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성동, 비출입기자, 젠더 폭력, 그리고 질문들
[이슬기의 미다시]
[미디어오늘 이슬기 프리랜서 기자]
국민의힘의 '입틀막'이 점입가경이다. 대선 경선에 출마한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정책 비전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뉴스타파 기자 질문에 “됐어. 답 안 해”라는 반말로 대꾸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 날 오마이뉴스 기자의 질문에는 “우리한테 적대적인 언론은 맨 마지막에 질문하세요”라며 호통을 쳤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국회의원회관 토론회를 마치고 나오다 이명주 뉴스타파 기자가 “국민의힘이 '국민께 죄송하다',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했는데 무엇이 죄송한 것이냐”고 묻자 “누구한테 취재하러 온 것이냐”, “(질문)하시면 안 된다”더니 이 기자의 손목을 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갔다. 윤석열 정권 내내 이어지던 '입틀막'은 파면 후 국민의힘에서도 여전한 모양새다.
특히나 권 원내대표의 행태는 젠더 폭력이라는 점에서 더욱 문제적이다. “남성 기자면 손목을 잡았겠나”는 반박은 대꾸할 틈이 없이 간명하다. 그는 입장문에서 “뉴스타파 기자의 행위는 취재를 빙자한 신체적 위협이자 강압적 접근”이라 되레 항변했다. 기자들이 자신의 동선을 따라 질문하는 일이 5선 국회의원인 그에게 일상이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다만 '뉴스타파 기자'라는 점이 그를 '긁었고', 하필 여성이어서 손목을 움켜잡고 수십 미터를 끌고 다녔다는 게 훨씬 수긍이 가는 '권성동 읽기'일 것이다.
원래가 국회와 정당은, 여성 기자들이 젠더 기반 폭력에의 고충을 더욱 토로하는 출입처다. 구조적 성차별이 엄존하는 사회에서, 게다가 권력을 쥔 남성 정치인들이 즐비한 남초 집단을 취재하는 것이 여성 기자로서 얼마나 힘든 일이겠는가. 남성 정치인에 의한 신체적·언어적 성폭력을 경험했으나 묵과했다는 이야기나, 술자리서 피해야 할 남성 정치인의 이름도 심심찮게 돈다.
그러나 그들의 입을 부단히 좇아야 하는 처지에, 한 번 관계가 틀어지면 후일의 기사를 도모할 수가 없다. 소속을 밝히며 인사하는 자리에서, “내가 거기 누구 누구 잘 안다”며 선배 기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정치인들에게선 '까딱하면 네 기사 하나쯤 뭉갤 수 있다'는 호기로움마저 엿보인다. 이런 식의 '출입기자 길들이기' 속 젊은 여성 기자는 피라미드의 가장 하층부를 이루는 존재다.
그 흔한 유착 관계를 무너뜨리는 곳이 뉴스타파 같은 '비출입' 언론사다. 사실 지금에 와서야 레거시 미디어에 견줘 '유튜버'가 일종의 멸칭처럼 불리지만, 유튜버 또한 프리랜서 기자이자 시민의 한 사람이라 점에서 정치인에게 질문을 못 할 이유는 없다. 권력 상층부에 있는 이들에게 정책 집행의 진의를 묻는 것은, 시민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더군다나 뉴스타파는 5만명이 넘는 시민들 후원으로 운영되는 언론사인 한편, 내란 국면에서 굵직한 보도들을 연달아 해온 곳이다. 게다가 당시 이 기자는 국회 의원회관 방문증과 함께 임시 취재증을 발급받아 옷에 달고 있었다.
지난 11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의 대선 경선 출마 선언 당시 홍여진 뉴스타파 기자가 했던 송곳 같은 질문도, 비출입사여서 가능한 질문이었을지 모른다. 홍 기자는 “계엄군이 국회의사당을 진입할 때 시민들이 계엄군과 군용차량을 막아섰지만, 나 의원은 그 역할을 하지 못했다”며 “국회의원에게 부여된 권한을 행사하지 않고 탄핵소추안 투표에 불참했는데 책임을 인정하고 사과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고 물었다. 의회주의자 출신 정치인이 차기 대통령이 돼야 한다는 나 의원의 출마 명분을 정면으로 뒤집는 질문이었다. 이에 나 의원은 “의견은 다양하니까 이런 정도로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 '이런 정도로' 라는 말이 중요하다. 정치인 나경원의 자가당착과 책임회피를 고스란히 보여주기 때문이다. 기자의 기사는 이렇게 세상을 향한 '직설'이 아니라 '보여주기'다.
기자의 질문에 격한 반응을 쏟아내는 것은 그 질문이 두렵다는 방증이다. 거기다 '지라시'라는 지칭은, 자신에게 비판적인 언론이라는 항변에 더해 출입사가 아니어서 자신의 입김이 닿기 어려운 곳이라는 의미에 가까워 보인다. 그렇다면 그 말은 오히려 상찬이다. 다만 언론에 막돼먹은 행동을 해도 된다는 감각은, 그것에도 아랑곳 않을 혹은 더욱 환호할 지지층을 예비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안 그래도 '적대 언론'을 몰아내는 홍 전 시장의 행동을 두고 현장에서 “옳소”라는 반응도 지지자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한다.
정치인들이 만드는 '반 언론' 레토릭에는 출입·비출입사 할 것 없이 한 목소리로 항의해야 한다. 또한 권 원내대표의 사례를 계기로, 정치권의 여성 기자를 향한 젠더 폭력에 함께 대항할 방안도 모색했으면 한다. 궁극적으로는 언론계의 오랜 출입처 문화도 되짚어봐야 한다. 해야 할 질문을 '관계'를 생각해 거둬들이진 않았는지, 미디어 수용자보다 출입처를 의식한 보도를 하진 않았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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