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서 못 푼 소원 풀었다"…韓 첫 브리지 클라이밍 가보니
“아찔한 긴장감…탁 트인 해방감”
‘겁 없는’ 안전요원이 씩씩하게 나아갈 때마다 ‘겁 많은’ 기자는 오금이 저렸다. 안전요원 발걸음에 맞춰 발판이 위아래로 출렁거렸기 때문이다. 기자는 ‘아이고 아이고’ 죽는소리를 내기 바빴다. 손에 쥔 안전줄도 ‘철커덕 철커덕’ 소리가 날 만큼 흔들어 댔다. 기자의 생명줄이 안전고리에 잘 걸려 있는지 확인하려는 몸부림이었다.
온몸을 옥죄던 긴장감도 잠시. 주탑에 도착하자 눈 녹듯 사라졌다. 탁 트인 바다가 눈에 확 들어오면서다. 이순신 장군의 마지막 해전(海戰)인 ‘노량해전’의 무대가 펼쳐져 있었다. 서쪽으로는 경남 하동에서 전남 광양까지, 동쪽으로는 경남 사천까지 훤히 보였다. 운무(雲霧) 낀 산자락은 아름다운 자연 풍광을 자아냈다. 시원한 해풍은 온몸을 적신 식은땀을 날려 보내며 해방감을 줬다.
“국내 첫 브리지 클라이밍”…서울~제주까지 전국서 방문
이번 행사에는 예약한 60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짧은 코스(265m·약 40분 소요) 또는 긴 코스(1100m·약 80분 소요)로 남해대교를 오르내렸다. 서울에서 제주까지 전국 각지에서 참가할 정도로 행사는 관심을 끌었다. 서울에 사는 한 30대 직장인 연차까지 내고 왔다고 한다. 10대 고등학생부터 60대 어르신까지 참가자 연령대도 다양했다.
최고령 참가자 박관호(68·경남 창원시)씨는 “오전 7시 버스를 타고 일찌감치 남해를 찾았다”며 “여기 아니면 못해 볼 경험에 기대가 컸다”고 했다. 이어 “저 높은 곳에서 시퍼런 바다를 내려다보는데, 떨어질 듯해 스릴 넘쳤다”고 했다.
“호주서 못 푼 소원, 남해서 풀었다”
이씨는 “2년 전 호주 시드니에 여행 갔을 때, 하버 브리지 클라이밍을 보기만 하고 해보지 못했다”며 “그때 못 푼 소원을 남해에서 풀어 후련하다”고 했다.
남해 恨 푼 그 다리…새로운 ‘남해 명물’ 될까
남해군은 남해대교의 역사적 의미를 기념하자는 취지에서 이번 행사를 마련했다. 1973년 6월 개통한 남해대교(왕복 2차로)는 당시 아시아 최대 규모(주탑 간 거리 404m)를 자랑했다. 경부고속도로와 포항제철에 버금가는 산업화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이 때문에 개통식엔 전국에서 10만여명이 몰렸다. 박정희 대통령도 참석해 다리를 건넜다.
또 남해대교는 남해군민의 한(恨)을 풀어준 다리였다. 섬이었던 남해군을 육지와 연결한 유일한 통로였기 때문이다. 남해 지역 특산품이 밖으로 나가고 관광객이 들어왔다. 이처럼 50년 가까이 남해 관문 역할을 했던 남해대교는 2018년 바로 옆에 노량대교(왕복 4차로) 개통 이후 교통량이 크게 줄었다. 이에 남해군은 남해대교를 관광 상품으로 만드는 사업을 추진해왔다. 다리 곳곳에 조명을 설치하고 주탑 꼭대기에 전망대를 만들었다. 이번 브리지 클라이밍도 마찬가지다.
남해군 관계자는 “브리지 클라이밍을 보강해 나중에 또 진행할 계획”이라며 “독일마을·다랭이마을·보리암 등과 함께 남해 관광 자원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했다.
남해=안대훈 기자 an.dae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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