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권력자를 두려워하는가
[황광선 기자]
"권력자는 무섭고, 시민은 두렵지 않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통령, 장관, 판사, 경찰처럼 '권력'을 상징하는 사람들 앞에 서면 몸이 얼어붙고, 말조차 조심하게 된다. 민주적 질서를 위해 권력자에 대한 '순응(followership)'은 여전히 미덕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들은 대부분 우리가 선출했거나 우리의 세금으로 일하는 공복이다. 그렇다면 정말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권력자인가, 아니면 그런 권력자를 뽑아놓고 감시하지 않는 시민, 바로 우리 자신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심리 현상을 넘어 정치철학, 심리학, 행정학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 그리고 이 질문은 민주주의가 직면한 핵심 위기를 드러내는 거울이기도 하다.
1960년대 초, 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인간이 얼마나 쉽게 권력에 복종하는지를 실험을 통해 보여주었다. 실험 참가자들은 타인이 문제를 틀릴 때마다 점점 강한 전기 충격을 가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최고 450볼트에 이르는 이 실험에서, 참가자의 약 65%는 타인이 비명을 지르는 상황에서도 끝까지 충격을 가했다(Haslam & Reicher, 2017). 참가자들이 스스로 내린 판단이라기보다, 단지 권력자의 지시에 따라 행동한 결과였다.
밀그램은 이를 '에이전트 상태(agentic state)'라고 불렀다. 개인이 자신의 판단과 책임을 유보한 채, 자신을 단지 타인의 도구로 인식하고 행동하는 심리 상태라는 것이다(Milgram, 1974). 이후 이 실험은 교과서와 대중매체를 통해 반복되며, "사람은 권력자 앞에 서면 도덕성을 잃는다"는 통념을 강화시켰다 (Griggs & Whitehead, 2015).
하지만 이 실험에 대한 해석은 시간이 지나며 변했다. 최근에는 밀그램이 남긴 방대한 기록과 참여자 자료들을 통해, 단순한 권력 복종이 아니라 복잡한 심리적 몰입이 있었음을 밝혀냈다(Gibson, 2013; Perry, 2013). 심리학자 알렉산더 해슬람(S. Alexander Haslam)과 스티븐 라이커(Stephen D. Reicher)는 이를 '몰입형 추종(engaged followership)'이라고 불렀다(Haslam & Reicher, 2017). 실험 참가자들이 단순히 압박을 받아 복종한 것이 아니라, 실험이 과학 발전에 기여한다는 목표에 스스로 동의하고, 그 목적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실험자는 실험을 멈추려는 참가자에게 네 가지의 '프로드(prods)'를 순차적으로 제시했다. 가장 강압적인 마지막 프로드—"당신은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계속해야 합니다"—는 오히려 실험을 중단하게 만드는 경향이 강했다(Gibson, 2019). 반면, "이 실험은 중요합니다"처럼 대의를 강조하는 표현은 실험을 지속하게 하는 데 더 효과적이었다(Burger, Girgis, & Manning, 2011). 이는 복종이 단순한 압력 때문만이 아니라, 의미에 대한 내적 동의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시사한다.
실험 후 참가자들의 반응도 주목할 만하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되어 기쁘다"는 식의 반응이 다수였고, 자신을 피해자가 아니라 협력자로 인식한 참가자들이 많았다. 해슬람과 동료들이 예일대에 보관된 아카이브를 분석한 결과, 많은 참가자들이 실험에 협조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다는 사실이 드러났다(Haslam et al., 2015). 더 최근의 실험에서는 참가자들이 가상의 '벌레 죽이기' 실험에 협력한 후, 오히려 자신의 주체성과 책임감을 더 강하게 인식했다는 결과도 확인되었다(Götz et al., 2023). 복종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압도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옳은 일을 한다고 믿고 있었던 것이다.
심리학자 스티븐 깁슨(Stephen Gibson)은 복종이 반드시 명령에 대한 직접적인 반응일 필요는 없으며, 상황에 내재된 규범과 기대에 따르는 순응도 복종의 한 형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Gibson, 2019). 철학자 라파엘 쿤츨러(Raphael Künstler)는 실험 참가자들이 권력자가 아닌 사전에 제시된 규칙에 복종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규칙을 합리적이라 판단하고, 자신의 판단에 따라 이를 성실히 적용한 것이었다(Künstler, 2025).
이러한 해석은 역사적 현실과도 이어진다. 역사학자 이안 커쇼(Ian Kershaw)는 나치 독일 시절 많은 관료들이 상부의 명령을 수동적으로 따른 것이 아니라, "총통이 원할 법한 방향으로 알아서 행동했다"고 분석했다(Kershaw, 2000). 그들은 명령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대의를 수행한다고 믿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행동했다. 우리는 종종 가해자들이 "나는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을 듣지만, 그 이면에는 자발적 선택과 신념의 복종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여전히 권력자 앞에서 주눅이 들까.
현대 국가는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y)'이다. 시민이라는 개념은 추상적이고 분산되어 있지만, 권력자는 눈앞에 실재한다. TV에 등장하고, 명령을 내리고, 정책을 발표하는 존재다. 선거 이후 시민의 권한은 실감되지 않지만, 권력자는 법과 제도 속에서 실재하고 작동한다. 시민은 개념 속에 머무르지만, 권력자는 현실을 움직인다.
이러한 권력에 대한 공포는 단지 개인의 심리가 아니라, 권위주의 통치를 경험한 사회의 문화적 유산이다. 오랫동안 권력에 저항하면 삶이 무너졌던 시대를 겪은 이들에게 권력은 두려움의 대상이다. 민주화 이후에도 우리는 시민이 아닌 신하처럼 행동하도록 학습되어 왔고, 국가는 여전히 꾸짖는 아버지처럼 받아들여진다. 이 속에서는 권력을 감시하는 감각이 성장하기 어렵고, 변화는 위에서만 가능하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행정학에서도 이 문제는 중요하게 다뤄진다. 민주주의 체제에서는 행정가는 시민에게 책임을 져야 하지만, 현실에서는 상관, 정당, 상위 관료에게 더 큰 책임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이 구조에서는 시민의 영향력이 약화되고, 권력자는 제도를 통해 군림하게 된다. 정치와 행정이 포퓰리즘이나 엘리트주의로 기울수록 시민은 더 멀어지고, 권력은 위로만 응시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첫째로 시민 교육이 중요하다.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Martha C. Nussbaum)은 시민이 공공 문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고 참여할 수 있어야 민주주의가 지속된다고 보았다. 권력자는 감시의 대상이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실감하는 실천 중심의 교육이 필요하다.
둘째로 제도적 감시 장치가 실제로 작동해야 한다. 행정학자 마크 보번스(Mark Bovens)는 시민이 행정가를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공공 책무(accountability)가 실현된다고 강조한다. 언론, 감사, 정보공개, 시민 참여 제도가 형식에 그치지 않고 실질로 작동해야 한다.
셋째로 시민 간의 연대와 네트워크가 중요하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넘(Robert D. Putnam)은 시민사회가 강한 곳일수록 수평적 감시와 참여가 잘 이루어진다고 본다. 시민이 고립되지 않고 서로 연결되어 있을 때, 권력자는 절대적 존재가 아니라 공공을 위한 봉사자로 자리 잡는다.
넷째로 권력자의 인간화도 필요하다. 심리학자 프리츠 하이더(Fritz Heider)와 마리안느 서밀(Marienne Simmel)은 얼굴 없는 대상일수록 인간은 그 존재를 위협적으로 느끼게 된다고 말한다. 권력자가 소통하고 설명하며 시민과 거리를 좁힐수록 공포는 줄어든다. 권력자는 명령자가 아니라 설명하고 설득하는 공직자여야 한다.
우리가 진짜 두려워해야 할 대상은 누구인가. 권력자인가, 아니면 그 권력자를 뽑아놓고도 감시하지 않는 우리 자신인가. 민주주의는 권위는 인정하되, 권력자를 무서워하지 않아도 되는 체제다.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는 시민이 스스로 권력을 감시하고 통제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우리는 여러 번의 정권에서 수없이 많은 '몰입형 추종'을 봐왔다. 대통령의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측면에서 단결도 필요하고 리더가 대표하는 '가치와 대의'에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 써클(circle) 안에서 몰입한 나머지 "따지지도 묻지도" 않는 추종을 경계한다. 민주적 정당성이 민주주의는 아니다. 권력자도 오류투성이인 '사람'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법치주의로 민주주의를 보강하는 것이 옳다. 때로는 자신의 양심과 성찰에, 역사가 말해왔던 삶의 기본 원칙들에 귀를 기울였으면 한다. 우리는 12.3 계엄 명령에 순간 생각하고, 성찰하고, 주변을 둘러보았던 공직자들을 기억한다.
곧 대통령 선거다. 대통령실에 들어가는 참모와 공직자들, 그리고 새로 임명될 장관들은 누구를 두려워할 것인가. 시민인가, 아니면 권력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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