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온전한 혁명... '4월의 불꽃'의 빛과 그림자
[김성호 평론가]
(*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4월은 혁명의 달이다. 한국사 가운데 가장 찬란히 빛나는 4·19혁명, 이승만과 자유당 독재를 무릎 꿇리고 새로운 정치의 장을 민중의 힘으로 열어 젖힌 날이다. 이달 한국 민중은 여기에 한 줄을 더했으니 6공화국 가장 저열한 지도자라 불러도 좋을 윤석열의 내란사태를 파면으로 마무리했다. 이로써 지난 파행적 국정운영을 바로잡고 각종 비위 수사와 처벌에 돌입할 수 있으니 4월을 대한민국 민주의 달이며 혁명의 시간이라 부른다 해도 틀리지 않는다.
혁명(革命), 가죽 혁(革)에 목숨 명(命)자를 쓴다. 어순으로 풀자면 명을 혁한다는 것인데, '목숨'을 '가죽'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좀체 와닿지 않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개혁은 풀이가 쉽다. 피부를 죄다 갈아 새로 뒤집어쓴다는 뜻으로, 무엇을 바꾼다는 게 그만큼 어렵다는 데서 유래했을 테다. 혁명은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간 것이니, 가죽을 갈듯이 숨통까지도 새로이 한다는 뜻일 것이다. 혁명이란 말이 유래한 <주역>에선 은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이 각기 하나라 걸왕과 상나라 주왕을 물리치고 새 시대를 연 것을 일컬으니, 이는 한 나라와 사회의 숨통을 새로이 한 일과 다름없다.
같은 견지에서 4월 19일의 봉기는 마땅히 혁명이라 불릴 만한 일이다. 이승만의 자유당 정권은 도를 넘어 있었다. 남로당 제주도당의 폭동을 진압한다는 명분으로 제주에 내려보낸 서북청년단과 군대가 제주 민중을 학살한 사건은 결코 용납돼선 안 될 만행이었다. 정부 진상조사로 규명된 확인사망자만 1만 명에 달하는 이 사건은 공권력이 제 나라 민간인을 상대로 저지른 일방적 학살극이었다. 그러나 이승만과 자유당 정권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도리어 미국발 이데올로기적 갈등에 편승하여 제 정권을 공고히 하는 수단으로 삼았다. 피해유족은 이들이 한반도에 뿌리내린 이념 갈등과 빨갱이사냥이 두려워 말 한마디 못하고 오랜 시간을 견뎌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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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월의 불꽃 > 스틸컷 |
| ⓒ THE픽쳐스 |
그렇게 3선에 성공한 자유당 정권은 다음 선거에서 고령인 이승만의 유고상황에 대비해 부통령 이기붕을 당선시키기 위해 3·15 부정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상대인 조병옥 민주당 후보가 유세 중 사망하며 이승만은 단일후보로 자동 당선이 확정됐으니 만약 4·19혁명이 없었다면 역사가 어찌 전개됐을지 짐작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심지어 이승만은 하와이 망명 뒤 1965년이 돼서야 세상을 떠나니 혁명이 없었다면 임기 중 사망하지 않고 권력을 공고히 다졌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일은 그리되지 않았다. 자유당의 3·15부정선거는 마산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저항과 맞닥뜨렸고, 국민들은 4월 11일 마산 앞바다에서 떠오른 김주열의 시신을 도화선 삼아 다시금 봉기하여 마침내 정권을 무릎 꿇리기에 이른 것이다. 이 사건 하나로 뒤틀린 한국사가 바로잡히고 부역자들이 일거에 청산되지는 않았으나 이승만은 하야 뒤 망명길에 올랐고 이기붕 일가는 모두 사망한 채 발견된다. 적어도 최종 책임자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건국 후 처음으로 권력의 향배가 바뀌는 순간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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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월의 불꽃 > 스틸컷 |
| ⓒ THE픽쳐스 |
한 줄기로 추려내기 어려운 이야기를 턱없이 부족한 역량으로 다루려다 보니 영화가 엉성하고 조잡하다 느껴지는 건 어찌할 수 없다. 지극히 우호적인 시선에서 의미를 찾아내려 해도 제대로 짚어낼 구석이 얼마 되지 않는다. (관련기사: 16년 애써 키운 아들 주검으로... 어머니 대처가 놀랍다 https://omn.kr/2clhi)
그러나 어찌 그러할 수 있을까. 그는 이 영화에 대한 우호적 자세이긴 하지만 예술, 특히 영화를 다루는 한 명의 평론가가 택해야 할 태도는 아니다. 4·19혁명의 가치를 제대로 조명하는 작품을 그토록 오래 기다려왔기에, 그를 제대로 다룬 첫 작품에 대한 평가 또한 진지하게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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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월의 불꽃 > 스틸컷 |
| ⓒ THE픽쳐스 |
작품은 이들 간의 접점을 위하여 깡패가 남원에서 권찬주의 국밥집을 부수는 장면이라거나, 이강석이 제 아버지와 국밥집에서 식사를 하는 에피소드 등을 어수선하게 삽입한다. 또한 극적 효과를 불러오기 위함인지 이강석이 여인을 사랑하고 나름의 정의감도 느껴 나름대로 분투하는 과정도 창작해 전개한다. 얼핏 다큐 또는 페이크다큐적 설정을 가진 영화가 어설프게 창작극을 오가는 동안 관객은 어디부터 어디까지가 검증된 사실인지, 다큐적 효과까지 믿지 못하게 되는 부작용을 마주한다. 역사에 정통한 이가 아니라면 오히려 < 4월의 불꽃 > 때문에 사실을 거짓으로 오인하고 거짓이 사실이라 믿을 여지가 곳곳에 있다.
작품의 완성도는 더욱 심각하다. 주연급이 많음에도 옴니버스적 연출조차 차용하지 않은 탓에 영화는 아예 초점이 없는 듯 난잡하기만 하다. 이강석의 이야기에도, 김주열의 이야기에도, 권찬주의 이야기에도, 가짜 이강석의 이야기에도 관객은 충분히 몰입할 수 있을 만큼의 드라마를 마주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각각의 클라이맥스를 놓아둔 탓에 몰입하지 못한 채로 인물들이 관객보다 격렬한 감정선 위에서 울분과 분노와 슬픔 따위를 터뜨리는 상황을 보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 드라마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선택이 이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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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4월의 불꽃 > 포스터 |
| ⓒ THE픽쳐스 |
그럼에도 영화의 의미가 아주 없는 건 아니다. 누가 뭐래도 < 4월의 불꽃 >은 한국사 기록할 만한 한순간을, 그것도 처음으로 정면에서 응시한 귀한 작품이다. 3·15부정선거와 4·19혁명, 또 그 사이사이 깃든 사회상이며 인간들의 이야기를 영화는 적어도 그리려 시도는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구현된 작품의 완성도가 턱없이 떨어진대도, 그 시도가 이뤄낸 성취가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다. 조은숙은 권찬주를, 류하성은 김주열을 연기했다. 이들이 작품을 응시하는 시선이 대단하진 않대도 적어도 왜곡돼 있다고는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 4월의 불꽃 >으로부터 새로운 질문을 던져볼 수 있다. 한국 영화계 수많은 창작자는 어째서 그 긴 세월 동안 우리의 자랑스런 역사, 고통스런 과거를 직면해 영화로 다루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부족한 실력 때문은 아니란 것을 이 영화가 몸소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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