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들의 도시, 진짜 히어로가 나타났다

박기형 2025. 4. 2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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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로 읽는 노동] 소설 <언런던> (차이나 미에빌 지음, 김수진 역, 2011, 아고라)

[박기형]

차이나 미에빌의 장편 소설 <언런던(Un Lun Dun)>은 이 세계와 저 세계를 오가는 판타지의 전통적인 설정을 따르면서도, 그 익숙한 틀을 정면으로 해체하는 급진적인 서사 실험이자 정치적 상상력의 산물이다.

이 소설은 전형적인 '선택받은 자'의 서사를 따라가는 듯하다가 정작 주체의 자리에 비선택적 인물이 서게 되는 구조를 택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언런던>은 우리가 판타지 서사에서 당연하게 여겨온 규범적 상식을 흔들며, 대안적인 주체화 양식을 실험한다.

이야기는 런던에 사는 두 소녀, 자나(Zanna)와 디바(Deeba)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자나는 주변 사람들에게 '특별한 아이'로 지목된다. 정체불명의 새들이 자나를 따라오고, 거리에서 만난 낯선 노인이 그녀에게 '슈와찌(Shwazzy)'라고 적힌 카드를 건네며 "너는 선택된 아이"라고 말한다.

슈와찌는 언런던(UnLondon)이라는 기이한 세계에서 오랫동안 전해 내려온 예언 속 인물이다. 이 세계는 현실의 런던에서 버려진 것들(망가진 사물, 잊힌 기억, 주변화된 존재들)이 모여 형성된 도시로, 현실 세계의 '잔여'로 구성된 이중적 공간이다.

싸움의 중심에 서기

우연히 지하실로 들어선 자나와 디바는 언런던으로 넘어가고, 그곳에서 살아 움직이는 책과 말(言), 육식하는 기린, 팔다리가 달려 무술을 구사하는 쓰레기통, 날아다니는 버스와 같은 기묘한 존재들과 만난다.

언런던은 지금 강력한 위협에 직면해 있다. 그것은 도시를 뒤덮으려는 유독성 존재 '스모그(Smog)'다. 언런던 사람들은 예언된 구원자인 슈와찌가 스모그를 물리쳐줄 거라 믿고 있으며, 자나는 당연히 그 예언을 이행할 인물로 받아들여진다. 디바는 예언 속에서 슈와찌의 "우스꽝스러운 조수"로 언급된 인물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야기는 곧 전통적 판타지의 예측 가능한 흐름을 배신한다. 스모그 추종자들의 공격을 받은 자나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두 사람은 간신히 언런던에서 탈출해 현실 세계로 돌아온다. 이후 자나는 언런던의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리고, 마치 그런 세계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듯 일상에 복귀한다.

반면 예언의 중심에 있지 않았던 디바는 언런던에서의 경험과 관계들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스스로 '슈와찌의 조수'라는 서사를 거부하고, 언런던을 다시 위협하려는 스모그의 음모를 감지하며 그 세계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고 예언에 있지 않은 자발적 주체로서, 버려진 사물들과 함께 싸울 준비를 한다.

미에빌이 <언런던>에서 보여주는 가장 급진적인 서사 전략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그는 판타지 장르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예언'과 '선택받은 자'의 도식을 해체한다. 디바는 예언의 주인공이 아니다. 살아 있는 책은 그녀에게 반복해서 "너는 그 사람이 아니다", "예언에 네 역할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디바는 예언을 따르지 않고, 자신에게 할당된 자리를 벗어난다. 그녀는 책과 논쟁하고, 스모그에 맞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 나선다. 그러한 행동은 영웅적 사명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런던에서 만난 존재들(말하는 우유갑 커들, 반(半)유령 헤미, 자신들을 도와준 존스 차장과 버스에 같이 탔던 사람들, 슬레이트 러너들 등)과 맺은 관계에 대한 기억 그리고 그들이 처한 위기에 대한 감응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미에빌은 이처럼 주체화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명령이 아니라, 타자의 요청에 응답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이는 자나와 디바의 극명한 대비를 통해 더욱 분명해진다. 예언의 중심에 있던 자나는 언런던의 사람들과 사물들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경멸적인 태도를 보인다.

디바가 스모그 부하들을 따돌려준 버스 기사와 차장이 잘 도망쳤을지 걱정할 때도, 자나는 무심하게 "아 그래, 그랬다면 좋겠다"라고 답한다. 우유갑에 커들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디바에게 "쟤 이름도 있어?"라고 못마땅해하기도 한다.

언런던에 지낼 때도 그곳의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다. 오직 자기 집과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사람들이 '넌 슈와찌야. 할 수 있어'라고 얘기해도, 자신의 사명을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런던에 돌아와 건강을 회복한 뒤에 디바가 언런던에서의 기억을 상기시켜주려고 하자, 자나는 마치 언런던에서의 일을 기억하길 거부하는 듯 고통스러워하며 피했다.

반면 디바는 선택받지도 누군가에 의해 대표되지도 않았지만, 언런던 사람들이 베푼 따뜻한 호의, 활기찬 삶, 그곳에 드리운 공포를 잊지 않았다. 그녀는 자신과 아무 연관도 없어 보이는 존재들에게 이름을 붙이고,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응답하기 위해 행동했다. 그녀는 '비 선택된 자'였지만, 바로 그렇기에 스스로 주체화할 수 있었다.

타자의 고통에 어떻게 응답하느냐
 소설 <언런던>의 원서 표지 중 하나
ⓒ Amazon
언런던이라는 도시 역시 이 소설의 주제 의식을 공간적으로 구현하는 장치다. 언런던은 런던이라는 현실 세계에서 버려지고 밀려난 것들, 즉 쓰레기들이 사는 곳이다. 이곳은 눈에 보이지 않으나 분명히 존재하는 유령, 곧 런던의 유령처럼 존재한다.

하지만 언런던은 죽은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곳은 쓸모없음, 실패, 잉여라는 낙인을 감응과 연대의 장으로 전환하는 살아 있는 공동체다. 그곳의 쓸모없는 존재들은 스모그의 위협과 그에 대항하는 일련의 사건들 속에서 서로를 의지하며 보듬는다.

미에빌은 기능 중심의 도시 질서, 계급화된 공간 구조를 전복하며, '폐기된 것들의 도시'에서 새로운 윤리와 정치의 가능성을 상상한다. 언런던의 존재들은 누군가의 사명이 아니라 서로를 위한 응답 속에서 스모그에 맞서 투쟁한다.

결국 <언런던>은 우리에게 주체성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미에빌은 디바라는 인물을 통해, 주체성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사건과 거기서 맺어진 관계들에 대한 응답 가운데서 구성되는 것임을 보여준다.

주체는 '정당한 자격'으로 위치를 부여받는 게 아니라, 어떤 관계에서 마주한 타자의 고통에 어떻게 응답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행동하게 된다. <언런던>은 선택받지 않은 자의 윤리를 통해, 판타지의 정통적 문법을 해체하고 새로운 정치적 상상력을 제시하는 보기 드문 소설이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에서, 이 감응의 윤리는 더없이 시급한 요청일지도 모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의 필자인 박기형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장입니다. 이 기사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안전보건 월간지 <일터>에도 게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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