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이 바꿔낸 역사... 사람이 품고가야 하는 가치는 뭘까
[노태헌 기자]
간송 전형필(1906~1962)을 혹시 아시는지.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미술관인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을 설립한 인물이다. 그는 일제 강점기 시대임에도 조선에서 손꼽히는 부호 안에 들 정도로 부유했다. 사재를 처분해 대한민국의 문화재를 수집, 보존, 연구하는데 몰두하였고, 과거 동성학원(현 동성 중/고등학교)을 설립하기도 했다.
안동에서 발견된 훈민정음해례본/국보 70호-유네스코 기록유산(해례-설명과 예시 : 훈민정음 창제의 이유와 발성방법, 한문과의 차이 등)을 거액을 주고 입수하여, 현재까지 보존하는데(간송미술관 상시전시) 일조하였다.
일제 시기 일본으로 유출된 문화재들을 되찾아 왔으며, 일제 강점시대와 해방 전후 시대의 혼란기에서 한국 문화재를 본인의 목숨조차 사리지 않고 보존 관리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일본에서 활동하던 영국인 변호사(존 개츠비)로부터 국보급 고려청자와 조선청자와 백자를 흥정 끝에 되사 오기도 했던 간송 전송필은, 평생 결혼을 하지 않은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나는 역사의 의미를 떠올리고 생각할 때마다 한국의 유물을 보관한 장소나 의미 있는 공간을 찾곤 한다. 매화가 흐드러지게 핀 지난 주말, 간송 전형필이 온 생애를 다해 지키고 가꾼 서울 성북동에 위치한 보화각(현 간송미술관)에 직장 후배와 함께 다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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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훈민정음 해례본 (국보 70호) 한글 창제의 이유와 한글의 소리와 발음, 한자와 틀린 차이에 대해 설명한 해례본은 국내에 단 2권이 있다. 간송이 지켜온 1권과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1권. 둘다 국보 70호로 등록되어 있다. |
| ⓒ 노태헌 |
간송미술관이 자리한 서울 성북동은 서울 도심 속에서도 고요함과 품위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동네다. 성북동은 윤동주가 시를 쓰며 거닐었던 동네로도 유명하고, 간송미술관 옆에는 한용운의 심우장(진리를 찾는 장소-한옥)도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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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 밖 전경 얼굴 없는 부처상이 사람들을 마주한다. 나는 과하지 않은 이런 조각에 영묘함을 느낀다. 저 돌길에 손을 잠시 가져다 데어 본다. 시대에서 시대로, 사람에게서 사람으로 연결되는 따뜻한 온기 같은것이 차가운 돌에 담겨져 있다고 생각해 본다. 그 온기를 품고 가는 지혜는 어디에 있을까. |
| ⓒ 노태헌 |
전형필은 일제 강점기라는 시대의 그늘 아래에서 수많은 한국의 국보급 문화재를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며 지켰다. 훈민정음해례본, 신윤복의 미인도, 고려청자와 조선 백자, 수많은 서화등 그가 지킨 것은 단지 유물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과 존엄이기도 하다. 간송이 그의 온생을 통해 보여준 모습은 현대 철학에서 말하는 '의로운 인간'을 찾아가는 본질과 맞닿아 있다.
수집품 통해 엿보는 선비의 정신세계
정치 철학자 존 롤스는 '정의'를 '공정한 협의'로 정의하기도 했고, 에마뉘엘 레비나스와 한나 아렌트는 '타인을 향한 윤리'로서 '정의를 위한 정의'를 강조하기도 했다. 한나 아렌트는 나치 체제의 부역자 아이히만을 보며 "악은 생각하지 않는 데서 온다"라고 말한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독일 점령하 프랑스에서 유대인을 숨긴 농부들, 죽음을 무릅쓰고 문화재를 지켜낸 프랑스 미술관의 큐레이터, 그리고 예술품을 되찾기 위해 총 대신 도면을 들고 전선에 나섰던 미국의 "모뉴먼츠 맨(나치 독일로부터 유럽의 예술작품과 문화재를 보호하고 되찾기 위해 결성된 연합군의 특별조직)"등 이들을 '정의로운 사람들'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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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죽 단아하고 아름답고 고혹적이다. |
| ⓒ 노태헌 |
그래서 그의 수집품은 단순히 수집하는 물건이 아닌, 지나간 시대에 대한 사랑, 그리고 침묵 속에 빛나고 있는 정의와 같은 결이 함께 깃든 예술품으로서 더 가치가 있다. 그는 일제에 부역하지 않았고, 타협하지 않았으며, 침묵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조선의 부채에 시와 그림을 남긴 선조들처럼 자신의 손으로 조용히 그러나 단호하게 민족의 정신을 지켜냈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은 2025년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도 많은 울림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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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상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가치 조상들의 기호를 엿볼 수도 있다. 조심스러운 눈길로 오랫동안 응시해본다. |
| ⓒ 노태헌 |
'꽃을 간직하는 집'이라는 뜻의 보화각에는 지금은 전시를 하고 있진 않지만 국보 12점, 보물 10점, 정선, 김홍도, 신윤복, 김정희 등의 우리 민족의 기라성 같은 선인들의 작품을 소유하고 있다. 한국의 미를 지킨 문화 국부 國父 간송. 하늘 어딘가에서 웃음 지을 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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