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은 마음도 할퀴었다... "불에 탄 나무 보면 그날 떠올라"
[무주신문 이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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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무주 산불을 겪은 부남면 대소마을. 이 마을을 지난 17일 찾아갔다. 멀리 갈색빛과 붉은빛을 띄는 소나무 군락이 보인다. 화재로 인해 죽은 소나무들이다. |
ⓒ 무주신문 |
여느 봄날과 다름없이 마을 앞 금강변에는 바람이 불고, 들녘엔 파릇한 새싹과 꽃들이 얼굴을 내밀었다. 겉보기엔 평온한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대소마을 뒤편 능선 너머로 펼쳐진 소나무 군락은 여전히 그날의 상처를 말하고 있었다.
먼발치에서도 확인되는 갈색빛, 붉은빛으로 변한 나무들은 20여 일 전 밤, 그날의 불씨가 얼마나 거셌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줬다. 그곳엔 여전히 탄 냄새가 남아 있었고, 사람들은 묵묵히 일상을 복구하고 있었다.
대소마을로 가기 전 들른 대티마을, 당시 거동이 불편한 고령의 대소마을 주민 일부는 대티마을회관으로 대피해 행여 집으로 불이 번질 새라 밤새 뜬눈으로 지새우다시피 했다.
한창 밭일을 하던 주영문(74)씨는 대소마을 쪽을 바라보며 "이웃 마을인데, 집 한 채가 다 타고 산도 많이 타 버렸다니까 남의 일 같지가 않다"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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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은 소나무 군락이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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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집은 비만 오면 물이 새서 헐어버리고 겨우 새로 지었는데, 불이 여기(새집)까지 번질까 봐 정말 걱정했지."
김 할머니는 강당에서 이틀을 보낸 뒤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조심스럽게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
"산불 이후엔 불도 잘 못 피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겁나서, TV에서 산불 뉴스만 봐도 깜짝깜짝 놀란다니까..."
마을 어귀에서 만난 문선옥(70)씨. 당시 심각했던 상황을 떠올리며 몸서리부터 쳤다.
"다들 한숨도 못 잤어요. 불이 어디로 튈지 모르니까요. 헬기가 연신 왔다 갔다 하며 물을 뿌렸지만, '여기까지 오는 건 아닐까' 계속 가슴을 졸였죠."
문선옥씨는 "그래도 집은 무사해서 다행"이라며 "직접 겪어보니 크게 불이 난 안동이나 영덕에 있는 주민들이 내 일 같고 더 마음이 쓰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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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무주 산불을 겪은 부남면 대소마을. 이 마을을 지난 17일 찾아가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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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밥이 여기까지 날아왔어요. 멀리서 보면 소나무가 붉게 변했죠. 그게 다 불에 그슬려 죽은 겁니다. 작년만 해도 푸르던 산인데 지금은 붉거나 잿빛이에요."
그는 산불 당시 어머니 김영순씨(90)와 함께 대피했다. 김씨는 고령의 나이에도 대피해야 했던 당시를 "무섭고 어지러웠다"고 회고했다. 유씨는 지금도 산을 마주할 때마다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불에 탄 나무들만 보면 다시 그날이 떠올라요. 언제 또 어디서 산불이 발생할까 봐서요. 매일 그걸 보고 살아야 한다니 마음이 아파요. 그래도 어머니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게 감사할 따름이죠. 이런 산불이 다시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산불 이후의 지원 상황에 대해서는 "비타민 음료와 제주도 과자 몇 개 정도 받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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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북 무주 산불을 겪은 부남면 대소마을. 이 마을을 지난 17일 찾아가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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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차 세 대가 마을 강당 앞에 주차해 놓고는 한참을 움직이지 않더라고요. 불은 집 근처까지 왔는데도요. 우리가 소리 지르면서 항의하니까 그제야 호스를 들고 움직이더군요."
그는 현장 대응뿐 아니라, 지자체의 기민하지 못한 판단과 실행력 부족에도 비판을 이어갔다.
"불길이 닥쳐오는데 '지시받았다'며 손 놓고 있는 걸 보면 기가 막혔죠. 주차하러 온 겁니까, 불 끄러 온 겁니까."
구호물품 지원 체계에 대해서도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비타민제 10병이 고작입니다. 그런데 땅콩파이는 받은 사람도 있고 못 받은 사람도 있어요. 이번 산불로 인해 구호 물품도 기부금도 많이 들어왔다고 들었는데... 70가구면 70가구 몫이 있을 텐데, 누군 받았고 누군 못 받았는지가 아니라 이게 바로 형평성도, 시스템도 없다는 증거예요." 그러면서, A씨는 행정과 관계 당국에 당부했다.
"단편적인 피해자의 입장으로만 보지 말아주세요. 이건 단지 한 번의 산불 이야기가 아닙니다. 다음에도 반복될 수 있는 문제니까요. 시스템이 바뀌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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