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50글쓰기] 지금 당장 가방을 열어보세요, 거기 누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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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대를 살아가는 4050 시민기자가 취향과 고민을 나눕니다. <편집자말>
[최은영 기자]
조회수를 보장해 주는 콘텐츠 중 하나가 '왓츠 인마이백'이라고 한다. 유튜브나 블로그에서 "내 가방엔 뭐가 들었게요?" 하며 본인 가방 속 소지품을 보여주는 콘텐츠다. 나는 생각 없이 화면을 보다가 문득 내 가방이 생각났다.
내 가방을 열자마자 든 생각은, '어, 내가 없는데?' 였다. 내 가방은 아이들이 쓰다 만 것들의 요람이었다. 일단 가방 자체도 내가 고른 게 아니다. 몇 년 전에 돈화문 한옥마을에서 첫째가 전통매듭 체험을 하면서 받은 에코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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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짱구 파우치와 립밤, 수건, 텀블러 모두 아이들에게서 나온 물건들이다 |
ⓒ 최은영 |
지금 6학년인 둘째가 유치원 행사 때 받은 수건을 요가원에서 쓴다. 요가 끝나고 물 마실 때 종이컵 대용 텀블러 역시 유치원에서 받은 컵이다.
가방은 휴대용 자아라는데 내 자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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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왓츠인 마이백, 콘텐츠는 끊이지 않는다 저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궁금해진다 |
ⓒ 유튜브 |
사람들은 타인의 사생활을 궁금해하는 본능이 있다. 남의 가방을 보며 자신을 비춰본다. '저 사람은 저런 걸 들고 다니네? 나도 저거 사볼까?' 그런 비교와 관찰이 반복되면서 우리는 알게 된다. 아, 나한테도 뭐가 좀 필요하구나. 혹은, 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거지?
절약과 궁상 사이에 있지만 싫지 않다
내 가방이 말해주는 나를 돌아본다. 나는 내 취향을 찾기보다 애들이 안 쓰는 거 쓰는 사람이었다. 가방만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티셔츠도 둘째 옷이다. 운동화는 큰애가 신던 신발이다. 아들 옷은 물려(?)받고 딸 옷은 같이 입는다.
옷이나 신발을 '한 명만 쓴다'라고 생각하면 가성비가 떨어지는 거 같다. 자연히 40대인 나 혼자 입고 신을 아이템은 자꾸 외면한다. 이쯤 되니 '절약정신'이 아니라 '자존감 실종' 일지도 모르겠다. 그런데도 싫진 않다. 이 가방과 옷장과 신발장엔 지난 10년이 들어 있어서다. 아이가 나만큼 자랐으니 내가 아이 물건들을 쓸 수 있는 거다.
나는 내 퍼스널 컬러가 뭔지 모르고 궁금하지도 않다. 반면 아이는 본인 컬러를 찾아 이것저것 시도한다. 쓰다만 화장품은 시도 과정에서 생기는 어쩔 수 없는 부산물이다. 요새 뭐를 해도 시큰둥한 무기력한 아이가 많다고 한다. 그러니 본인 퍼스널컬러를 나서서 찾는 아이가 고맙다. 아이가 남긴 부산물을 내가 다 소화할 수 있으니 그 역시 좋은 일이다.
짱구 파우치는 아이가 친구와 크리스마스 선물을 교환할 정도로 좋은 관계가 유지됐다는 증거다. 그저 선물 고르는 스킬이 부족했을 뿐이다. 버렸으면 썩지도 못하고 바다 어딘가를 떠돌텐데 내 가방에서 제 역할을 다 해주고 있으니 기특하지 아니한가.
나는 아이 성장의 결과물을 들고 다닌다. 그러니 내 가방엔 물건보다 사연이 더 많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이것저것 섞여 있지만, 하나하나 꺼내다 보면 결국 내 이야기가 된다.
딱히 내세울 취향은 없지만 안 쓰는 걸 버리진 않고, 다시 쓰고 돌려 쓰는 생활이 있다. 절약과 쓰레기 줄이기에 대한 실천이다. 누군가는 이걸 '취향 없는 가방'이라 부를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아이를 이만큼 키웠다는 증거가 된다.
취향 대신 세월이, 유행 대신 사연이 눌러앉아 있다. 그러니 누군가 내게 "왓츠 인 유어 백?"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아이 키운 흔적이요. 그리고 그걸 즐기는 저요."
덧붙이는 글 | 4050 그룹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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