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덕환의 과학세상] 조기 대선 집어삼킨 AI 공약 현실적인가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2025. 4. 23.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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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주자인 이재명 전 대표가 국방과학연구소 17일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AI 기반 무인체계 연구개발 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연합뉴스 제공

조기 대선에 나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인공지능'(AI)를 강조하고 있다. 모두가 '인공지능 3대 강국'의 꿈을 위해 전력투구하겠고 야단법석이다.

'인공지능 기본사회', '모두의 인공지능', '한국형 팔란티어', '한국형 인공지능 파운데이션'과 같은 생경하고 의미도 불확실한 목표가 등장한다. 

'AI 전사(戰士)' 1만명을 양성하기 위한 '미래전략부'를 신설하겠다는 후보도 있고 '과학기술 핵심 인재 100만명 양성'을 들먹이는 후보도 있다. 철 지난 '인공지능 교과서'를 들먹이는 수준의 허약한 공약도 있다. 어쨌든 '인공지능'이 조기 대선의 과학기술 이슈를 점령해 버린 것은 사실이다.

인공지능에 쏟아붓겠다는 투자 규모가 엄청나다. 민·관이 힘을 합쳐서 100조원을 투자하겠다는 후보도 있고 5년 동안 인공지능 인프라와 생태계 구축에 200조원을 들먹이는 통 큰 후보도 있다. 

한 해에 과학기술 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정부 예산이 30조원이고 민간 투자가 70조원인 현실에서는 쉽게 실현하기 어려운 천문학적 규모다. 그러나 재원 마련 방안에 대해서는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다. 인공지능 공약에 대한 깊은 고민의 흔적도 찾을 수 없다.

대선 후보에게 과학기술은 어차피 당장 책임져야 할 이유가 없는 '화려한 미래의 꿈'이다. 단순히 투자를 확대하고 인재를 양성한다는 식의 '선진국 추격형 속 빈 공약'으로는 더 이상 유권자의 관심을 끌 수 없다.

이제 대선 후보도 21세기의 미래를 전망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엉터리 경제성 분석을 핑계로 멀쩡한 원전을 세워버린 인물을 영입했다고 자랑하는 한심한 후보는 자격미달이다. 

대선 캠프조차 제대로 꾸리지 못한 상황에서 성급하게 내놓은 어설픈 공약을 시시콜콜 평가할 이유도 없다. 그저 후보들이 '과학기술'을 잊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고마울 뿐이다.

● 더욱 멀어져 버린 명예회복의 꿈

과학기술이 다시 국정의 중심에설 것이라고 한껏 들떴던 적이 있었다. 그런데 '데이터 기반의 과학적 국정운영'을 위해서 대통령실에 '과학기술수석'을 두고 과학기술 전문가로 구성하는 '민관합동위원회'를 운영하겠다던 부질없는 '공약'(空約) 탓이었다.

'역사에 남는 과학기술 대통령'을 꿈꾸는 대통령이 과학기술을 직접 챙기겠다는 약속은 사실 무서운 '독약'이었다.

결국 임기도 채우지 못한 윤석열 정부에서 과학자는 소중한 국가연구개발 예산을 나눠 먹고 갈라 먹는 '약탈적 카르텔(떼도둑)'로 추락해 버렸다. 대통령의 추상같은 “예산 원점 재검토” 지시로 순식간에 4조6000억원의 예산이 삭감됐고 연구 현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올해 연구개발 예산을 30조원으로 복원했다고 하지만 연구 현장의 아픈 기억은 고스란히 남아있다. 무작정 확대해 놓은 글로벌 국제협력 사업도 미국 에너지부의 '민감국가' 지정으로 부끄러운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나 버렸다. 과기계의 인사(人事)도 공정·상식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공계에서 그나마 성공했다고 믿었던 의사도 자신들의 이권이나 챙기는 허접한 '악마적 범죄집단'으로 추락해 버렸다. 총선용을 내놓았던 '의대 2000명 증원' 카드가 의학 교육과 의사 양성을 멈춰 세워버렸고 의료 현장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렸다. 

결국 의대 증원은 1년 만에 없던 일이 되고 말았지만 이제는 의사의 악마화로 '교직 붕괴'에 이어 '의료직 붕괴'를 심각하게 걱정해야 하는 형편이다. 5년 전 꼭꼭 숨겨뒀던 '민주화유공자 자녀 특례입학' 꼼수가 공개되면서 어쩔 수 없이 포기했던 '공공의대'의 아픈 기억을 재소환하게 만드는 관심도 몹시 불쾌하다.

조기 대선에 나선 후보의 공약이나 발언에서 과학자와 의사의 안타까운 현실에 대한 관심은 찾아볼 수 없다. 모든 후보가 지난 2년 동안 과학기술계가 겪었던 아픔과 고통은 외면하고 있고 과학기술을 여전히 경제발전의 도구로만 인식하고 있다.

지난 4월 21일 '과학의 날' 기념식에서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과학자와 의사의 명예회복은 앞으로도 아득한 꿈으로 남겨지게 될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 대선 공약도 '선진·창조형'으로

민주화 이후 과학기술 정책은 갈팡질팡이었다. 민주화 과정에서 권위주의 시대의 '과학기술입국'에 대한 관심은 퇴색해 버렸다. 과학기술이 정권이 아니라 국민을 위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노력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대통령의 과학기술에 대한 일방적인 관심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더욱 신경을 썼을 뿐이다. 결국 문민정부가 '가(假)TO'를 빌미로 밀어붙였던 출연연의 민영화 시도로 과학기술계의 사기는 땅에 떨어져 버렸다. 

전문성과 비전을 신뢰할 수 없는 폴리페서로 채워진 대선 캠프가 일상화되면서 말초적인 사회적 관심을 자극하는 겉으로만 화려한 과학기술 정책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절망적이었다. 국민의 정부가 불러일으킨 대학·출연연의 성급한 '창업 열풍'은 5년 단명(短命)으로 끝나고 말았다. 

투명성이 턱없이 부족하고 연구자에 대한 보호막이 충분하지 않은 사회에서 무분별한 창업으로 범죄의 덫에 걸려버린 연구자가 적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의 '과학기술중심사회'는 황우석 사태로 빛이 바래버렸고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도 부실한 4대강 사업으로 얼룩지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탈석탄'과 '사람을 위한 과학기술'도 명백한 패착이었다.

이제 과학기술계도 달라져야 한다. 대통령의 개인적인 관심으로 성장하는 과학기술은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확실한 인식이 필요하다. 밀실에서 만들어지는 포퓰리즘적 과학기술도 무의미한 것이다.

녹색성장·창조경제·탈원전에서 뼈아픈 교훈을 얻어야 한다. 박근혜 정부에서 확실하게 경험했듯이 대통령이 이공계 출신이라고 사정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턱없이 부족한 정치인에 대한 섣부른 기대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

과학자에게는 '추격형'에서 벗어나 '선진·창조형' 연구개발을 요구하면서 정작 과학기술 정책과 행정은 여전히 선진국을 흉내 내는 추격형을 강조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도 확실하게 거부해야 한다.

인공지능 공약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이 인공지능에서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우리도 따라가야 한다는 추격형 인식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다는 뜻이다.

'한국형 인공지능'을 개발해서 '인공지능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는 공약이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큰 의미를 찾기 어려운 억지다. 우리 정서에 맞는 답을 제공하는 능력이 인공지능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중국이 개발했다는 딥시크처럼 오픈소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응용 기술을 개발하는 것이 훨씬 더 현실적인 대안일 수 있다.

이제 과학기술이 정부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바로 세워야 한다. 비록 뚜렷한 성과를 찾아내기는 어렵지만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강조했던 '과학과 진실'(Science and Truth)처럼 국민이 공감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목표를 찾아내야 한다.

현대 과학을 가능하게 만들어준 '과학정신'(scientific spirit)의 진정한 가치를 국민에게 알려주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사회문제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도 필요하다. 대단한 노력이 필요한 일도 아니다. 리튬이온 배터리의 '내부 합선'의 가능성을 걱정하는 국과수의 정밀 감식 결과를 무시하고 '외부 합선'에 의한 화재를 방지하기 위해 보조배터리를 '비닐지퍼백'에 넣어서 기내에 반입하라는 국토교통부의 황당한 지침을 지적하는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다. 

연소 효율이 매우 낮은 암모니아를 혼합해서 연소시키는 '혼소'(混燒) 기술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태양광·풍력의 사회적 비용에 빈번한 화재를 감수해야 하는 에너지저장치(ESS) 구축·유지 비용도 포함해야 한다는 상식도 더 이상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과학자를 양성하는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물론 과학자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하다. 아무도 거부할 수 없는 진실이다. 그러나 과학 현장에서 필요한 기능적 능력만 갖춘 '전사'(戰士, warrior)를 넘어서 현대 과학과 기술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폭넓게 이해하는 '기사'(騎士, knight)를 양성하는 진정한 융합 교육을 강조해야 한다.

※필자 소개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2012년 대한화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과학기술, 교육, 에너지, 환경, 보건위생 등 사회 문제에 관한 칼럼과 논문 3200여 편을 발표했다. 《같기도 하고, 아니 같기도 하고》 《거의 모든 것의 역사》《우리 몸을 만드는 원자의 역사》《질병의 연금술》《지금 과학》을 번역했고 주요 저서로 《이덕환의 과학세상》이 있다.

[이덕환 서강대학교 화학·과학커뮤니케이션 명예교수 duckhwan@sogang.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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