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급 성금 걷혔다? 산불 피해 주민, 앞으로가 더 힘들다"
[김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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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3월 30일 경북 안동체육관에 마련된 산불대피소에서 이재민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
| ⓒ 연합뉴스 |
경북 의성, 안동, 영덕 일대가 산불로 타들어 가는 동안 온 국민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갔다. 최근 나사(NASA)가 공개한 한반도 위성 사진을 보니 동서가 횡으로 가로질러 칼에 베인 듯한 상처가 또렷했다. 국립과학원이 조사한 자료를 보니, 토양은 100년, 야생동물은 35년, 산림의 골격을 갖추는 데만 30년이라는 시간이 소요될 정도라 한다.
여기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될 것이 하나 더 있다. 아직 귀가하지 못한 3500여 명의 이재민이 겪고 있는 고통, 그들이 맞고 있는 차디찬 현실이다.
신하림 기자가 쓴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에는 산불 재난 이후 이재민에게 닥친 또 다른 재난이 잘 나와있다. 신 기자와 진행한 서면 인터뷰에서 "(이번) 영남 산불 피해가 워낙 커서 아주 안타깝다"라면서 "다른 지역의 피해라 말씀드리기에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최대한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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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화염에 휩싸인 산 3월 27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 원호리 한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하고 있다. |
| ⓒ 권우성 |
그는 이를 직접 취재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에 주목했다. 매해 반복되는 산불과 산불 이후 평범했던 일상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재민의 처참한 삶이었다.
이재민의 고통은 산불 이후에도 계속되는데 뉴스는 보통 산불 진화 직후까지만 나온다. 그래서 그는 산불을 끈 이후에도 이재민이 겪는 고통을 책으로 남겼다. 책에서 그는 "재난의 교훈을 되새기고 고통받은 사람들을 위로하는 자리가 없다면 재난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호소한다.
"책을 쓰고 난 이후 홀가분한 감정은 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책을 펼쳐보기 힘들었습니다. 이재민 분들을 인터뷰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어요. 재난을 간접으로나마 경험한 저도 이런 심정인데, 재난을 직접 겪은 그분들의 고통은 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강릉시에서 동해시로 넘어가기 전 '옥계면'이라는 마을이 있다. 2000년 들어 대형 산불만 4번 난 곳이다. 그는 "이곳에 가보면 이재민이 겪었을 상실감이 어떤 감정인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가 준 사진을 보니 더는 숲이라 부르기 어려웠다. 민둥산으로 변해버린 탓이다. 산불을 비롯한 여러 재난에 대비하려면 '예방-대비-대응-복구'라는 재난관리시스템에 '학습'이라는 단계를 하나 더 추가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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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2년 3월 5일 발생한 대형산불로 주택이 전소된 강원도 동해시 괴란동의 70대 주민. 휴대폰으로 찍은 전소된 집을 들여다보고 있다. 그 주민은 시부모님이 지은 집을 잃고 임시 조립주택으로 들어갔다. 고령층 이재민들은 복구 비용을 감당하지 못해 집을 다시 짓지 못하는 사례도 많다. |
| ⓒ 신하림 작가 제공 |
이처럼 산불은 가차 없이 모든 걸 휩쓸어 간다. 신 기자는 아직도 그때 이장님이 나직이 내뱉던 말을 기억한다. "도대체 이 아픔을 누가 알아주겠느냐"고. 그런 그에게 "재난 이후 이재민에게 가장 필요한 게 무엇이라 생각하느냐?"고 묻자 신 기자는 "일상 복구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재민은 심리적인 고통이 제일 크며, 불안과 우울증이 동반한다고 했다. 꿈과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런 불안한 심리는 소외감을 부르고 행정마저 불신하게 된다. 신 기자는 "불편함은 참아도 불확실함은 감내하기 어려운 탓"이라고 했다.
그는 2023년 강릉 경포 산불 이재민의 그날을 떠올렸다. 체육관 대피소를 나와 인근 펜션에 2개월여 머물다 임시 조립주택에 들어갔다. 그러나 생활에 필요한 세탁기, 냉장고 등 구호품은 기약이 없었다. 그해 6월은 꽤 더웠다. 속이 타들어 가던 날이 하루하루 쌓이자 그들은 항의했다. '곧 배송한다'가 아닌 '며칠부터 며칠 사이'라는 구체적인 정보를 원했다. 산사태 예방을 위한 사방사업도 마찬가지.
"나무가 사라진 산에서 산사태가 나서 임시 조립주택을 덮치지 않을까, 불에 탄 소나무가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했던 거죠. 생활 기반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이재민들에게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가 참 많아요. 지난해 12월 제주항공 참사 때도 무안공항에 있던 유가족들이 공무원들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달라'고 호소하던 장면을 뉴스 화면으로 봤는데요. 산불뿐만 아니라 모든 재난의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재난 발생 시 이재민들에게 구체적인 복구 정보를 제공하는 '커뮤니케이션 툴(tool)'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이와 함께 신 기자는 "산불이 사회적 약자에게 더욱 가혹할 수 있다"라면서 곳곳의 인프라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령, 불길을 잡을 수 있는 소방 관련 시설 구축과 소화전 같은 것 말이다. 신 기자는 "사회 인프라는 인구수 등을 기준으로 설치된다. 산불을 계기로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 인프라 확충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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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월 31일 경북 안동시 일직면 권정생어린이문학관 앞에 산불 이재민 긴급주거시설로 모듈러주택이 설치되고 있다 |
| ⓒ 연합뉴스 |
저번 강원 일대 산불과
이번 영남 산불도 마찬가지지만, 정부 지원과 민간 기업의 손길로 금세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영남 산불 피해로 구호 물품 108만 점, 국민 성금 1328억 원이 모였지만 불타 없어진 일상은 회복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오해하지 말아야 할 부분이 있어요. '역대급 성금이 걷혔으니, 이재민들은 많은 지원을 받고 일찍 일상 회복으로 갈 수 있는 거 아니야?'라는 시선입니다. 간단한 문제가 아니에요. 피해 주민이 많기도 했고요. 성금 배분할 때는 기준이 있는데, 재난별로 지원액 편차가 크면 논란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편차를 크게 두기 어려운 점이 있어요. 영남 산불도 성금 배분 기준과 사용처 등을 정하는 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겁니다."
신 기자는 "정부가 직접 지원하는 재난 지원금도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행 규칙(자연재난 복구비용 산정기준 및 사회재난 생활안정지원 항목별 단가)상 주택이 전파되면 최대 3600만 원, 반파되면 최대 1800만 원을 국가로부터 받게 된다"라면서 "피해에 대한 보상이라기보다는 이재민의 생활 안정을 지원하는 주거비 성격이 짙다. 이 돈이 전액 주택 복구에 쓰이기도 어려운 현실"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생업이 중단된 기간에 생활비로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의 말대로 산불은 빚을 남긴다.
오래도록 한 마을에서 쌓아온 믿음과 공동체 의식이 산불 탓에 깨져 사분오열하거나 서로 오해가 쌓여 비방하는 것을 봤을 때 가장 마음 아팠다고 그는 술회했다. 산불이 지나간 자리는 반드시 '갈등의 불씨'도 함께 남긴다. 그렇기에 그는 "복구 과정에서의 마찰, 보상 과정에서의 비방과 갈등, 소송 등 사회 갈등 수습도 이재민의 심리 치유와 직결되기에 간과해선 안 된다"고 설명했다.
"2019년 고성·속초 산불로 폐차장인 사업장이 전소돼 무너진 이재민 한 분이 계셨어요. 당일 스스로 목숨을 끊을까 했다가 여러 도움으로 다시 일어선 분인데요. 이분은 지인이 당시 줬던 편지를 간직하고 있었어요. '자네 얼마나 상심이 크겠나'로 시작해 '그래도 다시 일어서시게나'라는 문구로 끝나는 편지였는데요. 이 편지를 받고 한참 울었고, 지금도 위로가 된다고 합니다. 말 한마디라도 어떤 메시지를 담느냐에 따라 이재민을 무너뜨리기도 하고, 일으켜 세우기도 해요."
신 기자는 특히 디지털에 취약한 고령층만의 사회적 재난 인프라 구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번 영남 산불에서 느낀 것이 하나 있어요. 바로 신속한 대비 시스템 점검 체계 구축입니다. 대피 문자 등은 스마트폰으로 전송되는데 어르신들은 디지털 취약계층이에요. 산불이 났을 때 인명 피해를 어떻게 막을지 대책이 필요해요. 서둘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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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3년 4월 11일 강릉시 난곡동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이후 벌채 작업 현장. 경포는 강릉의 대표 관광지이자 문화유산의 중심지이지만, 대형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다. |
| ⓒ 신하림 작가 제공 |
그는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며
"이재민들의 일상 복구 과정을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산불은 대부분 실화에서 발생하는데, 작은 불씨 하나가 이웃의 삶을 어떻게 파괴하는지, 다시 일어서는 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한지 함께 아는 것도 중요하단다. 그는 "실화에 대한 형사 처벌뿐만 아니라 윤리적, 도덕적 죄의식을 공유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번 영남 산불 언론 보도를 보면서 인상 깊었던 점은 '산불=기후 재난'이라는 공감대가 생겼다는 겁니다. 기존 동해안 대형 산불은 '양간지풍'이라는 지형적인 요인에서 원인을 찾는 사람이 많았는데요. 극한 호우, 이상 고온 등을 많이 겪어서인지 이제는 대형 산불 원인을 기후 변화에서 찾습니다. 이런 공감대를 바탕으로 '기후 재난에 강한 사회'를 어떻게 만들지 광범위하고 체계적이며 구체적인 논의를 해야 합니다. 화두를 던지는 언론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마지막으로, 신 기자는 "이번 영남 산불 재난으로 어려운 일상을 보내고 계실 이재민들께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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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은 마을을 어떻게 바꿨나> 저자인 신하림 강원일보 기자 |
| ⓒ 신하림 작가 제공 |
덧붙이는 글 | 신하림씨는 강릉에서 태어나 강원도에서 자라 강원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는 강원도 토박이입니다. 그렇기에 매년 반복되는 강원 산불 재난을 직접 취재하면서 재난 대비 시스템 구축 등 느낀 것이 많다고 했습니다. 그는 이번 영남 산불 재난을 보고, 역시나 안타까운 마음을 가졌다 합니다. 산불 뿐 아니라 각종 재난 이후 이재민을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보듬을 수 있는 공론화가 필요한 때라 생각해 기사를 작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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