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벼락 소리 나더니…" 빨대처럼 꺾인 풍력발전기 미스터리
“새벽에 엄청난 굉음이 들리더니 산에 있던 풍력 발전기가 엿가락처럼 휘어 쓰러졌다.”
22일 오전 전남 화순군 도암면 대비리에 사는 이모(77·여)씨가 한 말이다. 이씨는 전날 새벽 마을 인근 화학산에 설치된 풍력발전기가 쓰러진 현장을 떠올리며 “불안해서 못 살겠다”고 말했다. 화순군 화학산에서는 전날 오전 2시 50분쯤 높이 127m의 풍력발전기 한 대가 전도됐다.
이씨는 “태풍 때도 멀쩡하던 발전기가 어떻게 한순간에 꺾일 수가 있느냐”며 “산에 쓰러진 발전기를 보고 있으면 이사라도 가야 하나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씨가 사는 대비리는 화학산과 직선거리로 2㎞가량 떨어져 있다. 마을 주민들은 “새벽에 날벼락이 치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고 입을 모았다. “사고가 어두운 새벽 시간에 발생해 (발전기가) 보이지는 않았지만 분명 산에서 큰일이 벌어진 것 같았다”라고도 했다.
주민들은 거대한 철제 구조물이 한순간에 휘었다는 점에서 2차 사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풍력발전기 지지대(타워) 제작단계에서의 결함이나 시공단계에서 이음새 등의 구조적인 결함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발전기 지지대에 쓰인 철재의 두께가 부족했던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일부 주민들은 “사고가 나기 며칠 전부터 발전기의 굉음이 유난히 크게 들리더니 빨대처럼 꺾였다”고 전했다.
화학산에는 2023년 6월 30일 해발 616m 산 정상에 4.7㎽급 풍력발전기(높이 127m) 11기가 준공됐다. 이중 11번째 타워 철제 지지대의 하단 30m 부분이 엿가락처럼 휘면서 쓰러졌다.
풍력발전기는 바람을 받아 돌면서 전기를 생산하는 블레이드와 로터, 지지대 등 크게 3개 부분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부러진 원기둥 형태의 지지대는 지름 4.7m의 강철재질이며, 내부에는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다.
풍력발전기가 갑자기 쓰러지게 된 원인에도 관심이 쏠린다. 화순군과 시공사 등은 사고 조사에 착수했으나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데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풍력발전기 부품을 만든 독일 지멘스 가메사의 한국지사 관계자들도 현장을 조사 중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사고 현장 인근의 기상 관측 지점인 화순군 이양면의 지난 21일 오전 2시 날씨는 기온 14.8도, 10분 평균 바람 1.7㎧, 순간풍속 2㎧로 비교적 잔잔한 날씨였다.
화순군은 사고 후 발전소 접근을 통제하고 쓰러진 풍력발전기를 비롯해 4대의 가동을 중지시켰다. 전도된 발전기를 철거하는 데는 1~2개월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화순군 관계자는 “발전소 운영사와 발전기 제조사 등 관계자들이 현장을 점검하면서 정확한 원인과 구체적인 경위를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화순=최경호 기자 choi.kyeong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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