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솟는 일본 쌀값, 한국 쌀도 불안하다
“잎이 파랗게 올라오면서 이미 다 팔렸어요.”
일본 지바현 이스미시의 한 비닐하우스 앞에서 후지와라 쇼이치 농부가 2025년 3월6일 엔티브이(NTV)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8~9월이 돼야 나오는 2025년산 햅쌀을 두고 도시락업체, 식당 등에서 주문이 쇄도해 ‘아오타가이’(青田買い), 즉 입도선매가 마무리됐는 얘기다. 모내기도 하기 전, 못자리판에 모가 고개를 든 것만 보고도 이렇게 ‘아오타가이’ 경쟁이 달아오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한다. 2024년 8월부터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쌀 부족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모내기도 하기 전에 ‘입도선매’ 경쟁
일본의 쌀 부족 사태는 한국 농업정책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쌀 소비 감소’를 명분으로 보조금 지원 정책 등을 활용해 ‘벼 재배면적 감축’을 강력히 추진하는 점은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어쩌면 일본의 현재가 한국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
일본의 쌀값은 사상 최고치를 거푸 갈아치우고 있다. 일본 농림수산성이 집계한 2025년 4월 둘째 주 ‘전국 슈퍼마켓 쌀 5㎏ 평균 가격’은 4214엔(약 4만2천원)으로, 14주 연속 올랐고, 한 해 전(2068엔)보다 2배 이상 올랐다. 쌀 수입도 늘고 있다. 2024년 한 해 동안 368t에 불과했던 민간 쌀 수입은 2025년 1월 한 달 동안만 523t으로 크게 늘었다. 미국산 칼로스 쌀 1㎏ 매입 가격은 150엔 정도인데 여기에 관세(341엔)를 더해도 일본 쌀보다 저렴하다. 한국 쌀 쇼핑이 한국에 오는 일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는 보도도 나온다. 쿠팡에서 ‘2024년산 농협 강화섬쌀 5㎏’은 1만6900원(4월17일)으로 약 40%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3월 말 비축미 21만t을 방출(2월14일 발표)한 데 이어 4월9일 10만t을 추가로 시장에 풀겠다고 발표했다. 쌀 사태가 불거지고 7개월 만에야 쌀이 부족하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기로 한 것이다. 그런데도 “(이번 쌀 부족 사태는) 극히 변칙적인 상황”(4월14일 에토 다쿠 농림수산성 장관이 유통 관계자들과 만나 한 말)이라며 쌀 감산 정책을 고수할 뜻을 내비치고 있다. “쌀 소동(부족 사태)이 벌어진 가장 큰 요인은 쌀 생산량을 너무 많이 줄였기 때문인데 정부는 쌀 정책에 실패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바로잡으려는 시도도 하지 않고 있어요. 현재 쌀이 과잉이라는 정부의 인식 자체가 잘못됐어요. 이렇게 쌀이 부족하고 가격이 높은데도 정부는 수요가 연간 약 10만t씩 줄어든다며 농가에 경작을 줄이라고 합니다.” 스즈키 노부히로 도쿄대 농학부 교수가 2월3일 마이니치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이번 쌀 부족 사태는 일본 정부의 ‘쌀 감산 정책이 틀렸을 리 없다’는 이상한 확신과 고집 때문에 복잡하게 꼬여왔다. 이전부터 경고음이 울렸지만 일본 정부는 움직이지 않았다. 2024년 7월31일 ‘6월 기준 민간 쌀 재고량’이 156만t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2023년산 쌀 수요(전년 7월부터 당해 6월까지)는 705만t으로, 연초 발표된 예측치(680만t)보다 25만t가량 높게 나타났다. 2024년 8월26일 오사카부에서 “슈퍼에 쌀이 없다”며 비축미 방출을 공개적으로 요청했지만, 농림수산성은 “전국적으로 보면 수요·공급이 타이트하진 않다”며 거부했다. 일본 중앙정부는 △난카이 해곡 대지진 우려 발표(8월) △관광객 쌀 소비 증가 △일부 도·소매상인들의 사재기 등 일시적인 원인 때문이라며 “2024년산 쌀이 시장에 충분히 풀리면 쌀값이 안정될 것”이라고 밝혀왔다. 2025년 1월, 2024년산 쌀 수요 예측치도 통상적인 감소 추세에 따라 674만t으로 제시했다.
정부발 음모론에 수요 예측도 엉터리
하지만 전년 대비 18만t 늘어난 679만t으로 집계된 2024년산 쌀 출하 이후 쌀값 상승세는 되레 더 가팔라졌다. 2월3일 에토 다쿠 농림수산성 장관은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나와 “쌀이 어딘가에 (몰래) 쌓여지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사재기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이후 일본 정부는 4천t 이상 도매·집하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하던 ‘민간 쌀 재고량 조사’를 4천t 미만 업체로 확대해 조사했다. 하지만 이들 중·소규모 업체(전년 대비 재고량 5956t 감소)에서도 ‘사라진 쌀’은 찾을 수 없었다.(3월31일 발표) 사재기 의혹은 일본 정부발 음모론으로 밝혀졌고, 정부의 쌀 수요 예측에 대한 신뢰도 크게 떨어졌다.
일부에선 이번 쌀 사태를 1993년 쌀 파동과 견주기도 한다. 하지만 당시는 이상저온현상으로 전년 대비 생산량이 25.9%나 급감했고, 쌀 작황지수(평년 대비 수확량 지수)도 74점(100점 중)이었다. 반면 2024년엔 생산량이 전년 대비 1.4% 감소(작황지수 101)했을 뿐이다.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을 빼놓고는 설명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2020년부터 코로나19 여파로 외식이 줄어든 것 등의 이유로 쌀 수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당시 남는 쌀이 많았고, 농민단체들이 과잉재고에 대한 정부 매입을 요구했지만 정부는 거부했습니다. 그걸 이유로 2022년산부터는 쌀 생산을 줄이라고 심하게 압박했어요. 그 결과가 지금의 사태입니다. 쌀 부족·가격폭등의 주범은 정부입니다.” 일본 농민단체인 노민렌(농민운동전국연합회) 산하 ‘후루사토네트워크’의 유카와 요시로 사무총장이 한겨레21과 한 이메일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엄청나 쌀생산자협회 정책위원장은 “쌀은 기본적으로 가격에 상관없이 반드시 소비량이 크게 변하지 않는 비탄력적인 상품이라서 수요·공급이 1~2%만 변해도 가격이 폭락, 급등할 수 있다. 쌀을 단순한 소비재가 아닌 비상시 필수 전략 물자로 보고 안정적인 공급을 하도록 지원해야 하는 이유”라며 “일본 정부가 수요·공급을 너무나 타이트하게 맞추려 했던 것이 2024~2025년 일본 쌀 부족 사태의 원인이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정부가 일본 감산 정책을 답습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의 논 감소 수준은 일본을 이미 웃돈다. 최근 10년간(2014~2024년) 줄어든 논 면적은 일본이 14.6%(21만5천㏊), 한국이 18.5%(17만2천㏊)다. 그런데 오히려 일본보다 더 큰 규모의 감산까지 계획하고 있다. 2024년 12월 초 윤석열 정부는 전체 벼 재배면적의 11.5%에 달하는 ‘8만㏊ 강제 감축’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4월1일 박범수 농림축산식품부 차관은 전국 16개 시·도 농정국장과 쌀 생산자 단체 등을 불러 모은 자리에서 “올해 벼 재배면적 감축 실적이 부진한 지자체에 대해서는 지원을 제한할 계획”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국 정부, 일본보다 더 큰 규모 ‘감산’ 계획
“지금 농촌에서는 ‘농종’(農終·농업은 끝났다)이라는 말이 오가고 있어요. 농가를 지키면서 소비자와 연계해 먹거리와 농업과 생명을 소중히 하는 일본으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3월30일 도쿄 시내에 ‘레이와 햐쿠쇼잇키(百姓一揆·농민봉기)’가 주최한 집회에 농민 32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간노 요시히데(75) 농부가 아사히신문에 한 말이다.
2022년 한 해 동안 일본 벼 재배농가의 농업소득(농업수익에서 경영비를 뺀 순이익)은 1만엔(10만원)으로 처참한 수준이다. 쌀값은 낮은데 비료·농약값은 너무 높기 때문이다. 2023년 9만7천엔(97만원)으로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터무니없이 낮은 수익이다. 농가의 1년 노동시간이 1천 시간 정도인 점을 고려하면 시급은 그래봐야 10엔(100원)에서 97엔(970원)이 된 것에 불과하다. 일본 최저시급(2025년 최저시급 1055엔) 등을 고려하면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상황이 이러니 농민들이 농사를 포기해 버려진 농지도 해마다 1만㏊ 이상 생겨나고 있다. “일본 농업은 일본 정부에 의해 파괴될 위기에 처했다. (…) ‘쌀은 취미로 만들어라! 만족 못해? 그럼 그만둬.’ 시급 10엔이 의미하는 바다.”(‘레이와 햐쿠쇼잇키’ 소개글 중)
한국 농촌 실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통계청 ‘2024년산 논벼(쌀) 생산비 조사 결과’를 보면, 논 300평당 연간 순이익은 27만584원에 불과하다. 수십 년간 지속해온 쌀 감산 정책이 벼 재배면적 감축에 그치지 않고 농가 소득 감소 및 농업기반 붕괴로, 그에 따른 농촌 황폐화로 이어져온 건 한국과 일본이 다르지 않다. “농업정책이 지속 가능한 농업생산을 지원하기보다 과잉생산 방지나 예산 절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 때문”(엄청나 정책위원장)이다. 쌀값이 상승했음에도 일본 농민들이 ‘농가 소득 보장’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선 이유다. 백혜숙 지속가능국민밥상포럼 대표는 “농산물 가격을 정책적으로 낮게 가져가려면 직불금 등으로 생산자의 소득을 보장하고, 저소득층 등에 식품 바우처 등을 지급해 보편적인 먹을 권리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농산물 수요를 늘려 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확보해야 한다. 한국·일본 모두 제대로 안 되고 있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옛날에는 쌀농사 지어서 자식들 대학도 보내고 했는데, 지금은 대농들도 어림없어요. 물가가 얼마나 많이 올랐는데, 쌀값은 10년째 그대로잖아요. 계속 서리를 맞는데 농사지으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다 도망쳐버리지.” 1990년 가톨릭농민회 부회장을 지낸 최성호(83) 구례우리밀가공공장 대표가 말했다. 최근 10년간(2010~2020년) 일본의 농가인구는 650만 명에서 348만9천 명으로 46.3% 감소했고, 이 기간 한국 농가인구도 24%(306만→231만 명) 줄었다.
“1970년부터 일본이 추진한 감반(減反·벼 재배면적 축소) 정책으로 일본 농업이 심각하게 무너졌어요. 그동안 법인과 대농들이 일본 농업을 떠받쳐왔다면 그것도 이제 한계에 왔고, 전반적으로 농업인구가 고령화돼 지속 가능성이 없다는 말이 나오고 있죠. 현재 쌀값이나 직불금 수준으로는 생산 보전이 안 되니 농사짓는 거보다 은행에 돈 넣어두는 게 낫다는 말까지 나와요. 그런데 이런 상황은 우리나라도 똑같습니다. 곧 우리에게도 닥친다는 거죠.” 농촌·농업 연구자인 송동흠 우리밀세상을여는사람들 대표가 설명했다.
이에 대해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하필 우리가 벼 재배면적 감축을 하려고 할 때 일본에서 쌀 사태가 발생해 우려가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농가 소득 향상을 위해서라도 벼 재배면적 감축은 꼭 필요하다”며 “일본 쌀값 급등은 재배면적 감축의 문제라기보다 수급 관리의 문제라고 보고 있다. 일본과 같은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일본 똑같은 ‘농촌 황폐화’
정말 벼 재배면적만 줄이면 농민·소비자 모두가 행복해질까. 지난 30년간(1994~2023년) 논 면적은 50만3천㏊(126만7천→76만4천㏊) 감소했다. 같은 기간 농업소득과 이전소득(직불금 등)을 더한 농업 관련 소득은 2배(1413만3천→2833만1천원) 오르는 데 그쳤지만, 최저임금은 1085원에서 9620원으로 8.8배 올랐다. 농가 평균 인구는 68살(2022년 기준)이다. 곡물 자급률은 19.5%(2021~2023년)로 일본(27.6%)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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