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의 '친일 혐중', 오늘도 원인을 찾는 중입니다
[서부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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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오성홍기. |
| ⓒ Alejandro Luengo=unsplash |
"또래들 사이에선 '친일 청산'이라는 구호가 식상하다는 이야기가 많아요. 너무 오랫동안 우려먹는 것 아니냐고 조롱하는 아이들도 있어요."
"경제력을 비교해도 더 이상 일본은 우리에게 적수가 안 되잖아요. 굳이 옛일을 끄집어내 그들을 욕할 필요가 있나 싶어요. 그보다 지금 우리가 경계해야 할 대상은 중국이죠. "
"과거 제국주의 침략을 반성하지 않는 일부 정치인들 때문에 일본이라는 국가를 백안시해서는 안 된다고 봐요. 평범한 일본 국민에게 책임을 물을 순 없잖아요."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저지른 일제의 만행을 소개하고, 친일 청산의 대의를 강조할 때마다 나오는 아이들의 '삐딱한' 반응이다. 일제강점기를 근현대사의 일부로 여기는 기성세대와는 달리, 아이들은 고려나 조선시대의 연장선에 자리한 전근대사의 범주로 본다. 일제 침략이 21세기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의 삶과 무관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이유다.
일제강점기의 부정적 유산이 한 세기가 지나도록 여전히 뿌리 깊은데, 아이들 대다수는 이를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가치관이 물구나무선 불의하고 불공정한 사회라는 데엔 모두가 동의한다. 다만 그것의 뿌리가 해방 후 친일 청산이 좌절된 사실과 엄혹했던 식민지 시절에 가닿아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진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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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본 야마구치현 우베시 연안에 남아있는 장생탄광 환기구인 피야. 일제강점기 시대에 콘크리트 구조물로 만들어져 공기 순환통로로 사용됐지만 지금은 폐쇄돼 있다. |
| ⓒ 조정훈 |
'친일 청산의 좌절이 기득권의 세습으로 이어졌고, 정통성 없는 독재정권의 비호로 승승장구해 온 비뚤어진 역사'라고 말하는 아이도 드물게 있긴 하다. 그들은 일제가 저지른 만행에 분개하며 우리 정부가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사죄와 배상을 받아내야 한다고 강조한다.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지난 윤석열 정부의 최대 실정으로 꼽는 것도 그래서다.
그러나 친일 청산의 당위성과 일본 정부의 사죄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들 역시 일제강점기의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는 피상적인 수준에 머물러있다. 거칠게 말해서, 독도 영유권과 '종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인식이 사실상 전부다. 교과서에서도 단원별 특집과 부록의 형식으로 그 둘을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어, 자칫 그게 다인양 여겨질 수 있다.
몇 해 전 '군함도'가 영화화하고, 징용 노동자들의 미지급 임금 소송 등이 한일 양국의 외교 문제로 비화하며 알려졌다. 하지만 징용과 징병 등 강제 동원 문제 등은 상대적으로 소략하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이 투하됐을 당시 그곳에 살던 조선인이 수만 명 사망했다는 사실을 따로 설명해야 한다. 강제노동이 '군함도'에서만 벌어진 일인 줄로 아는 경우마저 있다.
해방 직후 조국으로 귀환하던 수천 명의 조선인이 숨진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은 아이들에게 금시초문의 일이다. 학교에서 배우기는커녕 지금껏 들어본 적이 없다고 죄다 고개를 가로젓는다. 한일 양국 정부의 외면 속에 한 세기가 다 지나도록 진상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말에 한 아이는 역사적 맥락을 소거한 채 '일본의 세월호 참사'라고 별명을 지어 불렀다.
일제강점기 말인 1942년에 일어난 '조세이 탄광 수몰 참사'는 명색이 역사 교사인 나조차 까맣게 몰랐던 역사다. 해저 탄광에 바닷물이 유입되면서 갱도가 무너져 183명이 동시에 수몰됐는데, 그중 136명이 조선인이었음이 밝혀졌다. 얼마 전 수몰된 유해 발굴이 필요하다는 언론의 특집 기사를 보고서야 비로소 알게 됐다. 어디 이것뿐이랴.
친일파보다 친중파가 더 싫다는 아이들, 이유는?
지금 교실에는 '친일파'보다 '친중파'가 더 싫다는 아이들이 태반이다. 아니, 태반이 아니라 전부다. 아이들끼리 중국을 향한 혐오 발언이 욕설처럼 사용되는 현실에서, 교사로서 나름의 이유를 찾아보려 애썼다. 공산당 일당 독재국가라는 기존의 이미지에다 다른 나라들 앞에서 '돈지랄'하는 중국 정부의 행태를 언론과 유튜브를 통해 익히 봐온 탓이 아닐까 싶다.
아이들은 전 세계를 상대로 조약을 어겨가며 관세 전쟁을 선포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으름장보다 그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맞서는 중국 시진핑 주석의 교만함이 더 싫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중국 혐오는 그만큼 뿌리가 깊고 완고하다. 오죽하면 같은 외교적 수사와 행동도 중국이 하면 기분이 나쁘다고 할까.
그들의 중국 혐오 현상은 급기야 우리를 무력으로 침탈하고 36년간 가혹하게 식민 지배한 일본에 대한 부정적 인식마저 녹여내고 있다. 덩달아 친일 청산의 대의마저 흐릿하게 만들고 있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외교 문제를 두고 토론을 벌이면, 중국 측을 대변할 아이는 더는 찾기 힘들다. 평소 대화 중에도 중국을 두둔했다간 왕따당하기 십상이라고 말한다.
마치 길항 관계인양 중국 혐오가 심해질수록 일본에 대한 호감도가 높아지는 형국이다. 일본의 역사 왜곡 행태를 비판할라치면 동북공정 등을 사례로 들며 중국이 더하면 더 했지 결코 덜 하지 않다고 응수한다. 굴욕적인 대일 외교를 꼬집으면 중국을 향한 맹목적인 사대 의식보다야 백 배 낫다고 말한다. 반박 근거의 출처는 십중팔구 극우 유튜브다.
개인적으로 일제강점기 역사 수업의 학습 목표를 요즘 아이들에게 광범위한 '친일 혐중'의 원인을 파악하는 데 두고 있다. 굳이 중국 혐오 현상에 천착하기보다 그들이 일본에 유난히 '관대한' 이유를 찾아보려 애쓰는 중이다. 그들이 '친일 청산'이라는 구호에 식상하지 않고,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경각심을 잃지 않도록 역사 교사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이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참혹했던 역사가 여전히 그들의 삶에 적잖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독도와 '종군 위안부' 말고도 교과서에 기록되지 않은 역사도 알려주어야 한다. 당시 얼마나 많은 조선인이 일본에 강제 동원됐고, 착취를 당했고, 목숨을 잃었는지 직접 눈으로 확인시켜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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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 <길에서 역사를 만나다> 표지. |
| ⓒ 학이사 |
240쪽 분량으로, 동선을 따라 여행하듯 읽으면 두어 시간이면 독파할 수 있다. '사진 반, 글 반'으로 현직 사진 기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 가독성도 높다. 꼭 한 해 전인 2024년 봄의 답사 기록이니, 이보다 더 최근 소식은 없다. 지도를 펼쳐놓고 읽어가다 보면 일제의 조선인 강제 동원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절감하게 된다.
더욱 인상적인 건, 강제 동원의 흔적을 애써 감추고 지우려는 일본 정부에 맞서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내고 알리려는 일본 시민들의 용기와 헌신을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과의 연대와 협력이야말로 한일 양국의 관계 개선을 위한 주춧돌이자 마중물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오늘날 일본인들의 역사 인식을 보여주는 교양서로도 손색이 없다.
아이들과 함께 읽다 보면 책에 소개된 곳으로 수학여행을 가자고 조를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니, 2025년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다. 계기 교육 삼아 광복절 즈음해서 이 책을 보조 교재로 활용해 아이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강제 동원의 역사를 살펴볼 요량이다. '친일'이든 '반일'이든 당대의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맹목'에 빠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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