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어와 한국어는 동등 지위…'수어'에 관심 필요한 이유
"수어는 배려 아닌 장애인의 권리…수어 사용 일상화돼야"
[편집자주] 두 번째 대통령 탄핵, 50일도 남지 않은 21대 대통령 선거…대한민국이 어느 때보다 숨가쁘게 움직이고 있는 요즘, 소리가 아닌 손으로 세상을 전하고 접하는 이들이 있다. 바로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청각장애인과 수어통역사들의 '손으로 만난 세계'를 뉴스1이 조명한다.
사람을 표현하는 손동작을 뒤에서 밀어주면 '돕다', 엉덩이를 치듯이 아랫부분을 치면 '칭찬', 뒷부분을 때리면 '폭행'이라는 표현이 됩니다. 머리를 쓰다듬듯이 손바닥을 돌리면 '사랑합니다'가 되죠. 사람이라는 수형(手形)이 한국어 형태소처럼 문법적으로 기능하는 겁니다.
지난 17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에 위치한 서울수어전문교육원에서 만난 장민영 과장(43·여)과 송혜민 수어통역사(25·여)는 "수어는 시각적인 사물의 현상을 그림처럼 표현할 수 있는 매력적인 언어"라고 입을 모았다.
한국어와 동등한 지위 가진 한국수어…일상 속 장벽은 여전
지난 2009년 4월 13일 국내 첫 수어 전문 교육 기관으로 문을 연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은 서울시의 '장애인 행복도시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졌다. 전문화된 한국수어통역사를 배출, 수어 인구의 확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의사소통 장벽을 해소하기 위해 마련됐다. 연간 6000여 명의 수강생이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장 과장은 이곳에 2011년 입사한 농인 수어통역사다. 어린 시절부터 자연스럽게 수어를 사용해 온 '네이티브'다. 손짓으로 전하는 사랑을 그린 영화 '청설'의 자문과 주연인 노윤서 배우의 수어 교육을 맡았으며, 법원에서 수어 강연을 하는 등 수어 보급 확대를 위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송 통역사는 아나운서를 준비하던 중 정보 취약 계층의 정보 전달에 대한 고민을 하다가 수어를 배우게 된 2년차 수어통역사다. 법원과 병원 등 공공기관에서 농인들의 권리에 관심을 갖고 진로를 바꿨다.
이날 인터뷰는 장 과장의 수어를 송 통역사가 구어로 통역해 전달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장 과장은 "수어는 배려가 아닌 농인의 권리"라며 "병원에서, 법원에서, 회사에서 청인들에겐 당연한 일상 속에서 많은 장벽이 있다"며 수어 교육의 필요성을 짚었다.
또 "한국어와 한국수어는 동등한 지위를 갖는 언어라는 게 법적으로 인정됐지만, 수어는 여전히 아는 사람끼리만 쓰고 있다. 권리 보장을 위해 수어 사용자가 일상적으로 많이 늘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2016년 제정된 '한국수화언어법'은 "한국수화언어(한국수어)가 국어와 동등한 자격을 가진 농인의 고유한 언어"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특히 "농인이 한국수어 사용을 이유로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차별받지 않고, 정보를 제공받을 권리"를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농인들이 체감하는 변화는 아직 부족하다.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도 수어 방송·자막 방송 품질이 떨어진다는 비판은 수년째 이어지고 있다. 방송에서 제공되는 수어통역이 단순히 한국어를 한국수어 단어로만 바꾸는 방식으로 이뤄져 농인 시청자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농인의 모어는 수어인 만큼 농인과 문화가 다른 비장애인 중심의 한국어를 단순 통역하는 방식으론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수어에서는 손동작뿐만 아니라 표정과 몸짓 등 '비수지 신호'도 중요하다.
장 과장은 "방송 뉴스의 수어통역을 보면 감사한 마음이 있지만, 표정도 없이 한국수어 문법에 맞지도 않고, 어휘만 나열되는 경우도 있다"며 "내용 전달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고 꼬집었다.
한국어 자막만으로는 농인이 온전히 정보를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 장 과장은 "비장애인이 영어를 잘해도 영어 자막을 보는 데 피로도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네이티브·비장애인 통역사의 역할…"전문화된 수어통역사 필요"
정확한 의사소통을 위해 통역사의 역할 구분도 중요하다. 수어통역사는 크게 장 과장 같은 '농인 통역사'(청각장애인)와 송 통역사 같은 '청인 통역사'(비장애인)로 나뉜다.
장 과장은 이 둘의 역할에 대해 "청인 통역사는 청각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어 네이티브식으로 완전히 통역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시각 중심 문화를 갖고 살아왔으며, 청인들의 한국어 중심 수어를 잘 알아듣는 청각장애인 통역사가 중계 통역을 한다"고 설명했다.
농인 통역사는 수어를 잘 모르는 농인이 몸짓으로 표현하는 신호를 수어로 표현하는 역할도 한다.
이 같은 두 통역사가 짝을 이뤄 통역을 하는 것을 '미러 통역'이라고 부른다. 농인들에게 더욱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해 한국어를 비장애인이 수어로 통역한 것을 실시간으로 농인 통역사가 다시 네이티브식 수어로 전달하는 방식이다.
수어통역은 전문 분야로 세분화되고 있다. 장 과장은 "한 수어통역사가 병원이나 재판 등 모든 분야의 통역을 맡기 힘들다"며 "재판 전문, 의료 전문 통역사가 필요하다. 사전 지식을 쌓는 과정과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수어전문교육원은 수어통역사를 대상으로 방송, 법률, 의료 등 세 분야의 통역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긴급 상황 시 지원을 위한 의료 및 안전 분야 공무원 대상 기초 수화 역량 강화 사업도 연내 추진할 계획이다. 교육원은 올해 교사 대상 연수 기관으로도 지정됐다.
두 통역사는 수어 교육에 있어 어려운 점으로 문화 차이를 짚었다. 음성 언어 사용자는 청각을 중심으로 정보를 받아들인다면, 농인들은 시각 중심의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장 과장은 "대부분 1년 정도 손동작만 배우면 끝이라고 생각하는데, 수어도 손의 움직임, 방향, 모양, 얼굴 표정 등 한국어와 다른 독자적 문법 체계가 있기 때문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고 전했다.
송 통역사는 "과장님과 얘기를 하다보면 문법이 하나도 안 맞는다는 지적을 받곤 한다"며 "영어 동시 통역을하는 분들처럼 끝없이 공부하고 고민해야 하는 거 같다"고 토로했다.
끝으로, 두 통역사는 농인의 권리 보장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수어에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병원이나 법원에서 전문 수어통역사 배치될 수 있는 제도가 많이 만들어졌으면 한다"며 "전문 통역사 많이 생기면 농인들의 삶의 질이 많이 좋아질 거 같다. 그런 사회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송 통역사는 "수어는 서비스나 배려의 차원이 아닌 한국 농인의 권리라고 생각한다"며 "이를 많은 분들이 이해해주시고 수어에 많은 관심을 가져줬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Ktiger@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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