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독립운동가 그리는 윤석남 대화백과의 만남

이윤옥 2025. 4. 23. 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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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간도에 들꽃 피다> 바탕으로 대작 130점 완성, "생의 마지막 작업은 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리는 일"

[이윤옥 기자]

"윤 화백님~~, 빼꼼히 열린 작업실 문을 열면서 나는 큰소리로 윤 화백을 불렀다. 미술관을 방불케 하는 커다란 작업실에서 항상 클래식 음악을 틀고 작업하던 평소와는 달리 어제(21일)는 음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덜컥 겁이 났다. 이제 나의 말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음악 소리를 꺼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스러운 생각을 하면서 작업실에 들어서자, 윤 화백은 작업 중이던 작업대에서 허리를 펴고 나를 반갑게 맞이한다.

"어서 와요, 이 선생"
"지금 그리는 이 분은 누구세요?"
"맞춰 봐요, 누구인가?"
 여성독립운동가를 그리고 있는 윤석남 화백
ⓒ 이윤옥
 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윤석남 화백
ⓒ 이윤옥
우리의 대화는 언제나 '그림 이야기'로 시작되어 '그림 이야기'로 끝이 난다. 윤석남 화백은 올해 나이 여든여섯이지만 여전히 왕성한 대작(大作)을 그리는 현역 작가다. 윤 화백이 그리는 대상은 역사의 조명을 거의 받지 못하고 있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이다. 윤 화백은 4년 전인 2021년 3월 서울 학고재갤러리에서 <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역사를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전(展)을 연 바 있다. 그 무렵 윤 화백이 그린 여성 독립운동가 작품은 28점이었으나 당시 전시 공간의 문제로 절반만 전시했었다.

"제가 이윤옥 선생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이 작업을 시작했겠어요? 이제 제가 목표로 하는 것은 1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리는 일입니다. 생각보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시간이 꽤 걸립니다."

2021년 학고재 전시 이후 나는 화성시에 있는 윤 화백 작업실을 자주 찾아가 목표인 1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선정하는 작업을 함께해 왔다. 그 밑 작업은 내가 쓴 200명의 여성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책 <서간도에 들꽃 피다>(전 10권)로 우리는 200명 가운데 100명을 임의로 뽑았다.
▲ 여성독립운동가 관련 필자의 책 윤석남 화백의 작업실 서가에 꽂혀있는 책과 책상 위에는 여성 독립운동가 관련 필자의 책이 놓여있다.
ⓒ 이윤옥
▲ 이도신 지사 기록 여성 독립운동가 104번째 인물인 이도신 지사에 관해 메모를 해둔 윤석남 화백의 기록
ⓒ 이윤옥
그 선정 기준의 처음과 끝은 '실물 사진의 존재 여부'다. 윤 화백의 그림은 상상화가 아니라 실물 사진을 바탕으로 한 윤 화백 나름의 초상화 작업이다. 그러나 일제침략기 독립운동을 하던 분들은 애석하게도 사진이 많이 남아있지 않다. 있다고 하더라도 희미하기 짝이 없는 사진들이 대부분이라 작업에 애로가 많은 상황이지만 윤 화백은 용케도 각 인물의 특징을 살려내는 마법의 손으로 한분 한분 작업에 임하고 있다.

그렇게 완성된 작품이 어제(21일) 현재 130점이다. 이 놀라운 작업량은 윤 화백 집념의 산물이다. 작업 중인 모습을 바라다 보노라면 여든여섯 노구(老嫗)의 몸에서 어떻게 이런 힘 있는 필치의 그림이 탄생하는 것인지 신비롭기만 하다.

"아이구, 100점을 다 그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 힘에 부치네."

윤 화백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목표치인 100점은 그리셔야 하는데... 그런 우려 속에 130점을 그려내시다니, 고개가 수그러든다.
▲ 윤석남과 이윤옥 다정한 모녀처럼 우리는 자가촬영(셀프카메라)을 즐겨 한다.
ⓒ 이윤옥
윤 화백 작업실을 찾는 시간은 대개 오전 11시 반 정도인데 그 까닭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서다. 윤 화백은 젊은 사람 못지않게 피자나 스파게티를 좋아해서 우리는 작업실 근처 레스토랑에 가서 커피와 함께 스파게티와 피자 한 쪽을 시켜 먹으며 소녀들처럼 재잘재잘 그림 이야기, 살아온 이야기 등에 이야기꽃을 피우곤 한다. 나는 주로 윤 화백님의 옛 이야기를 듣는 편인데 특히 아버지와 어머니의 사랑 이야기는 영화의 한 장면 같아 여러 번 들어도 새록새록 하기만 하다.

이런 시간을 갖는 것은 윤 화백의 그림을 이해하는 '밑천'이기에 나는 될 수 있으면 그 시절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토끼 귀처럼 쫑긋하고 듣는 나의 모습에 윤 화백은 장편 드라마 같은 인생 노정을 숨김없이 들려주곤 한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는 어린 자식들을 돌보느라 무척 고생하셨어요. 너무나 어려운 살림이었지만 어머니는 악착같이 이를 악물고 우리 형제들을 교육시키느라 평생 등 한번 펴지 못했지요. 나는 어머니와 같이 강인한 여성들의 삶을 존경합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내 그림의 주제는 여성이 되고 말았지요."

윤석남 화백은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大母)로 한국 화단에서 탄탄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원로 작가다. 그런 그가 한국화 가운데서도 초상화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는 유명한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보고 난 뒤부터라고 한다.

"공재 윤두서의 자화상을 만났을 때 충격이었다. 그 뒤 조선시대 초상화를 공부하다가 남자들 그림만 있는 것에 놀랐다. 그때부터 여성 초상화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서서히 여성 독립운동가들을 그리게 되었다. 이제 생의 마지막 작업은 여성 독립운동가를 그리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붓을 쥘 수 있는 날까지 그려갈 것이다."
▲ 여성독립운동가 전시회 윤석남 학고재갤러리에서 열렸던 여성독립운동가 전시회 때(2021.3) 박차정 지사 그림 앞에 선 윤석남 화백
ⓒ 이윤옥
▲ 학고재갤러리에서 윤석남과 이윤옥 여성독립운동가 전시회 장에서 윤석남 화백과 필자(2021.3). 정정화 지사 그림 앞에서
ⓒ 이윤옥
나는 여성독립운동가들의 삶을 글로 써내는 사람이고, 윤석남 화백은 그림으로 그리는 작업을 하는 사람으로 그런 면에서 우리는 단짝임을 자처하고 있다. 윤 화백의 올해 바람은, 이 작품들을 전시하는 것이다. 그러나 모두 대작 시리즈라 어지간한 미술관에서는 소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어제 나는 윤 화백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올해가 광복 80돌이므로 우선 80점(모두 130점 소장) 을 전시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뜻있는 미술관에서 윤석남 화백의 작품을 전시하여 살아생전에 화사한 조명을 받은 적이 없는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삶이 그림으로나마 밝은 해 아래로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건 윤석남 화백님과 나의 간절한 소망이기도 하다.
▲ 손 흔들어 주는 윤석남 윤 화백은 작업복 차림으로 마당에 나와 내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 이윤옥
윤 화백은 언제나 헤어지는 시간이면 작업실에서 나와 마당에 세워둔 차의 시동이 걸리고 마당에서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준다. 올해 여든여섯, 나는 윤 화백이 지금처럼 건강한 모습으로 붓을 쥐고 독립운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여성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을 화폭에 담아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제, 초록이 싱그러운 안녕리 작업실을 나왔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우리문화신문에도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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