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고령 운전자 면허반납 딜레마, "지원금으로 뭘 하라고"

무주신문 이진경 2025. 4. 18.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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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무주군, 2024년 45명 면허증 반납... 지원은 20만원 지역상품권이 전부, 생계는?

[무주신문 이진경]

ⓒ chuttersnap on Unsplash
"차 없으면 병원도 못 가고, 시장도 못 가요. 면허 반납하라면 그냥 집에만 있어야죠."

전북 무주의 한 마을에서 복숭아 농사를 짓는 76세 김정수씨(가명)는 뉴스에서 나오는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이라는 단어가 달갑지 않다. 혼자 사는 그는 마을버스도 자주 다니지 않는 지역에 살고 있다. 운전면허는 생계 수단일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의 기반이다.

정부는 고령운전자의 교통사고가 꾸준히 증가함에 따라 고령운전자 면허 반납을 권장하고 있다. 특히 사고 발생률이 높은 만 75세 이상을 중심으로 자진 반납을 유도하고, 소정의 인센티브를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전북 무주군처럼 대중교통이 취약한 시골에서는 이러한 정책이 '현실을 모르는 행정'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실제로 무주군은 고령화율이 37%에 달하는 초고령 지역으로, 운전면허를 반납하면 이동권 자체가 박탈되는 경우가 많다.

"운전은 노후 생계다"... 교통 인프라 부족한 현실

무주군에서 2024년 운전면허를 반납한 고령자는 45명. 이들에게는 1인당 20만 원의 지역사랑상품권이 지급됐고, 운전 적성 및 치매 검사를 병행하는 '맞춤형 운전 컨설팅'도 113명에게 이뤄졌다. 이들 113명에 대해서도 5만 원의 상품권이 지원됐다.

운전면허 컨설팅 및 자진반납자에게 지난해 지원된 상품권 지원 예산은1465만 원. 2022년 1900만 원에서 2023년 2900만 원까지 올랐다가 지난해 1740만 원으로 또 감소했다. 올해는 다소 오른 1800만 원이 편성됐다.

현행 제도에서 고령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지역화폐 20만원이 지급될 뿐, 이 금액이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기엔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실효성 없는 인센티브, 제도 개선 시급

"20만원 받아서 뭐 하나요. 그걸로 택시 서너 번 타면 끝이잖아요."

무주군 안성면에서 농사를 짓는 74세 박아무개씨는 운전면허 반납 유도 정책을 들을 때마다 속이 답답하다고 했다.

"버스가 하루 두 번밖에 안 다니는데, 오전에 한 번, 오후에 한 번 있어요. 병원 가려면 하루 종일 걸려요. 운전 못 하면 집에만 있어야죠."

설천면의 이아무개씨(79)는 "요즘은 혼자 사는 노인도 많고, 마을버스는 대부분 읍내까지만 가요. 농기계도 직접 몰아야 하니까, 면허 반납은 생각도 못 해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더구나 무주군은 면 단위 대부분 지역에서 대중교통 배차 간격이 2시간 이상이다. 일부 산촌 마을은 하루 1~2회에 불과한 노선이 전부다. 이러한 상황에서 면허 반납은 단지 이동권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내놓는 것이나 다름없다.

지난해 행정사무감사에서 이영희 군의원도 이러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당시 이 군의원은 "면허 반납보다도, 반납 이후의 삶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가 더 중요하다"며 "읍면 이장을 통한 적극적인 홍보와 더불어, 고령자 표시 스티커 배포, 맞춤형 대중교통 대책이 함께 추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과 홍보, 교통안전 정책 병행 필요
 무주군청 전경.
ⓒ 무주신문
무주군은 고령운전자의 교통안전 강화를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농촌 특유의 교통 인프라 부족과 생계형 운전자의 현실로 인해 실효성에 한계를 보이는 점 또한 사실이다. 무주군은 무주경찰서, 도로교통공단 운전면허시험장과 고령운전자 교통사고 감소를 위한 업무 협약을 맺고 매년 관내 고령운전자를 대상으로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하고 면허 자진 반납을 유도 해오고 있다. 최근에는 '어르신 운전 중' 표시 스티커를 제작해 만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를 대상으로 배포했다.

그러나 이러한 실정은 현행 제도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낸다. 단순히 면허를 반납하면 20만 원을 주는 방식은 시골 고령자들에게 실질적인 유인책이 되기 어렵다. 결국 교통수단이 확보되지 않는 한, 면허 반납은 곧 '이동권 포기', '생계의 단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단순한 금전적 인센티브를 넘어서 교통 인프라 구축, 맞춤형 교통 서비스 도입, 실질적 인센티브 강화 등 다각도의 접근이 요구되는 이유다.

타 지자체의 모범 사례는?

다른 지자체도 최근 급증하고 있는 고령운전자의 면허 반납을 유도하기 위해 다양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울산 울주군은 반납 혜택을 기존보다 5배로 대폭 확대해 면허 반납 건수가 급증한 지자체로 주목받고 있다.

올해부터 자진해서 운전면허를 반납하는 고령 운전자에게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기존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확대했다. 이에 지난 한 달 동안 65살 이상 고령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반납한 운전면허가 410건에 달한다. 또한 전라남도는 차선 이탈 방지 경보 장치를 무료로 보급·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75세 이상 운전자를 대상으로 자동긴급제동시스템 등 첨단 운전자보조시스템 장착 차량만 운전할 수 있도록 제한하는 '서포트카 한정 면허' 제도를 도입했다. 또한 면허 반납자에게는 택시 요금 할인이나 교통카드 지급 등의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무주군 같은 농촌에서도 수요응답형 교통서비스 확대, 대체 교통수단 마련, 고령자 맞춤형 안전교육 강화와 함께 보다 체계적인 정책 설계가 필요해 보인다. 고령 운전자를 위한 정책은, '반납'이 아닌 '대안'에서 시작돼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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