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태어난 날, 세월호 참사 터졌죠" 카메라 든 캐나다 교포
[이선필 기자]
캐나다 최남단의 한 대학에서 촬영 강의를 하던 배민 감독은 우연히도 그날 한국에 있었다. 임신한 아내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고국을 찾았던 날이 2014년 4월 15일이었고, 다음날 아내와 병원으로 향하던 중 라디오로 사고 소식을 들었다. "그럼, 한국이 어떤 나란데" 안심했던 그는 저녁 무렵 정반대의 소식으로 멍해졌다. 아내에게 미안함을 표하며 그는 카메라를 들고 곧바로 진도로 향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리셋>의 시작이었다.
한국에 거주하는 다른 사람들처럼 현장을 늘 지키지도 못했고, 그저 해외에서 종종 날아와 기록하는 사람 정도로 유가족들에게 인식됐을 거라던 배 감독은 비록 매일은 아니었지만 꾸준했다. 안식년 1년을 고스란히 바쳤고, 유가족과 언론인, 시민단체, 그리고 조사위원회 활동을 두루 카메라에 담았다. <리셋>은 이 모든 과정을 지성 아빠(문종택)의 시선과 세월호 자체의 시선으로 담아냈다. 영화의 화면비가 시네마 스코프 비율(2.39 대 1)인 이유다. 영화 <리셋>의 언론배급 시사회가 열린 다음 날인 23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배 감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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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큐멘터리 영화 <리셋>을 연출한 배민 감독. |
| ⓒ CACTUS PICTURES |
그러다 캐나다에 돌아가서 1기 사회적참사위원회 활동을 지켜보다가 영화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했다. 2015년 봄쯤이었다. 영화 제목도 촬영이 끝나고 후반작업하며 정한 게 아니라 2016년경 본격적으로 인터뷰 촬영을 할 때 이미 정했다. 영화에 나오는 예은 아빠(유경근)의 말처럼 타임머신을 타고 가 그날의 순간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일 수도 있고, 국가 차원의 조사위원회가 세, 네 번 있었는데도 여전히 의문인 게 많으니 원점으로 돌아가 다른 식으로 접근해보자는 생각 때문일 수도 있다."
참사 원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고 분석한 영화들이 있었고, 유가족 등 남겨진 사람들의 삶을 다룬 작품들도 있었지만 <리셋>은 담담하게 지난 11년의 흐름을 담고 있다. 마치 연대기를 정리하듯 말이다. 배 감독은 "한국에 살고 있지 않는 입장이라 지성 아빠의 눈으로 많이 보여드리고 싶었다. 그리고 후반부는 인양된 세월호 그 자체가 주인공이라 생각하고 촬영했다"며 설명을 이었다.
"일단 지성 아빠의 캐릭터 자체가 독특했다. 까칠해 보이잖나. 왜 이렇게 화가 나 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10년 넘게 조사과정을 다 지켜보신 분이고 특히 본인의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되새기지 않나. 그 속사정들을 다 아니까 화가 나실 수밖에 없는 것 같다. 교민인 제가 봐도 이상했다. 한국처럼 잘 사는 나라가 왜 아이들을 안 구했을까. 그 질문에 초점을 맞추려 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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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리셋>의 한 장면. |
| ⓒ CACTUS PICTURES |
영화 중후반 박영대 당시 국민조사위원회 상임연구원이 다음과 같이 말하는 대목이 있다. 사람들은 왜 침몰했냐를 묻는데 질문을 바꿔야 한다고 국가가 왜 진실을 가리고 있는지 말이다. 조사과정에서 드러난 조직적 은폐 정황에 대한 일침일 것이다. 배민 감독 또한 박 연구원의 말을 인용했다.
"내인설이냐 외력설이냐 싸울 게 아니라 부모들이 왜 자기 자식들이 죽어야 했는지를 몰라야 하는지 따져야지. 침몰 원인에 대해선 유가족들 의견이 다 다르다. 가족들도 어찌할 수 없고 어떻게 할 바를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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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리셋>의 한 장면. |
| ⓒ CACTUS PICTURES |
배민 감독은 추후 국가 차원에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다시 조사하게 된다면, 마치 프로파일러처럼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개인 의견을 전하기도 했다. 조사위원 구성부터 정치적 타협으로 가는 요인을 제거하고 대통력 직속 기구로 가는 게 깔끔하다는 요지였다.
"지성 아빠께서 선체조사위원회 결과 보고서를 뒤집어 보여주시더라. 그러니까 한쪽으로 보면 외력설을 먼저 읽을 수 있고, 반대쪽으로 뒤집어 보면 내인설을 먼저 읽을 수 있게 하는 구성이었다. 그 자체가 한국 사회의 상징 같았다. 하나의 진실을 두고 이렇게 양쪽으로 나뉘면 안 되지 않나. 해외영화제에 갔을 때 한 관객이 물었다. 한국사회는 모든 게 편리하게 잘 돼 있는데 왜 이 사건을 10년 넘게 국민들이 납득하지 못하느냐고 말이다.
참사 당일 기억을 돌이키면, 첫날은 언론도 자원봉사자들도 유가족들도 못 느꼈을 거다. 근데 다음날부터 불신이 싹트기 시작했다. 사복 경찰들, 기무사 요원 등이 현장에 있었다. 가족들의 도보 행진을 막으려 했고, 구조 작업에 영향을 줬다. 초창기에 그런 게 불신의 뿌리를 박은 셈이다. 그러니 유가족 입장에선 내인설, 외력설 둘 다 완벽하게 믿지 못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물론 (침몰 원인이 선체 내부에 있다고 결론 내린) 해양안전심판원이 과학적으로 분석한 결과겠지. 하지만 다른 가능성을 말도 안 되는 공상이라 치부하기엔 또 맞는 이야기들이 있다. 이를테면 내부요인과 동시에 외력도 작용했다든가 말이다."
배민 감독이 조심스럽게 밝힌 의견이다. 감독은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할 수 있다는 자체가 감사한 일이라며, 영화 개봉일인 4월 30일 이후로도 약 일주일간 한국에 체류하며 홍보 일정에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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