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사람 비슷한 조각작품인데... 이게 뭐라고 울림이 큽니다

노태헌 2025. 4. 25. 18:0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존재의 의미를 마주하게 만드는 세심한 작가의 손길, 침묵의 크기 조각하는 론뮤익전(~7.13)

[노태헌 기자]

전시실을 들어서는 순간 나는 어딘가가 불편해지기 시작한다. 정신의 어딘가를 찌르는 불편함, 이것을 무엇이라고 정확하게 단번에 표현 하기 어렵다.

온통 하얗게 구성된 전시관의 배경에 띄엄띄엄 들어선 낯설기도 하면서 익숙하기도 한 그 무엇(론뮤익의 작품들)의 존재 때문이다. 그 무엇은 사람의 실제 크기보다 훨씬 더 거대 하기도 하고, 미니어쳐 처럼 작기도 하다. 그리고 거대한 침묵이 내 앞에 놓인다. 며칠 전 다녀온 론뮤익전 얘기다.
▲ 론뮤익의 대표작중 하나 마스크2 한올한올 그저 놀랍기만하다. 한작품에 수년이 걸린다는 그의 작업세계가 상상되는 작품.
ⓒ 노태헌
거인이 있다면 이정도이지 않을까 정도의 사람 크기 열배 정도가 되는 몸을 침대에 누인 여성은 세상과 단절된 듯 고요와 고독의 분위기를 감싸 안고 있다. 창백한 피부에 정맥과 동맥을 따라 흐르는 푸르스름한 피부색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듯 느껴진다.

섬세한 감각을 지닌 것 같은 이 여성을 어떻게 명명해야 할까.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마치 인간의 감정과 기억을 상실한 것처럼 보인다. 침묵의 형상화 된 육체, 거대하고 조용하게 표현된 여인의 고요가 전시실에 들어선 모든 관람객을 감싸기 시작한다.

이렇게까지 긴 줄이 생긴 건 오랜만

주말 국립현대미술관에 이렇게까지 긴 줄이 생기는 것은 실로 오랜만이다. 론뮤익(Ron Mueck)은 한 작품에 소요되는 시간이 수개월에서 수년이 걸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작가가 공을 들인 시간과 작가의 무언가를 집어넣어 표현한 작품과 조우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한국의 미술 애호가들에게는 긴 대기시간을 감내하는 시간이 꼭 길지만은 않다. 관람객들은 뮤익의 작품과 마주 서고, 보고, 느끼고, 감각할 준비를 한다.
▲ 남자의 표정은 보이지 않는다. 이각도에서 저각도에서 살펴보아도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었다.
ⓒ 노태헌
예술성 높은 작품 앞에 서서 각자만의 무언가를 다시 담아내는 것이 예술이 가지고 있는 예술가-작품-관객의 양방형 통행로가 아닐까. 예술성과 대중성이 균형감각있게 표현된 이번 전시에서 나는 사람들의 조용한 열기가 전시관 내에 채워져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단지 유명 작가의 유명작품이 전시되고 있어서가 아니라, 론뮤익의 작품들이 가지고 있는 절제되면서도 고요하게 표현된 방식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중한 메모리속 어딘가와 연결되기 때문일 것으로 보인다.

론 뮤익은 1958년에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인형과 인형극을 제작하는 일을 했으며, 론뮤익도 어린이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영화에서 인형 제작자로 활동했다. 사람의 형태로 종종 표현되곤 하는 그의 작품에는 생의 본질을 관통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
▲ 아기를 품안에 안고 장을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여인 그녀의 표정을 본다. 오래오래 그녀의 표정을 본다.
ⓒ 노태헌
그의 작품 하나하나는 사실적 재현을 넘어 감정과 생의 의미, 한 인생에서 가지는 주요한 사건의 본질과 같은 철학적 주제를 담고선 관객들에게 그 의미를 묻는다. 뮤익의 작품은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고독, 불안, 걱정, 사랑 등을 표현하기도 하는데 마주하게 되는 우리네들과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각자의 기억속 어딘가에 잠재된 메모리를 각성시킨다.

시간 속에서 변형되어 가는 육체의 변화는 우리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의미일까. 삶에서 가지는 전환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사랑. 출생. 죽음. 두개골과 같이 때론 뼈만 남는 '아무것도 아님'이 가지는 의미는 삶의 시작과 여정에 어떤 울림을 가질까. 그렇게 그의 작품에는 많은 것들이 담겨져 있다.

단순히 표현된 사실적 재현을 넘어 인간이 가지고 가는 감정이라는 모호성. 사회적-문화적 주제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만이 가자고 있는 모순과 복잡한 삶의 양상. 그리고 삶과 사람의 경계와 사랑과 이별의 연결되면서도 고독함을 내포하는 것과 같은 다양한 부분을 보여준다. 그리고서도 그의 작품은 인간의 존재에 대해서 끝없는 질문을 던진다. 당신에게 삶이란 어떤 것인가요,라고.

뮤익의 예술품들은 '크기가 가지는 섬세하기도 하며 거대한 무엇이기도 한 것'의 다양한 양태 또한 보여준다. 특히 이번 전시에 두개골을 쌓아 올린 'Dead Weight'는 인간의 죽음과 존재의 무게를 상징하는것으로 보이는데, 죽음이 켜켜이 쌓여 올려져 있는 모습은 보는 관람객들에게 깊은 이미지의 낙인을 제공하기에 충분하다.
▲ 삶과 죽음 삶의 이면의 본질. 우리는 언젠가 무가 된다는 사실.
ⓒ 노태헌
뮤익은 종종 인체를 극단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 하기도 하지만 그가 표현하고 싶은 본질은 피부나 뼈의 섬세함을 넘어 그것이 품고 있는 감정, 시간, 고독과 같은 것으로 보인다.
그가 표현한 질감은 감정의 온도까지 재현 하기도 하는데 눈 밑의 그늘, 손끝의 붉은 얼룩, 입가의 주름과 같은 것들은 삶이 지나간 자국처럼 피부 위에 새겨진다. 사람의 삶이라는 것은 노화와 죽음을 동반한다는 자명한 사실처럼.
▲ 해골 원효대사가 그랬다. 해골바가지의 물을 마시고 깨달음을 얻었다고. 그와는 달리 해골, 무언가 빠져나간 한 조각은 어떤 울림을 준다.
ⓒ 노태헌
처지고 굽은 노인의 육체. 수탉을 노려보는 노인의 얼굴과 같은 작품은 특히 의미가 다채롭다. 고전 조각이 이상적 아름다움과 신성을 표현하려 했다면 뮤익은 '살아 있는 인간 그 자체'를 본질에 담으려 한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신체의 굴곡 속에서 탄생된 시간에 따른 노화, 사랑과 상실, 그리고 고요와 절망이 삶의 시간을 통해 혼재 되어 있는 것이다. 마치 우리 삶이 우주의 카오스 중에 극히 작은 일부분인 것처럼.
▲ 노인과 닭 테이블위에서 마주보고 있는 노인과 닭
ⓒ 노태헌
론뮤익이 표현하는 세계는 하이데거의 '현존재'나 라캉의 '결핍'과 같은 것과도 이어져 있다. 실재라는 의미. 그리고 환상, 혹은 물질과 감정이 교차하는 세계의 경계 지점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고 있는지, 질문해야 되는지,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나와 당신. 지금, 어떤 인간성이라는 가치를 가져가고 있나요' 라고.

예술가들의 끝없는 물음. 하지만 관객의 대답은 목소리로 바로 발성되지 않는다. 인간의 삶을 바라보는 여러 시각, 예술가들이 표현하고 있는 예술과 감각의 세계. 그리고 이에 대한 바톤을 이어받아 끊임 없이 연결되는 질문의 세계. 시지프신화 속 시지프의 정체성을 닮은 예술가들의 집단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예술의 본질을 이번 론뮤익전에서 느낄 수 있다.

론뮤익은 육체를 통해 이어가는 삶의 신비를 침묵과 고독의 결정체를 통해 표현해 냈다. 그리고 사람이라는 인간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켜가야 하는지 조용한 울림을 통해 보여주며 우리에게 이것저것을 묻는다.

뫼비우스의 띄처럼 돌아가는 질문들과 함께 우리들은 자신의 기억속 어느지점과 현재를 연결 시킨다. 부상하는 질문들은 나로선 침묵으로 메아리칠 수 밖에 없었다. 마음속 깊은 곳에 떠오른 구현화 되지 않은 실체의 그 무엇. 그리고 말보다 앞선 그 무엇의 소중한 세계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 나무를 이고가는 여인 때는 기원전. 동굴속어딘가로 돌아가는 힘찬 여인을 상상한다.
ⓒ 노태헌

덧붙이는 글 | 론뮤익전 오픈기간 2025-04-11 ~ 2025-07-13 주최/후원 : 국립현대미술관,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장소 :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지하1층, 5, 6전시실 관람료 : 5,000원 위치 : 안국역 도보 십분, 광화문역 2번출구 마을버스 11번 (3정거장, 5분거리)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