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산 꼭대기에 앉은 사람, 그 대담함이 경이롭다

백종인 2025. 4. 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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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세도나 여행기②] 붉은 바위들의 마술쇼

[백종인 기자]

▲ 캐시드럴 록 캐시드럴 록 트레일은 왕복 2km의 짧으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매혹 덩어리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 백종인
세도나에서의 세 번째 아침, 우리에게는 보인톤 캐넌(Boynton Canyon) 트레일과 비슷한 길이의 긴 트레일과 늦은 오후로 예정된 짧은 트레일 등 두 개의 트레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뭐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무슨 훈련 캠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틀 동안 계속된 산행으로 인한 피곤 때문인지 출발 시간이 다소 늦어졌다.

브린스메사-솔저패스 루프(Brins Mesa - Soldier Pass Loop): 10km

써브웨이 동굴(Subway Cave) 못지않은 동굴이 있을 뿐만 아니라 데블스 키친(악마의 부엌, Devil's Kitchen)과 일곱 개의 성스러운 우물(Seven Sacred Pools) 등이 있는 솔저패스(Soldier Pass) 트레일은 험하지 않으면서도 보인톤 캐넌 트레일에 비해 짧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그러나 인기에 비해 주차장은 턱없이 좁아 시에서는 셔틀버스를 운행한다.

한편, 솔저패스 트레일과 이웃하고 있는 브린스메사(Brins Mesa) 트레일을 연결하여 크게 한 바퀴 돌 수도 있는데, 이 트레일이 브린스메사-솔저패스 루프(Brins Mesa - Soldier Pass Loop)다. 약 10km에 달하는 다소 긴 트레일이지만, 붉은 바위산의 파노라마 풍경을 어렵지 않게 즐길 수 있고 주차장도 넓다 하여 걷기를 좋아하는 우리는 망설임 없이 이 코스를 선택했다.

하지만 주차장을 500m가량 앞두고 길은 비포장으로 바뀌었다. 그냥 포장되지 않은 흙길이나 자갈길이 아니라 움푹움푹 패인 구간이 여럿 있었고 넓적한 바위를 넘어가야 하는 곳도 있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지난번 파타고니아 여행에서는 트럭이었음에도 타이어가 터졌는데, 이번에는 자동차도 비포장길에 취약한 프리우스였다.

우리보다 큰 차를 가지고도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조심조심 천천히. 우리는 동굴로 올라갈 때보다 훨씬 긴장하며 걷는 속도보다 느리게 차를 움직였다. 예상대로 주차장은 한가했다.
▲ 브린스메사 주차장에서 솔저패스로 향하는 길 브린스메사 주차장에서 솔저패스로 가는 약 1km에 달하는 길은 오르내림이 적당히 있는 고요한 산길이다.
ⓒ 백종인
브린스메사 주차장에서 솔저패스로 가는 약 1km에 달하는 길은 오르내림이 적당히 있는 고요한 산길이었다. 조용하던 주위가 다소 소란스러워지자 솔저패스 트레일로 들어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솔저패스의 첫 번째 랜드마크는 데블스 키친이었다. 데블스 키친은 거대한 싱크홀로, 1880년과 1989년에 바위가 크게 붕괴한 후 1995년에 북쪽 벽 일부가 다시 붕괴하는 식으로 또 다른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다소 아슬아슬한 곳이었다. 악마가 큰 부엌을 원하는 욕심에는 끝이 없나 보다.
조금 더 걸어가니 이번에는 넓고 평평한 바위 위에서 십 대 여자 아이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이곳은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과는 딴판의 이름을 가진 '일곱 개의 성스러운 우물'이 있는 곳이었다. 이런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면 그저 움푹 파인 바위에 물이 고여있다고 생각했을 만큼 평범해 보였다.
▲ 데블스 키친 데블스 키친은 거대한 싱크홀로, 1880년과 1989년에 바위가 크게 붕괴한 후 1995년에 북쪽 벽 일부가 다시 붕괴하는 식으로 또 다른 붕괴가 일어날 수 있는 다소 아슬아슬한 곳이다.
ⓒ 백종인
▲ 일곱 개의 성스러운 우물 일곱 개의 성스러운 우물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이곳의 평평한 바위 위에서는 십 대 여자아이들이 시끄러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 백종인
솔저패스 동굴(Soldier Pass Cave)로 가는 길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저 앞에 가는 사람만 따라가면 되었다. 길이 가팔라지며 여기저기 흐트러진 바위를 건너 올라가는데, 높다란 바위 절벽이 앞을 막아섰다. 역시 동굴은 높은 곳에 숨어 있었다. 솔저패스 동굴로 가는 길도 써브웨이 동굴로 가는 길처럼 거의 수직으로 된 바위를 타야 했다. 다만, 바위틈 사이로 잡을 것이 많아 써브웨이 동굴보다는 올라가기 쉬웠다.
▲ 솔저패스 동굴로 올라가는 길 솔저패스 동굴로 가는 길도 써브웨이 동굴로 가는 길처럼 거의 수직으로 된 바위를 타야 했다.
ⓒ 백종인
세도나의 동굴은 입구로 들어가면 완전히 막혀 있는 일반 동굴과는 달리, 수직 절벽 위에 선반 같은 길이 있고 바위 사이로 창문 같은 열린 틈이 있다. 몸을 숨기거나 비바람을 막기보다는 다양한 모양의 바위틈 사이로 기막힌 경치를 보여주는 것이 동굴의 역할인 셈이다.
▲ 솔저패스 동굴의 창문들 솔저패스 동굴에는 수직 절벽 위에 선반 같은 길이 있고 바위 사이로 창문 같은 열린 틈이 있다.
ⓒ 백종인
▲ 솔저패스 동굴 안의 풍경 몸을 숨기거나 비바람을 막기보다는 다양한 모양의 바위틈 사이로 기막힌 경치를 보여주는 것이 동굴의 역할이다.
ⓒ 백종인
처음 도착한 동굴에서 선반 길을 걸어 오른쪽으로 나가니 아래에서 얼핏 보았던 움푹 들어간 두 번째 동굴이 나왔다. 그곳은 경치를 보며 쉬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였는데, 막상 앉고 보니 아래에서 보았을 때 작은 무대 같던 곳이 세도나를 감상하는 오페라 극장 발코니석으로 변해 있었다.
▲ 아래에서 바라본 두 번째 동굴 아래에서 보았을 때 두 번째 동굴은 작은 무대 같이 보인다
ⓒ 백종인
▲ 솔저패스의 두 번째 동굴 세도나를 감상하는 오페라 극장 발코니석으로 변한 동굴
ⓒ 백종인
발코니석에서 충분히 즐겼으니 이제 다시 길을 나설 차례였다. 올라올 때보다 더 주의를 기울이며 동굴을 빠져나와 우리는 솔저패스 트레일로 다시 들어갔다. 바위로 된 천연 계단을 밟으며 브린스메사 쪽으로 이어지는 정상으로 올랐다. 우리가 올랐던 동굴은 아마도 오른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산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 솔저패스 트레일 정상 우리가 올랐던 솔저패스 동굴은 아마도 오른쪽으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산 속에 숨어 있을 것이다.
ⓒ 백종인
솔저패스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브린스메사 트레일은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고 한산했다. 건조한 녹색 수풀 사이로 보이는 붉은 바위들이 평화롭게 보였다.
버싱 케이브(Birthing Cave): 3.2km
▲ 버싱 케이브 동굴은 솔저패스의 두 번째 동굴과 비슷했고 경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 백종인
늦은 오후에 시작한 버싱 케이브(Birthing Cave) 하이킹은 동굴로 올라가는 마지막 길을 제외하면 한산한 산책에 가까웠다. 1km 정도를 편안하게 걷다가 동굴을 앞에 두고 2m 정도 높이의 바위를 뚫고 올라가면 동굴을 만날 수 있었다.

동굴은 솔저패스의 두 번째 동굴과 비슷했고 경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리는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써브웨이 동굴과 솔저패스 동굴이 얼마나 멋있는지 사진을 보여주며 그곳들을 가 보라고 자랑 섞인 조언을 했다.

캐시드럴 록(Cathedral Rock) 트레일: 2km

세도나에 왔다면 절대로 놓쳐선 안 되는 곳이 캐시드럴 록(Cathedral Rock) 트레일이다. 캐시드럴 록은 일단 아름답다. 179번 고속도로를 달릴 때나 벨 록(Bell Rock) 트레일에서 멀리 보이는 캐시드럴 록은 이름처럼 유럽의 대성당 자체다.

또한, 캐시드럴 록으로 올라가는 길은 성당의 긴 계단을 올라가는 것처럼 숨이 차고 조심스러우며, 높다랗게 올라간 두 개의 사암 첨탑 사이에 있는 정상에 올라서면 360도 방향으로 세도나 경치를 감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캐시드럴 록 트레일은 왕복 2km의 짧으면서도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매혹 덩어리로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곳이다.

우리는 세도나를 떠나는 네 번째 날 아침에 캐시드럴 록을 찾았다. 인기가 많은 만큼 주차난도 심해, 주말 여행 기간인 목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캐시드럴 록 주차장은 폐쇄되고 모든 방문객은 셔틀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캐시드럴 록으로 가는 트레일은 시작부터 바위를 올라가야 했는데, 경사가 완만한 바위로 오르다 보면 대성당의 기단 같은 넓고 평평한 바위를 만나고 그곳부터는 가파른 바위를 두 손과 두 발을 이용하여 올라가야 한다. 바위는 틈이 많아 오르기 어렵지 않았는데, 더 이상 오르는 것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나 하면 아이들은 무척 흥겨워하며 뛰어다녔다.

바위를 타고 오르는 길이 500m 이상 계속된 후에야 "끝"이라는 표식과 함께 양쪽에 사암 첨탑을 둔 평평한 정상에서 트레일이 끝났다. 앞으로는 붉은 바위산 능선이 보였고 뒤로는 바위산 아래의 마을이 보였다.
▲ 캐시드럴 록 정상에서 바라본 붉은 바위산 능선 아래쪽 바위산 꼭대기에 사람이 앉아 있는데, 도를 닦고 있는 것인지 기를 받는 것인지 몰라도 그 대담함이 경이로웠다.
ⓒ 백종인
▲ 캐시드럴 록 정상 최고의 촬영 장소 오른쪽 첨탑 쪽은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 곳으로, 각도에 따라 왼쪽 첨탑이 나오는 최고의 촬영 장소다.
ⓒ 백종인
먼저 왼쪽 첨탑 쪽으로 가는데, 아래쪽 바위산 꼭대기에 사람이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도를 닦고 있는 것인지 기를 받는 것인지 몰라도 그 대담함이 경이로웠다. 오른쪽 첨탑 쪽은 순서를 기다리며 사진을 찍는 곳으로, 각도에 따라 왼쪽 첨탑이 나오는 최고의 촬영 장소였다.

이렇게 4박 5일에 걸친 우리의 세도나 여행도 끝이 났다. 돌아갈 길이 멀었지만, 세도나에서 받은 기로 아주 여유롭게 길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어쩌면 오랜만에 목격한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에서 진정한 기를 받았는지도 모르겠다.

덧붙이는 글 | 미국에서 3월은 봄방학의 계절이다. 대학생들은 친구들과 어린 학생들은 가족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 또한, 캘리포니아주를 비롯한 애리조나주와 유타주 등의 날씨는 차가운 기운은 사라지고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기 전이어서 여행에 가장 알맞은 계절이다. 그래서 우리도 짐을 꾸려 ‘기'가 솟아 나온다는 애리조나주의 세도나로 향했다. 내가 사는 엘에이에서 운전하는 시간만 7시간 가까이 걸리는 이번 여행의 목적은 실체가 모호한 ‘기’를 받는 것보다는 붉은 바위산을 걷는 하이킹이었다. 4박 5일 동안 열심히 걷고 올라간 6곳의 트레일을 한 번에 다 풀어 놓기에는 지면이 부담스러워 두 번에 걸쳐 이야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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