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2회 만에 승승장구, '멜로 여왕'의 성공적 복귀작
[양형석 기자]
지금은 전체적인 시청률 하락과 플랫폼의 다양화로 KBS를 제외한 지상파 방송국이 수목 드라마를 폐지했지만 2010년대 초반까지 수목 드라마는 지상파 3사의 치열한 경쟁 무대였다. 특히 날씨가 추워지면서 시청자들이 TV앞으로 모이는 시간이 늘어나는 연말이 되면 각 방송국들이 경쟁적으로 기대작들을 수목 드라마로 편성했다. 연말 드라마가 성공하면 다음 해까지 좋은 분위기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지상파 3사의 수목 드라마 경쟁은 2003년 늦가을과 초겨울에도 대단히 치열했다. 먼저 MBC에서는 10월 22일부터 1년 전 <네 멋대로 해라>를 성공으로 이끈 박성수PD가 신예 김강우를 전면에 내세운 수목 드라마 <나는 달린다>를 편성했다. KBS에서도 일주일 후 <여명의 눈동자>와 <모래시계>를 집필했던 송지나 작가의 신작이자 김승우와 유호정, 배두나 주연의 <로즈마리>를 편성하며 맞불을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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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의 계단>은 2003년 연말과 2004년 초 SBS 드라마국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
| ⓒ <천국의 계단> 홈페이지 |
육군 훈련소에서 조교로 군복무를 했던 권상우는 1998년 패션 모델로 데뷔했고 2001년 손예진, 소지섭, 소유진 등 신인 배우들을 대거 발굴한 드라마 <맛있는 청혼>을 통해 연기자로 데뷔했다. 같은 해 학원 무협영화 <화산고>에서 송학림 역을 맡으며 주목 받은 권상우는 2002년 드라마 <지금은 연애중>과 영화 <일단 뛰어>에 출연했고 2003년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를 통해 '라이징 스타'로 떠올랐다.
권상우는 코믹 멜로 영화 <동갑내기 과외하기>에서 고등학교를 2년 유급한 학교짱 김지훈 역을 맡아 큰 사랑을 받았고 <동갑내기 과외하기>는 493만 관객을 동원하며 크게 흥행했다(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 <동갑내기 과외하기>에 출연할 때까지만 해도 '몸짱 스타' 이미지가 강했던 권상우는 2003년 최지우와 함께 출연한 <천국의 계단>을 통해 멜로 배우로도 큰 성공을 거뒀다.
권상우가 평생 한 여자만 바라보는 글로벌 그룹의 외아들 차송주를 연기한 <천국의 계단>은 비극적이고 애틋한 스토리와 권상우의 인기가 더해지며 최고 시청률 42.4%를 기록했다(닐슨코리아 시청률 기준). 권상우는 <천국의 계단>이 한창 인기를 끌던 2004년 1월 유하 감독의 <말죽거리 잔혹사>로 311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영화와 드라마, 액션과 멜로를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는 '대세 스타'로 군림했다.
사실 권상우는 유지태와 조진웅 같은 동갑내기 배우들처럼 뛰어난 연기력을 인정 받는 배우는 아니다. 실제로 권상우는 데뷔 후 20편 가까운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지만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수상한 적은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지난 2015년에 개봉했던 영화 <탐정:더 비기닝>과 2017년에 방영한 드라마 <추리의 여왕>을 흥행으로 이끌었고 <탐정>과 <추리의 여왕>은 2018년 나란히 속편이 개봉 및 방영됐다.
권상우는 지난 2020년에도 상대적으로 크게 주목 받지 못한 코믹 액션영화 <히트맨>을 240만 관객으로 이끌었다. 2022년에는 Wavve 오리지널 드라마 <위기의 X>, 2023년에는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한강>에 출연하며 OTT 드라마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어느덧 지천명에 가까워진 중년 배우가 됐지만 권상우는 지난 1월에 개봉한 <히트맨2>로 254만 관객을 동원하며 다시 한 번 흥행 파워를 입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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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의 계단>에서 차송주가 한정서에게 가르친 부메랑은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명대사를 상징하는 소품이었다. |
| ⓒ SBS 화면 캡처 |
SBS 수목드라마로 방송된 <천국의 계단>은 2003년에서 2004년으로 넘어가는 겨울을 화려하게 장식하며 4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할 정도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사실 냉정하게 보면 <천국의 계단>은 높은 인기만큼 잘 만들어진 소위 '웰메이드 드라마'라고 하긴 힘들다. 하지만 군데군데 보이는 막장 요소와 허술한 완성도는 애절한 스토리와 주인공들의 눈물 연기에 가려 크게 부각되지 않았다.
많은 멜로 드라마가 그렇지만 <천국의 계단>만큼 OST에 크게 의존한 작품도 드물다. 실제로 <천국의 계단>에서는 차송주(권상우 분)와 한정서(최지우 분)가 어딘가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어김없이 레베카 루커의 <아베 마리아>가 흘러 나왔다. 여기에 2002년 12월에 발매됐던 김범수 3집 타이틀곡 <보고 싶다>도 <천국의 계단> OST에 실렸고 슬픈 장면마다 수시로 흘러 나오면서 역주행했다.
<천국의 계단>은 화려한 아역 배우 라인업으로도 유명한 작품이다. 박신혜는 한정서의 아역을 맡으면서 연기자로 데뷔했고 한유라를 연기한 김태희의 동생 이완은 한태화(신현준 분)의 아역으로 나왔다. 특히 박신혜와 이완의 풋풋한 조합이 어울린다는 시청자들의 호평이 많았고 두 배우는 2006년 <천국의 나무>에서 주인공으로 동반 출연했다(하지만 <궁>에 밀려 썩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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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국의 계단>에서 김태희 연기의 절반을 최지우를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장면이었다. |
| ⓒ SBS 화면 캡처 |
김태희는 신인 시절이던 2003년 <천국의 계단>에서 한태화의 동생이자 차송주를 짝사랑하는 한유라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대중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정서에 대한 열등감으로 똘똘 뭉친 유라는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결국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사랑과 야망>,<야망의 세월>,<딸부잣집>,<여인천하> 등 사극과 현대극을 넘나들며 안정된 연기를 보여주던 배우 이휘향은 <천국의 계단>에서 태화·유라 남매의 친모이자 정서의 계모 태미라를 연기했다. 겉으론 착하고 자상한 척 주변을 속이지만 속내는 누구보다 교활하고 이기적인 캐릭터로 시청자들의 미움을 독차지했다. 실제로 이휘향은 <천국의 계단> 이후 여러 작품에서 악역을 도맡아 했다.
1980~90년대 푸근한 이미지의 스타 배우에서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면서 정치인으로 활동했던 정한용은 <천국의 계단>에서 태화·유라 남매의 생부 한필수 역을 맡았다. 거칠고 도박 좋아하는 건달이지만 정서를 학대하고 태화를 없는 자식 취급하는 태미라와 달리 필수는 뺑소니 사고를 낸 유라가 범죄자가 되지 않도록 돕는다. 무능하지만 부성애는 여느 아버지 못지 않았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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