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살 때 귀농...벌써 21년째 유기농사를 짓고 있네요
나는 33세 때 아내와 함께 귀농해 21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다. 흙 만지며 사는 농부의 이야기를 연재 기사로 정리하고자 한다. <기자말>
[조계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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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긴 겨울이 끝나고 봄이 찾아왔다. 농장 주변에 벚꽃이 피었다. |
| ⓒ 조계환 |
우리 부부는 내가 33살 때 귀농해서 21년째 유기농 농사를 짓는 전업 농부다. 쌈채소, 고추, 토마토, 가지, 배추, 감자, 브로콜리, 양배추, 마늘, 양파 등 50여 가지 채소를 2천평 정도 밭에서 농사짓는다. 조화와 순환을 기본으로 하는 한국 전통 유기농법을 따른다. 해마다 같은 땅에 다른 작물을 섞어서 심는다. 귀농 초기에 풋풋하게 농사 짓고 직거래하는 이야기를 한 번 <오마이뉴스>에 기사로 올린 적이 있다( '친환경'으로 FTA 넘어라? 한 달만 농사 지어봐 ). 지금 보니 당시 사진이 참 젊어 보인다.
귀농 전에 서울에서 언론홍보 일을 했다. 일은 재미있었으나 매일 야근을 해야 했고, 50살 넘은 사람이 회사에 없었다. 중년으로 접어드는 상사들의 모습은 좋은 귀감이 되지 못했다. 나이 서른에 무작정 회사를 그만두고 아내와 함께 인도와 네팔로 두 달간 배낭 여행을 다녀왔다. 첫 해외여행에서 버스 사고도 당하고, 작은 수술까지 하는 등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뭔가 정해진 틀에서 벗어나서 살아도 된다는 걸 배웠다.
여행 후 새로운 삶을 모색하다, 우연히 아내가 먼저 읽은 <월든>이란 책이 영감을 줬다. 돈이 중심이 되는 사회를 거부하고 숲속에서 자급자족하며 사는 이야기였다. 우리도 한번 이렇게 살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태적인 삶, 유기농사에 관심을 갖게 됐다. 농사철에는 농사 일을 하고 겨울엔 여행을 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귀농학교를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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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귀농해서 정착하는 과정은 어려웠으나 농사 짓고 사는 삶은 평화로웠다. |
| ⓒ 조계환 |
마치 고향처럼 애틋한 정을 느끼게 된 장수군에서 13년을 잘 적응하고 살았으나 더이상 유기농사를 지을 수 없는 사정이 생겨서 떠나야 했다. 그동안 우리 때문에 논에 농약을 안 뿌리던 이웃이 다음 해부터 헬리콥터로 농약 방제를 하시겠다고 했다. 드론이나 헬리콥터 방제를 하면 주변에서 유기농사를 지을 수 없다. 유기농사를 지으려면 좋은 이웃을 만나야 했다(유기농 위해 이사하고 이웃에 읍소,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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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잘 자란 브로콜리와 상추 모종들, 밭에 들어갈 준비를 한다. |
| ⓒ 조계환 |
옷도 사지 않고, 주변 지인들이나 이웃들이 주는 옷을 입고 산다. 귀농 2년차에 제철꾸러미라는 채소 정기 배송 직거래를 기획하고 시작해서 빚 없이 소박하게 생활한다. 집도 땅도 모두 임대, 구하기 쉽지 않지만 농촌에는 빈집과 빈땅이 많다. 겨울에는 난방비도 절약할 겸, 주로 따뜻한 나라나 우리 농장에 찾아왔던 외국인 친구들 집으로 여행을 떠난다.
농사는 재미있는 일, 유기농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소중한 실천
농사를 시작한 후에 가장 놀란 일은 농사가 무척 재밌다는 점이다. 쉬는 날 없이 일해도 즐거울 정도로 내일이 기다려진다. 내일 토마토가 열릴까?, 고추가 좀 더 클까? 무당벌레를 풀어놨는데 진딧물이 좀 줄어들까? 항상 다양한 일이 벌어지고, 거기에 대처하며 많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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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밭에서 일하다 주변을 돌아보면 봄꽃들이 피어난다. 아름다운 봄날이 시작됐다. |
| ⓒ 조계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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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올해 첫 외국인 봉사자 친구들. 유기농과 한국 정치에 관심을 많다. 계엄이 영어로 ‘martial law’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파면 결정이 났을 때는 ‘victory’라며 다들 기뻐했다. 기념으로 벚꽃 구경을 했다. |
| ⓒ 조계환 |
노동과 숙박을 교환하는 프로그램으로, 환경 보호를 위한 유기농사를 직접 체험한다. 30여 개국의 다양한 나라 친구들과 생활하는데, 서로 많은 공부가 된다. 봉사자들을 일손으로만 대하지 않고 함께 유기농사를 짓는 가족으로 생각하고 지낸다. 봉사자들이 찾아오면서 하루 13시간 정도였던 노동시간이 8시간 이하로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쉴 수도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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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처음으로 밭에 심은 열무가 싹이 올라와 자라기 시작했다. |
| ⓒ 조계환 |
힘든 육체노동이 이어지지만 환경을 보호하는 소중한 일을 한다는 마음이 지치지 않게 한다. 작은 일상에서 열심히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금의 한국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부모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희망을 잃지 않고 밭에서 괭이질과 삽질하며 올해도 힘차게 농사일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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