늘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하루 종일 집에만 있다보니 TV를 큰 화면으로 보고 싶다는 욕구가 늘어 기존 TV를 큰 것으로 교체하고 싶다는 의사"의 정서적 가치를 확인했고, TV 생산을 늘리자는 '역발상 제안'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공감 지능은 "역설을 읽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대립보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지능인 셈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능은 이른바 AI 시대에 더 중요해질 것이라는 게 저자의 전망이다.
"편리함이 반드시 선이 아니듯, 불편함도 반드시 악인 것은 아니다. AI는 불편을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지만, 인간은 불편 속에 담긴 가치를 역으로 찾아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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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2월 18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디스플레이 기업 간담회'에 참석한 김희연 당시 LG디스플레이 CSO(오른쪽부터), 김성일 동진쎄미켐 사장, 이동욱 한국디스플레이산업협회 부회장, 신희동 한국전자기술연구원장이 장영진 산업통상자원부 제1차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 |
| ⓒ 연합뉴스 |
공감 지능의 필요 또는 '공감 지능 시대'라는 당위를 전달하는데 그치지 않고,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해 일종의 '실천적 안내서' 역할을 겸할 수 있도록 했다. 저자가 그렇게 한 이유는 독자들에게 던지는 다음 질문을 통해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혹시 자신이 흑수저라고 신세 한탄을 해 본 적이 있는가? 백(빽)이나 스폰서는 나와 상관없는 단어라는 생각이 드는가?"
이는 책에서 밝혔듯 저자 스스로 과거에 마주했던 질문이기도 하다. "첫사랑의 아픔을 피해 대학교 4학년 2학기에 도망치듯 들어선 외국계 은행"에서 9년차가 된 어느 날이었다고 한다. 잘 하고 있다는 칭찬을 기대하고 맞이했던 점심 시간, 뜻밖에도 저자는 직장 상사로 인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던 순간"을 맞이한다.
"당신은 왜 이렇게 욕심이 많아?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었다는 거 몰라요? 여자는 남자를 못 이겨요. 더군다나 MBA 출신도 아니잖아. 커리어에 욕심 내지 말아요."
이 일은 저자로 하여금 '정석적인 직장인의 길'에서 이탈하는 '세미 콜론'이 됐다. 그의 눈은 "학벌이나 성별과 상관없이 오로지 실력만 보는 곳"으로 향했고, 그의 몸은 30대 나이에 문과 출신이라는 일종의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IT 애널리스트 업계로 옮겨갔다. 충격적이었던 직장 상사의 그 말, 다음의 인과관계가 완전히 바뀐 셈이다. 저자의 '역발상'적인 선택으로 인해 말이다. 저자는 "인생 최악의 순간"이 "인생 최고로 잘한 결정의 계기"가 됐다고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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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희연 전 LG디스플레이 전무 |
| ⓒ LG디스플레이 |
삶은 어쩌면 '세미 콜론'의 연속이다. 그 다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삶의 인과 관계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이 책에 담겨 있는 통찰이다.
이런 통찰이 더 인상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이른바 AI 시대라는 거대한 '세미 콜론'과 마주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저자가 지적한대로 "우리는 모르는 것 투성이인 시대를 살고 있다", "변화의 속도는 너무 빠르고 알고 있는 지식이 빠르게 낡은 것이 되고 있다". 그래서 왜, "모르는 것을 대하는 태도가 경쟁력"인지, 저자의 주장을 끝으로 덧붙인다.
"이럴 때일수록 중요해지는 것은 더 많이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을 인정하는 태도다. 모른다는 인정이 새로운 시각을 열고, 더 깊은 이해를 가능하게 한다. 모름을 인정하는 데서 진정한 공감이 시작된다. 아는 척은 바보가 되는 지름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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