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교회에도 이런 목사가 있을까?
[김성호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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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
| ⓒ 파이오니아21 |
개신교 신앙이 어느 때보다 더럽혀진 오늘이다. 정치와 긴밀히 결합한 한국 개신교 교회가 광장을 점령하고 배제와 혐오를 말한 게 벌써 몇 년이나 된 일이다. 이들이 사랑과 은혜를 말한 복음을 내팽개친 채 광장에서 쏟아낸 혐오 섞인 발언을 듣고 있자면 신앙이 무엇이고 교회란 무엇인가를 되묻게 된다.
전광훈에 이어 극우의 중심에서 등장한 손현보는 한국 개신교 유명 목사로 신도수만 수천을 헤아리는 인물이다. 탄핵국면 극우결집의 주역으로 등장하고, 현재도 더불어민주당 대선 유력후보인 이재명에 반대해 정치집회를 이어가겠다 호언하는 그의 행보가 연일 신문지면을 오르내린다. 코로나19 국면에서 대면예배금지조치에 반발하고 차별금지법 제정에도 반대했던 종교인이 이제는 극우의 상징으로 떠오른 모습은 더는 일부의 문제가 아닌 개신교 전체가 자정에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교회와 정치의 관계가 어떠해야 한다고 확정적으로 말하기는 어렵다. 현실에 발을 딛고 서서 신도들의 신앙생활, 나아가 삶의 중심에 영향을 미치는 교회가 현실의 문제를 외면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오랫동안 정치와 신앙을 분리된 영역으로 유지하며 신앙의 자리를 독립적으로 지키는 데 상당한 공을 기울여왔다.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정치의 종교탄압으로부터 최소한의 영역을 지키기 위한 고육책에 가까운 것이었다.
히틀러 암살을 기도한 목회자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사회문제에 개입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마틴 루터 킹으로 대표되는 목사의 사회참여가 인종차별과 민권향상에 결정적 전기를 마련한 사실은 너무나 유명하다. 유명한 금주법이 미국에서 제정되는 데도 페미니즘과 함께 개신교의 입김 또한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에선 오늘날까지도 목사들이 사회적 사안에 입장을 드러내길 꺼리지 않는 풍토가 자리하고 있다. 미국 교회의 문화가 그대로 이식돼 진화하고 변화한 한국 개신교가 오늘과 같이 사회문제에 적극 개입하는 건 차라리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문제는 참여 그 자체가 아니다. 참여하는 방식과 그 아래 깔린 고민이다. 경전인 성경, 예수가 걸은 길과 합치하는 삶을 오늘의 교회가 따르고 있느냐는 점일 테다. 신도들의 삶 가운데서 신앙과 일상의 중심이 돼줘야 할 교회의 목소리가 지나치게 치우치고 왜곡돼 있다면 그건 그저 교회 하나만의 문제일 수는 없는 일이다.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는 토드 코마르니키의 실화바탕 전기영화다. 2차대전 시기 히틀러 암살작전에 참여했다 검거돼 처형된 목사이자 신학자 디트리히 본회퍼(요나스 다슬러 분)의 이야기를 다뤘다.
영화는 어린 본회퍼가 형과 함께 집안을 가로질러 뛰어노는 모습으로 시작한다. 꽤나 길게 잡아낸 오프닝시퀀스는 본회퍼의 어린 시절이 지극히 아름답고 화목했음을 내보인다. 그러나 행복은 그리 길지만은 못하다. 아름다운 만큼 깨어나갈 때의 고통 또한 크다는 것을 알게 한다. 어린시절 철없던 시간이 그러하듯. 형은 입대해 1차대전에 참전하게 되고,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에 본회퍼의 가족은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이후 영화는 독일 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한 청년 본회퍼가 미국 뉴욕으로 유학을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경건하게만 접했던 신앙이 미국에선 전혀 다른 모습으로 이뤄지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는 충격 한편으로 감동을 느낀다. 미국에서 만난 동료 신앙인의 인도로 본회퍼를 재즈를 접한다. 제가 알던 세계가 한층 넓어지는 감격을 음악을 통해 감각적으로 지각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아름다울 수는 없다. 재즈가 있고 소울이 있고 그 모두가 깃든 찬양이 있는 미국 교회는 인종차별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본회퍼는 담임목사의 제안에 따라 친구와 함께 워싱턴으로 건너가 인종차별의 실태를 경험한다. 흑인이라는 이유로 예약된 숙소에서 받아주지 않고 폭력까지 당하는 상황이 충격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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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스틸컷 |
| ⓒ 파이오니아21 |
본회퍼는 촉망받던 젊은 신학자다. 그가 유학한 미국 등지에선 독일로 귀환하지 말고 연구교수로 남아달라는 제안까지 있었을 만큼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본회퍼의 선택은 달랐다. 전란에 휩싸인 조국으로 돌아가서 교회를 중심으로 반나치 운동에 열을 올린다. 영화 속에 인상 깊게 등장하는 마르틴 니묄러의 구속사건 등 교회에 대한 탄압이 점차 심해지는 상황 가운데서도 그는 저항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국과 미국 등으로 망명할 기회가 열려 있음에도 그의 선택은 나치의 심장부에서 저항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에게 행동하지 않는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여기 나치가 독일을 점령하고, 독일인을 타락케 하며, 그로부터 유태인과 타민족을 비탄에 빠뜨리는 것을 그는 좌시할 수 없었다. 그의 신앙은 증오와 미움이 아닌 화합과 사랑이었던 것이다.
그를 이루는 방식은 그저 조용히 제 삶 가운데 침잠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말했다. 악을 대면하고도 침묵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악이라고. 악이 번성한 세상에서 말하지 않는 것은 말하는 것이며 행동하지 않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라 말이다. 그는 제 말대로 살았다. 죽음으로써 죽음을 넘어서는 삶을 얻었다. 예수 그리스도가 그렇듯이.
본회퍼는 여러모로 영화적 매력이 있는 인물이다. 유년시절 1차대전을, 나이가 들어선 2차대전을 겪었다. 영화가 제목으로 선택한 것처럼 스파이며 암살자와 관계된 선택들도 있었다. 그저 신학자며 목사가 아닌, 적극적 저항과 폭력을 불사한 작업까지 진행했던 역동적 인물이다. 그 근간에 가치와 철학, 신앙이 있었다는 사실은 본회퍼란 캐릭터를 더욱 깊이 이해하도록 이끈다.
그러나 영화는 어떠한가. 제목에다 스파이와 암살자란 말을 가져다 쓴 것과 달리 영화 내내 목사며 신앙인으로서의 본회퍼만 등장할 뿐이다. 그의 신앙과 철학조차 줄글로 풀어쓴 대사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스파이며 암살자로서의 이야기를 완전히 배제했다면 인간 내면의 갈등에 천착하든, 신앙과 신념의 관계를 부각하든, 역사물과 장르물의 재미를 살려내든, 어느 하나라도 선택과 집중을 해야만 했다.
하지만 영화는 선택도 집중도 않는 것으로 그 모두를 얻고자 기대한다. 본회퍼였다면 가장 꺼렸을 입벌리고 누워 과일 떨어지길 기다리는 자세를 그 전기영화가 취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민망한 일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나름의 진동을 일으킨단 건 분명한 사실이다. 특히 오늘의 한국사회에 더욱 그렇다. 개신교가 국가와 정치에 종속돼 성경의 본질을 외면하는 상황에 당대 신앙인들은 저항했다. 어떤 순간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걸어간 길과 그가 보인 사랑을 가장 우선하는 선택을 하려 들었다. 기독교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그 고민의 결과로써 행동했다. 그로부터 책임 있는 신앙이란 어떤 것인가를 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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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본회퍼: 목사.스파이.암살자 포스터 |
| ⓒ 파이오니아21 |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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