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침은 별처럼, 추억은 별빛처럼 빛납니다

박도 2025. 4. 24.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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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악산 일기] 어느 행복했던 하루

[박도 기자]

 사은회 행사장의 현수막
ⓒ 박도
"청춘은 희망에 살고 백발은 추억 속에서 산다"고 한다. 나는 이즈음 10여 년 백발 상태를 지나 삭발로 살고 있다. 특히 지난 3월 24일부터 4월 4일까지 열흘 간 원주의료원에서 갑작스러운 신병으로 입원을 한 바 첫 사흘간은 혼미 상태로 지냈지만 나머지 회복기 일주일 동안은 내 지난 인생을 처절하게 되돌아보면서 냉엄한 반성과 뼈를 깎는 참회의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향해 저에게 다시 생명을 연장해 주시면 여생을 더욱 열심히 살겠다고 기도 드렸다.

사랑의 하느님은 나를 어여삐 여기셨는지 감사하게도 다시 삶의 기회를 주신 듯하다. 나는 청소년 시절 세 가지 꿈을 가졌다. 그 하나는 교사가 되고 싶었다. 그리하여 군에서 제대를 하자마자 교단에 서서 1971년 7월 10일부터 2004년 2월 29일까지 꼬박 32년 7개월간 교단에 섰다. 다음으로는 작가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둔재인 탓으로 다른 이들은 은퇴할 나이인 50대에 등단을 하여 지금까지 44권의 저서를 펴냈다. 세 번째 꿈은 기자가 되는 꿈이었다. 고교 시절 집안 사정으로 서울의 북촌인 가회동, 계동, 서촌인 누하동, 사직동 등지에서 신문 배달을 했다. 그 시절 그곳은 한옥 촌이었는데 아침저녁 대문 틈 사이로 조석간 신문을 넣고 뒤돌아서면 어느 새 개들이 뛰쳐나와 내 바짓가랑이를 물고 늘어졌다. 그때마다 나는 그 개들을 향해 소리쳤다.

"개새끼! 사람 우습게 보지 마! 난 이다음에 한국의 문호가 될 귀하신 몸이야!"

그렇게 고함을 치며 워커를 신은 발로 그들의 주둥이를 냅다 찼다. 그러면 그 개들은 그날 이후로는 나만 보면 슬슬 피하고 꼬리를 내렸다. 역시 강자에게는 약한 개새끼들이었다. 아무튼 그 꿈 탓이었는지 유수한 언론인들은 거의 대부분 은퇴할 60대(2002년)에 오마이 뉴스 시민기자가 돼 별나게도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지를 비롯하여 북한의 백두산, 금강산도 서너 차례 탐방하면서 2000여 꼭지의 기사를 쓰면서 여태 대한민국 광복회 고문, 김대중이희호 기념사업회 고문직을 맡고 있다.

최근 병상에서 일주일 남짓 요양하면서 처절한 지난 인생에 대한 참회와 성찰의 시간을 가진 바 지난 인생 역정을 성능 좋은 지우개로 모두 지우고 싶었다. 하지만 그 가운데 그래도 참으로 보람 되게 잘 지냈다고 자부하는 기간은 33년의 교사 생활이었다. 정말 좋은, 많은 훌륭한 제자들을 만났다. 교사 초임 시절, 나는 신학기 첫 출근 전날은 으레 잠을 설쳤다. 그리고 그 다음 날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어린 영혼들을 만나면 그들을 껴안아주고 보담아 줬다. 그 순간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후일 그들이 나를 금강산에도, 워싱턴 백악관에도, 일본 사도 광산에도, 아오모리 현 얼음집에도, 중국 하얼빈 역 플랫폼에도, 뉴욕 맨해튼 빌딩 숲에도 앞장서서 길 안내를 했기에 숱한 글을 쓸 수 있었고, 그 여행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다.
 연회장을 가득 메운 사제의 만남
ⓒ 박도
가장 상쾌한 날

어제(2005. 4. 23.)는 올해 들어 가장 상쾌한 날이었다. 그 전날 비가 듬뿍 내려 공기도 무척 상쾌했고, 곡우절을 막 지난 온화한 날씨로 최고의 날씨였다. 사랑하는 이대부고 애제자들이 옛 스승을 서울의 한 호텔 연회장으로 불러 재롱을 피우면서 즐겁게 해 주는가 하면, 맛난 식사로 대접도 하고, 헤어질 때는 슬그머니 주머니에 차비도 챙겨 주었다.

사실 나는 그들의 사은회에 초대를 받고 그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하러 갔는데 오히려 대접만 잔뜩 받았다. 그 자리에는 멀리 시카고에서 날아온 친구도, 내 작품 <전쟁과 사랑>을 자문 감수해 준 제자도, 백내장 수술로 내 흐린 시력을 회복 시켜준 한국의 슈바이처 박사와 같은 의료인 제자도 참석하여 부디 선생님 좋은 작품을 남겨 달라고 뜨겁게 성원해 주었다.

그날 사은회에 앞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염상섭 좌상에서 모처럼 두 출판인(이재욱, 강화석)을 만나 나의 최신 작으로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 탈고 원고의 구두 출판 계약을 마쳤다.

그 모든 일을 무사히 마치고 원주행 귀가 열차를 타고 내려오는데 만감이 교차했다. 차창에 비친 내 눈에서는 어느 새 눈물이 고였다. 아마도 제자들의 사은에 대한 고마움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여생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한 퇴역 훈장, 노작가의 눈물어린 다짐이리라.

밤 늦은 어둑한 내 집 현관 앞에 한 택배 상자가 놓여 있었다. 이대부고 제자들이 보낸 사랑의 선물 상자에는 편지 한 통이 들어 있었다.

… 선생님의 열정적인 가르침은 제자들 마음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서, 저희들 인생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
 일본 아오모리 현 한 얼음집에서 고교 졸업 30년 만의 사제 만남
ⓒ 박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박도 페북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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