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윤의 딴생각] 효과 확실한 노화 예방법
난 돈도 없고 집도 없고 애인도 없다. 한마디로 있는 게 없다. 이 모든 것이 합쳐지니 사람이 참 없어 보인다. 마흔 줄에 들어선 이후로는 그나마 가지고 있던 생기마저 없어졌다. 나에게서 생기가 달아났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고는 있었지만 얼마 전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갔다가 거울 속 내 모습을 보고 확실하게 실감했다. 좋게 포장하자면 눈빛이 공허했고 적나라하게 표현하자면 맛이 가 보였다.
나이가 들면 그동안의 세월이 얼굴에 드러난다는데 도대체 나는 어떠한 삶을 살아온 것일까. 난생처음 피부과에 다니기 시작했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이 되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늙은 호박 신세는 면하고 싶었다.
회춘을 꿈꾸며 피부과를 방문하려는 사람에게 노파심에 경고한다. 세월을 거스르려는 자에게는 혹독한 대가가 따르기 마련이니 단단히 각오하는 것이 좋다. 팔 안쪽에 ‘항생제 반응 검사’를 해본 적 있는가.
그깟 주사 한 방에 눈물을 찔끔 흘리는 사람이라면 피부과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마시라. 거칠어진 피부에 탄력을 주려면 그런 식의 주사를 얼굴에 맞아야 한다. 그것도 무려 100방쯤, 심지어 주기적으로 말이다. 주삿바늘이 얼굴을 찌르는 고통을 떠올리면 피부과로 가는 발걸음이 차마 떨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곳을 꾸준히 찾는 이유는 원장님과 나누는 대화가 즐겁기 때문이다.
얼굴에 주사를 놓을 때면 원장님은 수다스러워진다. 나의 정신을 혼미하게 해 아픔을 덜 느끼게 해주려는 배려라는 사실을 안다. 덕분에 원장님의 가족 구성원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책을 인상 깊게 읽었는지, 의사 생활을 하며 어떠한 어려움을 겪었는지도 알게 되었다. 그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직원에게 늘 고마움을 느낀다는 이야기였다. “직원들이 예약도 잡아 주고 환자 응대도 해주잖아요. 제가 이렇게 시술하고 나면 관리도 다 해주고요. 저 혼자서는 일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늘 고맙죠.” 실제로 원장님은 직원에게 고맙다는 말씀을 많이 하신다. 원장님은 나에게도, 많고 많은 병원 중 우리 병원을 찾아와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잊지 않으신다.
이렇게 좋은 병원은 더 잘돼야지. 언니에게 내가 다니는 피부과를 추천했다. 그런데 언니는 대뜸, 자기가 다니는 한의원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언젠가 한의원 침대에 엎드려 침을 맞는데 옆자리에서 환자의 풀 죽은 목소리가 들려오더란다. “직장 상사가 괴롭혀서 힘이 드네요.” 그 말을 들은 한의사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환자의 역성을 들었단다. “누구야. 데리고 와!” 한의사의 오버액션에 침구실에 있던 환자들이 숨죽여 웃었다나 뭐라나.
언니의 결론은 냉정했다. 돈을 내는 환자의 비위를 맞추려면 무슨 소리를 못 하겠냐고 말이다. 그동안 내가 피부과에 쓴 돈이 얼마였더라. 누가 나에게 그 돈을 준다면 나라도 고맙다는 소리가 절로 나올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원장님의 다정함이 자본주의에서 비롯된 것인지 진심에서 우러나온 것인지는 나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그가 건네는 따스한 말에 화답하다 보니 나 역시 긍정적으로 말하는 습관이 들었다. 주사가 아프지 않았냐는 원장님의 물음에 “죽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는 대신 “참을 만했어요” 하고 대답하고, 여행을 가 보라는 누군가의 제안에 “낯선 걸 싫어해서요”라고 말하는 대신 “익숙한 걸 좋아해서요” 하며 미소 짓기도 한다.
투덜거리는 말 습관이 입에 밴 나에게는 무척이나 고무적인 변화다. 요즘 들어 얼굴이 밝아진 이유를 물어온다면 여배우처럼 새침하게 대답하련다. “글쎄요. 같은 말을 하더라도 긍정적으로 표현하는, 뭐 그런 좋은 습관 덕이랄까?”
여러분에게만 그 비법을 솔직히 공개하자면 잡티 제거 레이저 시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단어를 말하며 밝은 표정을 지은 덕도 조금은 있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긍정적인 말의 효과가 얼굴에 드러나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사이에 노화는 시나브로 진행될 테니 급한 대로 현대 의학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피부과 실장님과 상담을 마친 끝에 리프팅 레이저 시술을 결정했다. 조만간 청구될 카드 값을 생각하니 정신이 다 아찔하다. 난 지난달보다 돈도 없고, 돈이 없으니 당분간 집도 없을 테고, 까딱하면 애인마저 평생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있다. 긍정적으로 말하며 나를 변화시키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
이주윤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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